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쯤 됬을때...
과일이라고는 자기 손으로 깍아 먹지 않는 남편의 지방집(주말 부부입니다. ^^)에 가서 보고 놀란 베란다 풍경입니다.
결혼 10년만에 남편이 감깍기의 고수라는걸 알았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첫해 4박스의 감을 깎은 곶감을 선물 받아서 일년 내내 냉동실에 넣고 잘 먹었습니다.
그 이후...
매년 첫해의 4박스 까지는 아니지만 한박스 정도의 감을 깍아서 곶감도 말리고 또 단감은 주중에 잘라서 저렇게 꾸덕하게
말려서 주말에 제 선물이라고 들고 옵니다.
혼자서 주중에 감을 깍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여전히 너무 웃기지만 그 이후 감이 나올 시즌이 되면 기다리게 되는
저의 힐링푸드입니다.
어쩔수 없는 경상도 남자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남편에게 이 곶감은 결혼기념일 즈음에 저에게 주는 또 다른 꽃다발
인 것같습니다. 떨어져 지내는 직장동료의 남편이 동료 생일날 항상 꽃과 케잌을 보내줘서 남편에게 부럽다고 나도 받고
싶다고 하니, 자기가 주문해서 배달하면 비싸니까 저보고 직접 사가지고 출근하라는 너무나 경제적인 남편이지만 가끔 이
런 소소한 것들이 20년 가까운 결혼생활에 위기가 올때마다 한번 더 상대방을 배려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주말부부가 끝나게 됩니다. 아마 서울에서 말리면 강원도 바람에 말린 그 곶감 맛은 아니겠죠?
그리고 저에게는 누군가에게 힐링푸드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키톡을 보고 만든 음식 중 아마 제일 많이 만든 음식인것 같습니다.
생강이 나오기 시작하면 마음의 준비를 해서 매년 10키로쯤 만들고 있습니다.
같이 드시라고 쿠키도 포장해서 드리는데... 추운 겨울 조그만 제 정성이 저의 지인들에게도 힐링이 되길 바라면서
팔뚝이 굵어지는 줄도 모르고 만들고 있답니다.
다행히 받으시는 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저에게 또다른 힐링이 되고 있습니다.
받으시는 분들의 연세가 점점 높아지셔서 예전보다 더 많이 생강의 매운 맛을 우려내야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리지만
생강 끓이는 향기가 집안에 퍼지면 그것도 또 다른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도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퍼주는 분이셨습니다. 집안이 예전보다 덜 넉넉해 졌을 때도 할머니는 드실 것 아껴서라도 남에게 대접을 하셨습니다.
전 그게 너무나 싫었는데, 어느 순간 제 손의 크기가 할머니를 닮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어깨아프다고 징징대면서도 계속 뭔가를 만들고 있는 저를 보면서 할머니가 제 마음 어딘가에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반백년을 인생에 큰 굴곡없이 살아 온것에 감사하며, 저의 소소한 일상에도 알게 모르게 힐링
이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힐링들이 절 치료해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점점 더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번 금요일이 저의 결혼 기념일 입니다. 남편은 아마 저녁 늦게 도착하겠지요. 그의 손에는 아마도 꽃다발 대신 곶감이
들려 있을것입니다. ^^
그런데 그 곶감이 웬지 꽃다발 보다 더 이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