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말경인가
다음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아내혼자 집으로 돌려 보내고 산중에 홀로 남은 날......
아내는 혼자 돌아가기 아쉬운듯
힘껏 부둥켜안은 입맞춤을 몇차례인가를 반복하고도 돌아가기가 아쉬움인지
산길을 내려가며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내가 뭐 철사줄로 두손 꽁꽁 묶인것도 아닌데......)
산중의 짧은 해는
하던일을 마무리 할 겨를조차 주질 않고 사라져버리고
여기저기 불을 밝히고 일을 하다보니
뱃가죽이 등짝에 껄어 붙은 느낌입니다.
한시가 아까우니 저녁밥을 할 여유도 없고
다음날 먹일 닭들의 청치밥을 하는 사이에
굵은소금 뿌려가며 잔불에 돼지고기를 몇점 구웠습니다.
배추밭에서 배춧잎 몇장 뜯어다 먹을까 하다가
그 시간도 아깝고 일에 지쳐 귀찮기도 하고......
마늘 몇개 까기도 귀찮은 날이었습니다.
그냥 냉장고에서 표고장조림과 김치만 꺼내다가 소주한잔 곁들이기로......
그렇게 궁뎅이의자에 앉아 아궁이앞에서 대충 소주한병 비우고 나니
몸이 조금 가벼워 집니다.
웬종일 일에 지친 몸이 그나마의 휴식에 재충전이 되는 모양입니다.
그러고보면 술도 참 많이 줄였습니다.
예전에는 소주한병 마시면
목구멍에 다 달라붙고 뱃속에 들어가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그렇게 대충 저녁을 때우고 한숨 돌리고
다시 일을 하기위해 작업장을 나섰더니
을씨년스러운 가을달 마저도 조소를 보내는 모양입니다.
넌 뭣때문에 여기서 이렇게 궁상을 떨고있니 하는듯......
어떤때는 그렇게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내가 이 산중에서 뭘 하는 것인가?
내가 이런다고 잘못된 농업의 방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하긴 뭐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고기 몇점 남은 것만 주기 미안스러워 라면 두개 함께 곁들여 개들에게 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며 한동안 같이 놀다가 돌아서니
개들도 아쉬운 모양입니다.
저놈이 이렇게 잘 놀아주는게 날잡아 하는 일인데 하는 아쉬움인지......
3년사이에 개들도 참 많이 컸습니다.
처음 식용견사육장을 찾아 두녀석을 데리고 왔을때는
한동안 산짐승들때문에 무서워 덜덜 떨더니
이제는 송아지만한 이녀석들때문에
멧돼지들도 농장근처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철없는 새끼고라니들만 왔다리갔다리 농작물을 아작내고......
심지어는 훈련이 잘되었다는 사냥개들도 녀석들의 짖는 소리에
이 부근에는 감히 다가오지를 못할 정도입니다.
하긴 저것들이 하루에 처먹는 양이 얼마인데......
농장에서 잘때는 잠을 자기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닭장안에 들어가 녀석들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는 동안에 녀석들이 어떻게 밤을 보내는지
혹시나 천적들이 들어와 해꿎이를 하지는 않는지......
이날도 한녀석은 출입문앞을 오가며 횟대에 오르질 않습니다.
이녀석들도 보초를 서는 것인지
다른녀석들은 죄다 횟대위나 산란장에 올라가 있는데
밤이면 꼭 이렇게 한마리가 문앞에 나와있습니다.
대충 일을 마무리짓고
다음날 달구들 먹일 홍시를 선별해 놓고나니
벌써 밤이 깊었습니다.
마치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입니다.
쓰러질듯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문득 눈에 들어오는 벽에걸린 기타......
참 오랜만에 기타를 튕겨봅니다.
술만 처먹으면 고래고래 악을 써댄다며 소음공해라고
그래서 마누라를 피해 농장으로 피신했던 기타......
그나마도 여름에 낫질하다가 손가락을 다쳐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천덕꾸러기신세였는데......
모처럼 노래 몇곡 부르다보니 눈꺼풀은 내려앉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 누운 뜨끈한 이부자리속에서
천막지붕위로 세차게 쏟아지는 빗소리를 자장가삼아
코골음으로 장단을 맞추며 가을밤을 보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