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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응모)할머니의 호박만두...

| 조회수 : 4,603 | 추천수 : 29
작성일 : 2006-10-11 14:14:48
내겐 너무 특별한 음식이라....

할머니라는 단어가 이렇게 울컥하는단어인지 3월까지는 정말 몰랐어요....
중학교때까지 축쳐진 할머니 젖만지고 배만지면서 잠들었는데... 그품도 너무 그립고...
자면서도 내품을 파고드는 3살난 아들을 다독거리면서, 할머니도 나를 그렇게 키우셨구나 싶더라구요....
4월 첫날 정말 만우절 거짓말이길 바랬는데, 남들은 편안히 가셨다 하셨지만, 갑지기 쓰러지셔서
하루를 못넘기고 돌아가셨거든요... 자식들 고생시킬까봐 그렇게 서둘러가셨나봐요...
18에 시집와서 젊은 시어머님을 50년이나 모시고 사셨어요... 왜 그시대의 시어머님들은 그렇게
모지셨는지... 눈물 쏙 빠지게 시집살이하면서 말대꾸 한번 제대로 못하고 사셨죠...
거기다 손자손녀까지 거둬서 키우시고.... 우리집에 오셔서 단 일주일이라도 같이지냈으면
좋았을텐데.... 그게 너무 한이 되네요...

제가 태어나서 100일즈음에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증조할머니가 엄마를 너무 못살게 구박해서
들은바로는 밥도못먹게하고, 한겨울에 불도 못넣게하고... 결국 엄마는 외할머니손에 이끌려서
재가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시절의 할머니들은 다들 부지런하시고 손맛좋고 그러셨겠지만, 개성이 고향인 할머니는
특별한 조미료을 넣지않아도 너무 맛있었는데, 저는 정말 죽었다 깨나도 그맛도 안나고 엄두도 안나요...
가끔 할머니 손맛을 닮은 고모가 해준 음식을 먹는데, 정말 2% 부족한맛...
할머니의 그리운 음식은 자글자글 끓어주시던 강된장, 밭솥에서 쪄주시던 짭조름한 새우젖, 수제비넣은
아욱국, 한겨울 엿을 고아 만드는 강정들...

그중에 제일 먹고싶은게 호박만두예요... 호박만두를 아는사람은 정말 못봤어요....
제가 어릴적엔 나중에 커서 호박만두만 파는 식당을 하겠다고 그랬었어요.... 그때도 호박만 들어간
만두파는데는 본적이 없었거든요...
여름철 별미음식인데, 밭에 심어둔 호박중에 때를 놓쳐서 너무 커버린 호박들을 모아다, 노랗게 완전히
익은 호박되기전에요.... 그렇게 큰호박은 볶아도 애호박만큼 맛이안나고 딱 호박만두용이거드뇨.
3대가 다같이 살던 집이라 식구가 많았거든요. 반나절 꼬박을 바쳐야 먹을수 있는음식인데,
호박을 채썰어서 소금에 살짝 절여요... 양파자루에 넣어서 맷돌을 받쳐서 두어시간 물을 빼요...
가끔 급할땐 탈수기를 헹궈서 이용하기도 했는데, 어린나이에도 맷돌에 누른 호박속이 맛있더라구요...
그사이에 밀가루에 계란과 소금을 약간넣고 되직하게 반죽을해서 비닐에 넣어서 이불에 싸서 방바닥에 묻어놓구요.
밭에서 따온 약이 바짝오른 고추를 칼로 잘게 썰어서 넣어요. 호박만두의 키포인트는 매운고추예요...
소금에 절여진 호박속에 썰어논고추를 넣고 고춧가루와 파마늘 넣고 양념을 하는데, 자세한건 눈여겨
보지않아서 모르겠어요... 저는 마루에 신문지랑 한가득펴놓고 준비에 들어갑니다. 한편에 큰상을 놓아두고
만두피 미는 방망이와 받침세팅하고 이불속에 넣어둔 반죽을 꺼내 다시 치대고요....
만두피미는건 제가 담당이였거든요. 할머니랑 작은엄마랑 셋이 모여앉아서 만들곤했는데...
만두를 예쁘게 빚던 작은엄마, 아마 딸을 낳았으면 엄청 이뻤을텐데, 아들만 둘이예요...
호박에서 물이 많이 나와서 속만 따로 남겨둘수가없어서 딱한번 먹을만큼만 해야하거든요.
국물은 그냥 조선간장으로 약간 싱겁게간해서 파마늘에 계란도 안넣고 끓여요...
그렇게 맑은국물로 끓여도, 제가 만든 몇안되는 만두는 꼭터져서 국물을 흐리더라구요... ^^
매워서 못먹을거같지만 만두국으로 끓여서 숟가락으로 잘라서 국물이랑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호박만 들어가서 속이 부담스럽지도않고, 좀 넉넉하게 끓여서 소쿠리에 건져놓았다가 출출한
밤에 한두개 먹어도, 또다른맛.... 가끔 손님들이 와서 먹어보면 매콤 달달한 맛에 다들 특이해하면서
그때 먹어본 호박만두가 생각난다고 하더라구요....

임신했을때도 다른것보다 그게 그렇게 먹고싶더라구요.
워낙 손이가는 음식이라, 작은엄마도 없고 할머니랑 배가 남산만한 제가 하기엔 힘에 붙칠것
같아 말안하고 꾹 참았는데,,,, 그때 그냥 할머니를 졸라서 먹어볼걸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지금은 엄두도 못내지만, 우리아이가 매운것도 잘먹을수있을만큼 자라면 저도 한번 도전해
봐야겠어요... 만두에 얽힌 추억도 얘기해주면서요....
할머니는 지금 좋은곳에 편히 계실거라 믿지만... 그래도 너무 보고픈데, 할머니모습이
점점 흐려지는게 그리움도 희석되는건가봐요....
김은경 (gam01)

안녕하세요!! 직장과 가정 뭐든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좀 힘에 부치네요... 역시 두마리 토끼를 잡는일은 힘든가봐여... 근데 82쿡 덕분에..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루시아
    '06.10.11 4:13 PM

    다들 임신하면 엄마의 손맛그리운 음식을 찾기 마련인데...
    은경님은 엄마대신 할머니의 손맛을 그리다, 힘에 부치시는 할머님 생각하시고
    못먹은 호박만두가 두고두고 걸리시겠어요. 지금은 멀리 가계신 할머님께서 보시곤
    바보팅이(?)라고 혼나시겠어요. 음식에과난 추억은 쉽게 잊어지지도 않더라구요. *^.^*

  • 2. 김정희
    '06.10.11 8:18 PM

    호박만두~~ 첨 들어봐요.
    맛을 그려봅니다.

    할머니에 대한 맛있고 아련한 추억이군요.

    우리집에도 그런 호박들이 몇개 있어요.
    호박넝쿨이 무성해서 미처 따지 못했던 푸른 중년(??)의
    호박들... 뭘해서 먹어야 될지.... 했는데.....
    한번 도전해볼까요?

  • 3. 레먼라임
    '06.10.12 4:38 AM

    전 호박만두를 알고 먹고 자랐어요.^^
    원래 이름은 호박편수라고 하지 않나요?
    여름철에 먹는 만두이지요, 시원한 국물과 깔끔한 맛이 일품이에요.

    저희 친정은 엄마와 아빠쪽이 모두 개성분들이세요.
    그래서 여름철이면, 호박편수를 자주 해먹곤 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고추를 전혀 넣지 않구요, 숙주나물과 두부 그리고 양파
    그리고 동량으로 들어가는 간 돼지고기와 소고기가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반죽은 전날 만들어서 냉장고에서 하루 정도 숙성을 하셨구요.

    저희는 모두 만두를 엄청 좋아해서, 평일이나 혹은 집안식구 몇사람만
    모이거나 혹은 일부러 만두먹으려고 날을 잡기도 하셨지요.

    아~~~ ~~
    저는 ..... 멀리에서 살고 있거든요. 이역만리라고 ......ㅠㅠ ....ㅠㅠ...ㅠㅠ
    물론 비행기타고 열두시간만 가면 되지만, 갑자기 개성이란 지명과 호박만두란 말에
    가슴이 찡~~~ 해서 눈물이 나와요.

    저희 엄마도 이모도 외숙모도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중 하나가
    여름날 호박편수를 잔뜩해서 부엌의 시원한 곳에 호박편수를 한소쿠리 가득 담아 놓으시고
    그옆에 초간장을 놓아두신대요.
    그러면 학교에 갔다와서 출출할때, 부엌으로 뛰어들어가 간장에 찍어먹는
    만두의 맛이 일품이었다고 늘 그리워 하셨어요.
    김은경님 덕분에 추석이라고 토란의 맛도 별로인 짝퉁같은 토란국과
    송편대신 팥시루떡으로 먹은 제가 갑자기 눈물이 너무 나네요. ㅠㅠ

  • 4. woogi
    '06.10.12 9:06 AM

    제가 임신했을때 만두를 하두 먹어서리..
    그때 시부모님이 종암동에 있는 허름한 칼국수집에 데려갔는데, 그곳에서 파는 만두가 호박이 들어있었어요. 아삭하고 맛있었는데... 그게 개성식이었군요..

  • 5. 김은경
    '06.10.12 9:36 AM

    레몬라임님...

    호박편수를 알고계신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아마 어렸을적부터 만두랑 똑같아서 그냥 만두로 불렀어요...
    저희집에도 만두먹은날은 소쿠리에담긴 식은 호박만두를 부억을 들락이면서 하나씩 먹으면
    어느새 비어있더라구요. 아마 다른 식구들도 그렇게 집어먹어서인지...
    부산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는데, 거리만큼 풍습도 많이다르고 음식도 많이 다르더라구요.
    설에도 만두넣은 떡국도 안먹고, 추석에도 송편이나 토란국도 안끓이고....(덕분에 몸은 좀 편하지만 ^^)
    명절며칠전부터 할머니는 사골을 몇번이나 고아서 진하게 국물내어놓고, 만두국도 토란국도
    끓이셨는데... 멀리서 탕국에 밥말아 먹으면서도 그맛이 너무 그립더라구요...

    레몬라임 댓글에 너무 반갑고 눈물이 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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