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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가을밤에......

| 조회수 : 8,457 | 추천수 : 11
작성일 : 2012-11-08 19:31:51

10월 말경인가

다음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아내혼자 집으로 돌려 보내고 산중에 홀로 남은 날......

 

아내는 혼자 돌아가기 아쉬운듯

힘껏 부둥켜안은 입맞춤을 몇차례인가를 반복하고도  돌아가기가 아쉬움인지

산길을 내려가며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내가 뭐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것도 아닌데......)

 

 

산중의 짧은 해는

하던일을 마무리 할 겨를조차 주질 않고 사라져버리고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일을 하다보니

뱃가죽이 등짝에 껄어 붙은 느낌입니다.

 

 

 

 


한시가 아까우니 저녁밥을 할 여유도 없고

다음날 먹일 닭들의 청치밥을 하는 사이에

굵은소금 뿌려가며 잔불에 돼지고기를 몇점 구웠습니다.

 

 

 


배추밭에서 배춧잎 몇장 뜯어다 먹을까 하다가

그 시간도 아깝고 일에 지쳐 귀찮기도 하고......

마늘 몇개 까기도 귀찮은 날이었습니다.

그냥 냉장고에서 표고장조림과 김치만 꺼내다가 소주한잔 곁들이기로......

 

그렇게 궁뎅이의자에 앉아 아궁이앞에서 대충 소주한병 비우고 나니

몸이 조금 가벼워 집니다.

웬종일 일에 지친 몸이 그나마의 휴식에 재충전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보면 술도 참 많이 줄였습니다.

예전에는 소주한병 마시면

목구멍에 다 달라붙고 뱃속에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그렇게 대충 저녁을 때우고 한숨 돌리고

다시 일을 하기위해 작업장을 나섰더니

을씨년스러운 가을달 마저도 조소를 보내는 모양입니다.

넌 뭣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궁상을 떨고있니 하는듯......

 

어떤때는 그렇게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내가 이 산중에서 뭘 하는 것인가?

내가 이런다고 잘못된 농업의 방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하긴 뭐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고기 몇점 남은 것만 주기 미안스러워  라면 두개 함께 곁들여 개들에게 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한동안 같이 놀다가 돌아서니

개들도 아쉬운 모양입니다.

저놈이 이렇게 잘 놀아주는게 날잡아 하는 일인데 하는 아쉬움인지......

 

3년사이에 개들도 참 많이 컸습니다.

처음 식용견사육장을 찾아 두녀석을 데리고 왔을때는

한동안 산짐승들때문에 무서워 덜덜 떨더니

이제는 송아지만한 이녀석들때문에

멧돼지들도 농장근처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철없는 새끼고라니들만 왔다리갔다리 농작물을 아작내고......

심지어는 훈련이 잘되었다는 사냥개들도 녀석들의 짖는 소리에

이 부근에는 감히 다가오지를 못할 정도입니다.

 

하긴 저것들이 하루에 처먹는 양이 얼마인데......

 

 

 


농장에서 잘때는 잠을 자기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닭장안에 들어가 녀석들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는 동안에 녀석들이 어떻게 밤을 보내는지

혹시나 천적들이 들어와 해꿎이를 하지는 않는지......

 

이날도 한녀석은 출입문앞을 오가며 횟대에 오르질 않습니다.

이녀석들도 보초를 서는 것인지

다른녀석들은 죄다 횟대위나 산란장에 올라가 있는데

밤이면 꼭 이렇게 한마리가 문앞에 나와있습니다.

 

 

 


대충 일을 마무리짓고

다음날 달구들 먹일 홍시를 선별해 놓고나니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마치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입니다.

 

 

 


쓰러질듯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문득 눈에 들어오는 벽에걸린 기타......

 

참 오랜만에 기타를 튕겨봅니다.

술만 처먹으면 고래고래 악을 써댄다며 소음공해라고

그래서 마누라를 피해 농장으로 피신했던 기타......

그나마도 여름에 낫질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천덕꾸러기신세였는데......

 

모처럼 노래 몇곡 부르다보니 눈꺼풀은 내려앉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 누운 뜨끈한 이부자리속에서

천막지붕위로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자장가삼아

코골음으로 장단을 맞추며 가을밤을 보냈다는......

 

 

 

 

 

 

 

 

2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딩딩동
    '12.11.8 8:09 PM

    조용한 가을 저녁에 농부님의 조곤조곤한 이야기를 듣는 듯 하네요.

    포근하고 정답습니다. 고맙습니다.

  • 게으른농부
    '12.11.12 12:55 PM

    아궁이 앞에 앉으면 저도 포근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언젠가는 꼭 구들방을 하나 앉혀서 이사람저사람 드나들며
    사람냄새가 가득한 그런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 ^

  • 2. 고독은 나의 힘
    '12.11.8 8:13 PM

    아.. 저 두꺼운 가요책 ^^ 저도대학때 동아리 방에서 저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가며 띵가띵가 하곤 했었는데

    그나저나 사람도 못 먹는 홍시를 달구들이 먹네요.. 호강하는 달구들!!

  • 게으른농부
    '12.11.12 12:57 PM

    긍께 저노무 노래책이 기타를 만지기 시작한 지 20여년간
    들고 나기를 거듭하며 남은 것은 달랑 몇권 뿐이랍니다. ^ ^

  • 3. 콩이사랑
    '12.11.8 8:20 PM

    을씨년스러운 날씨도 피부로 느껴지는 듯하고 농부님의 쓸쓸한 독백도 전해지는 듯 하네요..

    그래도 한번 사는거 내 식대로, 내 맘가는대로 살아보면 좋지요.

    게다가 든든하게 같이 걸어주시는 마나님도 계시고, 두 마리 든든한 견공까지...

    농부님 글은 언제나 바쁜 걸음걸이를 한 탬포 늦춰주시는것 같어요...따뜻한 글 늘 감사해요

  • 게으른농부
    '12.11.12 12:58 PM

    그래야 하는데 ...... 한템포 늦춰야 하는데 하고 머리는 말을 하는데
    손발은 드립다 정선없이 돌아갑니다. 이를 어째야 할까요? ^ ^

  • 4. 싸리꽃
    '12.11.8 8:33 PM

    힘껏 부둥켜안은 입맞춤을 몇차례인가를 반복하고도 ....................라구요?

    아이참.... 그 동안 싸모님에 대한 보고서가 반어법 그득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참으로 숯불이 벌겋게 타고 있는 아궁이 만큼이나 뜨거운 사이인가 봐요
    어허허허~ 농부님 부부 사이가 좋다는데 왜 나는 괜히 웃음이 나는지~~

  • 게으른농부
    '12.11.12 12:59 PM

    그나마도 응하지 않고 뻐팅기다가 또 맞을라구요? ㅋㅋㅋ

  • 5. 미도리
    '12.11.8 10:29 PM

    식탁도 정겹고, 보초서는 닭도 귀엽네요. 대장이 보는 것도 아니고 돌아가면서 보초 서나 봐요. 신기해요^^

  • 게으른농부
    '12.11.12 1:00 PM

    예전에 고향에서 닭 몇십마리 키울때는 몰랐는데
    얘들과 함께 하면서 놀라운 일을 많이 겪습니다. ^ ^

  • 6. 바닷가에서
    '12.11.8 11:37 PM - 삭제된댓글

    닭은 참 겁이 많은 녀석입니다..한번 잠든 곳에서 꼭 잠들구요..

    우리시골집 닭들은 정미소에서 나오는 현미를 좋아하더군요

    새벽 4:30에 울어서 추석에 식탁위에 올랐다는.....새벽5:30에만 울었어도 명이 길었을텐데..

  • 게으른농부
    '12.11.12 1:02 PM

    농장에서 잠을 잘때면 그 소리에 잠을 일찍 깨곤 하죠.
    그래도 저희달구들은 식탁위에 올라올 일은 없습니다.
    저랑 동업중이거든요. 어쩌면 저것들이 상전이고 그 밑에 마누라 그 밑에 제가...... ㅠㅠ

  • 7. 승맘
    '12.11.9 3:19 AM

    눈물이 날려고 하네요
    저 닭들이 묵는 홍시
    제가 제일 좋아 하는건데 여기 미국에서는 찾아 보기가
    하늘에 별따기 혹 있더라도 어마어마 한 가격,.,.,
    미국생활 12년 딱 한번 홍시 묵어뫘는데 외할머니집 에서 먹은 살얼음낀 그 맛이 안나더군요,.,
    사진으로나마 질리도록 먹고 갑니다

  • 게으른농부
    '12.11.12 1:04 PM

    에구~ 주소 갈켜주시면 쬐끔이라도 보내드릴게요.
    저는 외국에 나가서 공항에 내리는 순간에 집이 그리워 진다는...... ㅠㅠ

  • 8. 코스모스
    '12.11.9 9:47 AM

    농부님 오늘도 새벽부터 부지런하게 일을 하시고 계시겠네요.
    농부님 글에 매료되어 가는 사람입니다.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 게으른농부
    '12.11.12 1:04 PM

    넵~ 행복하겠습니다. ^ ^

  • 9. 백만순이
    '12.11.9 2:38 PM

    농부님댁 닭들은 어찌 저리 이뿌고 좋은것만 먹는지, 전생에 나라구하는정도는 아니라도 선업을 많이 쌓았나봅니다^^

  • 게으른농부
    '12.11.12 1:05 PM

    그게 뭐...... 선택이 어쩐다던지......
    첨에는 동업자의 지위였는데 이젠 달구들이 제 상전이 되어 버렸습니다. ㅠㅠ

  • 10. 가능성
    '12.11.9 3:33 PM

    농부님,,, 은 제 남편도 아닌데, 왜 제 마음이 아린거죠???
    글이 참 맛납니다.
    홍시,,, 우리가족 모두가 완죤 좋아하는,,,, 홍시때문에 가을을 기다릴 정도인데,,,, 이런,,, 저 닭들이 참 호강하네요.

    농부님 닭, 참 맛나겠어요.
    지난휴가에 아들녀석이 전남해남 시장에서 살아있는 닭을 잡아 후라이드치킨을 바로 튀겨주는걸 보고...
    울면서, 너무 맛나다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ㅠㅠ

  • 게으른농부
    '12.11.12 1:06 PM

    제 입맛으로는 저희 닭 정말 맛없습니다.
    처음 닭을 키울때 손님들이 오셔서 몇번 잡았었는데
    먹을때마다 체하더라구요. ㅠㅠ

  • 11. 그럼에도
    '12.11.11 12:42 PM - 삭제된댓글

    첫단락 읽다가 푸하하하~~~ 중간에 또 푸하하하~~~~~ ^------^
    유머러스한 글 행간엔 적막함도 읽힙니다.
    버겁고 힘든 나날들을 긍정의 힘으로 살아내고 있지만 때로 놓아버리고 싶을때가 있기도 하더라구요.
    개들도 닭들도 농부님을 만난게 복일거예요. ㅎㅎㅎ

  • 게으른농부
    '12.11.12 1:07 PM

    서로 복이겠죠. 저도 녀석들과 함께해서 행복하고......
    가끔 힘에 부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살만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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