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더운데 지지고 볶고 신경쓰는 것을 싫어하셨다.
요리니 집안청소니 별로 관심을 갖고 싶어하지 않으셨다.
차라리 그럴 시간에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셨을 정도.
그렇기에 요리의 원래의 레시피는 절대로 무시하시고
언제나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푹푹 끓이시곤 하셨다.
하다못해 라면도 맨 찬물에 면이니 스프니 다 쏟아넣고 냄비뚜껑을 닫아버릴 정도였으니...
그러면 퉁퉁 불은 라면이 된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음식에 익숙해져왔고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카레라이스였다.
감자, 양파, 당근, 돼지고기 등을 죄다 커다란 냄비에 썰어 넣고서
물과 카레가루를 넣고 있는대로 푹푹 끓인 엄마표 카레
어쩌면 있는 재료 다 넣고 푹 '고은' 거라 그 맛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물이 좀 과다하게 많아 흥건했기에
카레를 밥 위에 얹는다기보다는
카레에 밥을 만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말아먹어야 하는 엄마표 카레라이스의 느낌을 참 좋아했다.
카레라이스는 엄마와 나의 화해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너무나 성향이 비슷한 모녀는 툭닥툭닥거렸고
심하게 툭닥거리고 나면 고집쎈 난 꿍하니 입과 눈을 닫아버렸다.
아예 무표정으로 눈을 안마주치려하며 쇠고집을 피워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면
언제나 엄마는 엄마표 카레라이스를 슬그머니 하시곤 했다.
그 카레의 향에
있는대로 삐쳐있던 내 성질도 봄날 눈녹듯 녹고 우리는 다시 사이좋은 모녀가 됐었다.
학창시절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는 등
삶을 살면서 더러 카레라이스를 먹긴 먹었지만 화해의 의미로는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된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 못난 딸래미가 엄마가 무던히도 반대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댔고
약 한달간 엄마는 내 방에서 기거를 하며 설득작업을 시도하셨다.
하지만 그놈의 쇠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손 두 발 든 엄마....결혼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결혼을 하루 앞둔 날...
엄마는 조용히.....카레라이스를 하셨다......
딸래미가 먹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고 엄마는 들어가셨고...
난 카레국물이 흥건한 밥을 눈물과 함께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그날 먹었던 카레의 맛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응모] 엄마표 카레라이스
마뇨옹 |
조회수 : 3,574 |
추천수 : 4
작성일 : 2006-10-10 02:29:15
- [키친토크] [이벤트응모] 엄마표 .. 2006-10-10
- [식당에가보니] 양재동 떡볶이집 10 2006-12-07
- [육아&교육] 밤중수유 중단시도 5 2007-08-11
- [살림돋보기] 세탁가능 슬리퍼 8 2009-11-26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
번호 | 제목 | 작성자 | 날짜 | 조회 | 추천 |
---|---|---|---|---|---|
41087 | 맛있게 먹고 살았던 9월과 10월의 코코몽 이야기 2 | 코코몽 | 2024.11.22 | 644 | 0 |
41086 | 82에서 추천해주신행복 34 | ··· | 2024.11.18 | 8,108 | 4 |
41085 | 50대 수영 배우기 + 반찬 몇가지 28 | Alison | 2024.11.12 | 11,518 | 5 |
41084 | 가을 반찬 21 | 이호례 | 2024.11.11 | 9,252 | 2 |
41083 | 올핸 무를 사야 할까봐요 ^^; 10 | 필로소피아 | 2024.11.11 | 7,368 | 2 |
41082 | 이토록 사소한 행복 35 | 백만순이 | 2024.11.10 | 7,950 | 2 |
41081 | 177차 봉사후기 및 공지) 2024년 10월 분식세트= 어 김.. 12 | 행복나눔미소 | 2024.11.08 | 3,233 | 4 |
41080 | 바야흐로 김장철 10 | 꽃게 | 2024.11.08 | 5,341 | 2 |
41079 | 깊어가는 가을 18 | 메이그린 | 2024.11.04 | 9,680 | 4 |
41078 | 드라마와 영화속 음식 따라하기 25 | 차이윈 | 2024.11.04 | 8,261 | 6 |
41077 | 아우 한우 너무 맛있네요.. 9 | 라일락꽃향기 | 2024.10.31 | 7,276 | 2 |
41076 | 똑똑 .... 가을이 다 가기전에 찾아왔어예 30 | 주니엄마 | 2024.10.29 | 9,896 | 6 |
41075 | 10월 먹고사는 이야기 12 | 모하나 | 2024.10.29 | 7,098 | 2 |
41074 | 무장비 베이킹…호두크랜베리빵… 12 | 은초롱 | 2024.10.28 | 6,443 | 5 |
41073 | 오랜만이네요~~ 6 | 김명진 | 2024.10.28 | 6,103 | 3 |
41072 | 혼저 합니다~ 17 | 필로소피아 | 2024.10.26 | 6,105 | 4 |
41071 | 이탈리아 여행에서 먹은 것들(와이너리와 식자재) 24 | 방구석요정 | 2024.10.26 | 5,048 | 3 |
41070 | 오늘은 친정엄마, 그리고 장기요양제도 18 | 꽃게 | 2024.10.22 | 9,989 | 4 |
41069 | 무장비 베이킹…소프트 바게트 구워봤어요 14 | 은초롱 | 2024.10.22 | 5,601 | 2 |
41068 | 만들어 맛있었던 음식들 40 | ··· | 2024.10.22 | 8,428 | 5 |
41067 | 캠핑 독립 +브라질 치즈빵 40 | Alison | 2024.10.21 | 5,970 | 7 |
41066 | 호박파이랑 사과파이중에 저는 사과파이요 11 | 602호 | 2024.10.20 | 3,429 | 2 |
41065 | 어머니 점심, 그리고 요양원 이야기 33 | 꽃게 | 2024.10.20 | 6,153 | 6 |
41064 | 고기 가득 만두 (테니스 이야기도...) 17 | 항상감사 | 2024.10.20 | 4,104 | 4 |
41063 | 오늘 아침 미니 오븐에 구운 빵 14 | 은초롱 | 2024.10.16 | 7,784 | 2 |
41062 | 여전한 백수 25 | 고고 | 2024.10.15 | 7,423 | 4 |
41061 | 과일에 진심인 사람의 과일밥상 24 | 18층여자 | 2024.10.15 | 8,382 | 3 |
41060 | 요리조아 18 | 영도댁 | 2024.10.15 | 5,450 |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