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아침 제일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매주 수요일 아침에는 확실하게 집에 있다는 말을 얼핏 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을 기억해내곤, 수요일이라서 전화를 했대요.
토론토대학에 교환교수로 나간 남편을 따라서 딸 셋을 데리고 간 친구, 그 친구에게 얼마전 칭.쉬.를 부쳐줬더니 잘 받았다는 소식도 전할 겸, 추운 날씨 안부도 전할 겸 전화를 했더라구요.
"한국에서 전화하는 것보다 여기서 한국으로 하는 게 싸니까 넌 전화하지마, 내가 할께"하는 그 친구.
주방도구 같은 걸 보면 제 생각이 난데요. 전, 속에 뭐가 차오르는 것 같을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나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후다닥 그 친구에게 달려가서 한참 하소연이라도 하고 왔거든요.
그럴 때마다 마치 언니처럼 절 다독여줬었는데...
"우리 딸들이, 니 책에 나오는 요리 쉽다고 부엌에 놓고 매일 한가지씩 하겠다고 한단다, 책이 아주 좋아" 하며 격려까지 잊지않네요. 옆에 있다면 당장 달려가서 차라도 한 잔하고 싶어요. 우리 고등학교때랑, 대학교때랑, 그리곤 결혼전 얘기하면서 사춘기 소녀처럼 깔깔거리고 싶네요.
우리가 나이 많은 아줌마라는 사실도 까먹고, 권지예의 작품이 어떻고, 은희경의 작품이 어떻고, 또 고 황창배화백의 그림이 어떻고, 황주리의 그림은 어떻고...
그 친구가 한국에 없으니 그런 얘기할 친구가 없네요.
이제 며칠후면 명절이죠? 이때쯤이면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주부들 너무너무 많죠?
저도 그중 하나구요. 이럴 때마다 한 후배가 생각나네요.
직장의 후배였는데...
저보다 나이가 한 여덟살은 아래인 것 같은데, 제가 존경심으로 대하던 후배에요.
그 후배의 남편은 아들 삼형제집 둘째 아들. 그랬는데 중간에 형님네가 미국 이민을 떠나 제 후배가 시부모님을 모시게 됐어요.
시어머니께서 난치병을 앓으셨거든요. 병 때문에 어머니가 우울해하신다고, 회사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어머니 앞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는 그런 참한 며느리였죠. 시아버지도 지극정성으로 대하고...거의 10년쯤 시어머니 간병을 했던 것 같은데 얼마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후배도 아이가 셋이에요.
회사가 한참 구조조정의 회오리바람이 불 때인데, 다른 부서에 있던 저를 찾아와서, "선배, 저 명예퇴직할까봐요"하는 거에요.
"왜? 명퇴 대상도 아니면서..."
"사실은 세째 아이를 가졌는데, 하느님이 주신 아이를 어떻게 하기 싫고..."
"..."
"구조조정 때문에 한 집의 가장 여럿이 등 떠밀려 퇴직하게 생겼는데 저라도 자진해서 명퇴하면 한명은 줄지 않겠어요."
"그래도, 대상도 아니면서..."
"아니에요, 이런 분위기에서 또 배불러서 회사 못다닐 것 같아요."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 이러구는 회사를 떠났어요.
그 후배, 지금 세째아이 낳고, 세 아이 잘 키우고 홀시아버지 잘 모시고, 그리고 남편 내조 잘 하고 삽니다.
그 후배를 생각할 때마다 제 자신이 부끄러워요. 저는 조금만 힘들어도 kimys에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는데...
그 후배, 자주는 못봐도, 명절 무렵이면 꼭 전화를 해요."선배 명절 잘 쇠세요"라고.
이번엔 꼭 제가 먼저 전화하려구요, 명절 잘보내라고.
그 후배처럼,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와 떠나야할 자리를 잘 구별해야하는 건데, 전 그렇게 처신을 잘 하면서 사는 건 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또 한사람...
속이 너무 여리기 때문에 그 여린 속을 감추기 위해 매일 강한 척 하는 그녀, 센 척 하는 그녀...
그녀와도 지금 차 한잔 했으면 좋겠어요. 딸기맛 홍차로...
상처받은 여린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