주변에 치울만한 삽이 보이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대로 막대기로 살살 굴리며 치우고 있는데,
지리산 둘레길옆 우리 집을 지나치던 여성 두 명이
돌담 덤불장미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어머어머~ 이거 장미야~오모나~향기로와라~
야 요기 코 대봐~향기 완전 진하다~”
그리고 향기를 찍기라도 하듯 스맛폰으로
연신 찰칵찰칵하더니
꽃향기에 이끌려 마당으로 들어온다.
돌담아래 덤불장미가 다인 줄 알았는데
화단에 더 많은 덩굴장미들이 흐드러진 것을 보고는
탄성을 지른다.
배낭을 맨 앳띤 아가씨들은
마당에서 막대기로 뭔가를 굴리며
수상쩍은 행동을 하고 있는 집 주인을 뒤늦게 발견하고는
붙임성있게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마당의 꽃들이 아름답다는 치사로
가택 무단침입의 죄를 무마하려한다.
“아저씨는 정원가꾸기를 참 좋아하시나봐요?
꽃들이 너무 예뻐요~”
나는 속으로 흐믓 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 시골 집은 마당이 넓으니까 꽃도 많지요~” 하고는
막대기로 개똥을 탁 쳐서 덤불 속으로 날린다.
골프를 잘 모르지만 정교한 티샷 한방이다.
그리고 아가씨들 말대로
덤불장미 향이 정말로 진한가 싶어
슬그머니 코를 킁킁대어 보는데
장미향인지 개똥향인지 나로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둘 중 더 어려보이는 아가씨가
화단 앞에 무데기로 피어있는 분홍낮달맞이를 보고는
“이거 양귀비지요?” 하며 사진을 찍는다.
분홍낮달맞이는 생명력과 번식력이 잡초보다 강하다.
뽑아도 뽑아도 올라와 포기하고 내버려두었던 것인데
선입견을 버린 눈에는 양귀비처럼 예뻐 보이는 모양이다.
기온이 많이 올라가 정원에 필만한 꽃은 다 피었다.
돌담아래 무성한 흰 덤불장미는
꽃의 색깔과 크기가 찔레와 비슷하다.
다만 겹꽃이라서 느낌이 새롭고 풍성하다.
그 옆에는 보는 사람마다 들장미라고 반가워하는
분홍 덤불장미가 한무데기 피었다.
안채 동쪽으로 나있는 창문 앞에는
십년 넘은 덩굴장미 안젤라가 눈길을 끈다.
핑크빛 수많은 꽃송이가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지고
옆으로 프랑스 백장미가 몇송이 우아하게 피어있다.
몽자르뎅 마메종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가진
이 프랑스 백장미의 큼직한 꽃은
기품있는 백작부인을 보는 듯하다.
오늘 아침엔 봉쥬르 마담~하고 경건하게 인사했더니
하얀 얼굴이 핑크로 살짝 물들었다.
그리고 백장미 바로 옆에
검붉은 테라코타 장미가
햇살에 꽃을 구워내기 시작이다.
테라코타는 아마 장미중 안토시아닌이 가장 많을 것이다.
꽃밥 만들 때 테라코타를 넣으면
눈으로 입으로 장미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주택을 둘러 이런저런 장미들이
여남은 그루 더 있어
이맘 때는 소박한 장미축제라도 해봄직 하다.
올해 가장 눈에 띄는 장미는 모과나무 아래 심은
하얀 덩굴장미다.
자리를 잡은지 오륙년 밖에 되지않았지만
얼마나 잘 자라는지 고목인 모과나무의 어깨까지
감고 올라가 고목의 절반을 하얀 꽃으로 덮어버렸다.
장미하면 빨간색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옛날부터 많이들 키운 재래종 빨간 장미는
소위 국민장미로 사람들의 기억속에 각인되어
장미하면 빨간색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장미는 색깔도 모양도 다양하고
꽃도 오월에 한번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여름 가을까지 피고 진다.
물론 꽃이 지면 열매가 여물기 전에 따주고
영양도 꾸준히 공급해줘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다.
장미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서 아무거나 잘 먹는데
나는 개똥이 보이는 대로 장미에게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