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청량산 청량사

| 조회수 : 1,794 | 추천수 : 2
작성일 : 2018-11-06 01:09:54




27일 토요일,

경북 봉화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국립공원같은 도립공원



청량골 따라 30여분 걸어 오르니 청량사 초입


일주문 입구

왼쪽 선돌 보이시나요?



장생표(長生標) 같은 퇴계 시비


이곳은 퇴계 영역!,,,을 선포하네요.

퇴계는 청량산 관련 시를 50여수나.

자신을 청량산인(淸凉山人)! 이라 했을 정도로 청량산은 퇴계 70 평생 최애 장소였습니다.

숫제 청량산을 '나의 가문의 산' 이라는 뜻으로 오가산(吾家山)이라 했죠.

한때는 도산서당을 청량산에 세우려 했을 정도.

長生標?

고려시대에 사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던 표지석.

1085년 통도사에 세웠던 석표(石標)가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何處無雲山   어느 곳인들 그름 낀 산이 없으랴마는

淸凉更淸絶   청량산이 더더욱 청절하다네

亭中日延望   정자에서 매일 먼 곳을 바라보면

淸氣透人骨   맑은 기운이 뼈까지 스며든다네



청량산가


청량산 육육봉(六六峰,12봉우리 )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白鷗)뿐.

백구야 소문내지 마라 , 그런데 못 믿을 녀석이 도화(桃花)로구나

떠내려가 다른 이들도 이를 알까 두렵다.


퇴계의 저 솔직한 심정, 와서 보시면 이해됩니다!



일주문




몹시 가파른 길이라 두발을 꾸욱 내찍으며 걷고.



J S Bach The six cello suites Pablo Casals, 1936,39

https://youtu.be/ePPMrX4YtkM


노랗게 물든 서어나무

생강나무와 함께 대표적인 노랑 단풍




가장 유명한 남원시 운봉 서 어나무 숲



당단 풍.

가을산에서 당단풍나무를 빼면 어불성설.

단풍나무과의 큰키나무로 높이가 10m까지 자라요.

단풍나무 중에서 가장 흔해  전국 산지에 넓게 분포.

중국북동부,국동러시아에 주로 분포해서  당나라 당,,,,唐丹楓.





아직 푸르름이 남아 있고.







풍경 보랴,,,사진 찍으랴,,,스틱 찍으랴.

어,축대가 먼저 보이네요



청량산(淸凉山) 내청량사.


보통 청량사 부르죠. 원효가 창건했다네요.

옆으로 10분 거리에  외청량사(응진전)가 있는데 이는 의상이 창건.

과장도 정도껏,,,근거도 없이 원효에 의상이라,욕심이 과하네요.

그 중간 즈음에 퇴계가 어려서 공부하고 귀향 때마다 틈틈히 들렀던 청량정사가 있습니다.

1830년에 후학들이 퇴계가 머물렀던 곳을 기려 청량정사를 지은 것.






안심당




워낙 경사지라  전각마다 축대를 올려 땅을 얻었어요

뒤,좌우로 부드러운 질감의 암릉들이 병풍처럼 빙둘러 청량사를 감싸고.















저 길을 따라가면 청량정사와 외청량사가 나옵니다.



고려 때만해도 청량산 내 수십개 암자가 있었지만 점차 줄다 조선 후기에 거의 폐사되었어요.

있는 절은 지역 유생들에 빼앗기고 청량정사도 애초에는 암자가 있었다는.

그러다 보니 현재 청량사는 문화재 하나 없는 죄다 현대 건축물.

그러나 명품 청량산의 덕으로 나름 운치가 있어요.

하기사 저 풍광에 뭐가 들어선들 폼나지 않을까요.



우측 암릉 뒤쪽에 청량정사와 외청량사가.





로케이션이 끝내주죠.



산을 다니다 보면 알게 되는 진리 아닌 진리 하나.

명산엔 명찰.

경치 좋은 곳엔 다 절이 들어 앉아있다!


청량사에서 옆 산허리를 10여분 돌면 외청량사가 나오고.




외청량사 응진전

청량골이 아래로 보이고.

저 끝 삼각점이 35번 국도와 만나는 청량사 도립공원입구.



응진전 쪽서 바라본 청량사(가져온 사진)


깍은 고구마를 세워놓은 듯

막 벙그는 두툼한 12 연꽃잎들 안에서 포근하네요.

저 봉우리 마다 이름이 다 있어요,,,, 연화봉,연적봉,탁필봉 등등

청량산을 찾은 사대부들의 언어적 유희의 소산이죠.



청량사 맞은편 축융봉에서 바라본 내,외청량사


우측이 외청량사.

내외 사이에 청량정사가 있어요.

조선 후기 사대부,유림들이 저 좋은 곳을 가만 놔둘리가.


청량정사(淸凉精舍)


퇴계 시절에 지은 것이 아니라 1830년 퇴계종가,후학들이 지었다는.

주희의 무이정사를 본뜬 것으로

주희의 주자학 전통을 조선에서는 퇴계가 계승했다는 의미.

퇴계는 어려서 이곳 청량산 암자에서 공부했다네요.

도산서당도 애초에는 청량산에 지으려다 식수 문제로 포기했다는.



본격 산행을 시작합니다.



연화봉





연화봉


연화봉 너머 봉우리 보이시죠?

축융봉인데 주변에 수키로 산성이 있어요.

고려말 홍건적 침 입으로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안동으로 몽진하는데 이때 쌓은 산성입니다.

4개월여 머물렀다네요.

안에는 공민왕 사당도 있습니다.일대엔 공민왕 전설도 많고.

오륜대라는 지명이 있는데,공민왕이 탄 다섯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던 길에서 유래.

안동 차전놀이,놋다리 밟기 아시죠?

이때 시작된 것.




자소봉(紫宵峰)


자소봉에 오르니 조망이 좋네요.

정상에 서면 먼저 하는게 있으니....

먼저 사방을 조망합니다.

그리고는 눈에 띄는 큰 봉우리를 시작해서 하나 하나 스캔하죠.

저건 뭔산,저건 뭔봉,,그리고 아래 고을을.

그리고 떠나기 직전 정상석 한 컷.

원래는 보살봉이였는대 인근 풍기군수였던 주세붕이 자소봉으로 바꾸었다는.

불교 색체 지우려고,,,학문적 편견의 극치.

그런데 조선의 그 학문적 편견의 시작은 실은 퇴계로 부터 시작된다는.

그는 주자학의 한갈래인 양명학 조차 철저히 배격했죠.


宵는 밤을 뜻합니다.

저곳에 서면 해질녁 자주빛 해넘이가,아니면 동쪽으로 해돋이가 장관이다는 뜻이겠죠.

보통 조선 사대부들은 정치는 성리학적으로

일상 삶은 유유자적 자연친화의 도교적이였습니다.

자소봉도 그런 관점서 탄생.





남쪽을 보니 안동댐이 보이네요.

도산서원 인근에 퇴계 관련만 있는게 아녀요.

최초의 강호문학으로 평가 받는 농암 이현보의  '어부가' 아시죠?

(농암은 30년 연배로 퇴계와도 교류)

 농암 종택에 이육사 생가도 인근에 있습니다.






왼쪽 멀리 희미하게 소백산 주능선이 보이고

앞 동네가 영주시,풍기읍으로 부석사가 거기에.

청량산 앞 낙동강 물줄기는 저 태백산에서 부터.


동쪽을 보니


시인 조지훈 고향, 영양 일월산이,,, 이문열도.

사진에서 보듯 청량산(淸凉山)은 태백산에서 갈려 나온 일월산의 서남쪽 24km 지점에 위치.

봉화군 재산면(사진 우측),명호면(좌측)과 안동시 도산면,예안면과 접경을 이루고 있고(사진 뒤쪽).


경북 북부인 봉화,양양 일대는 산 넘어 산! 그야말로 산동네입니다.


아래 암릉 보이시나요?

수십미터 크기죠.


청량산은 경북 북부 유림들에겐 성산.

퇴계의 정신이 깃들어서죠.

그래서 퇴계 족적 찾아 많은 사대부들이 청량산에 들어왔어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남긴 유산기,산행기 중 가장 많은 산은?

당연 금강산이죠.

두번째는?

바로 청량 산입니다.


그들은 청량산에 들어와 퇴계의 족적을 훑고는 봉우리,암릉 마다 성리학적 시각으로 이름을 붙혔어요 .

다른 유명산 봉우리마다 붙혀진 이름들은 불교적,도교적,민속적,무속적,성적인게 많은데

유독 청량산은 사대부적 시각의 이름들이 많아요.

대표적인 12 봉우리인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향로봉, 경일봉, 금탑봉, 축륭봉이 그것.


평평한 12곳에는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라는 이름을.

약간의 굴 형태를 지니는 8곳에도 어김없이 김생굴(신라시대 명필),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최치원)


낮과 밤이  달랐던 사대부들~~

그러면 저 바위는 뭐라 했 을까요?

그냥 못본척?

공식 지명으로,설악산 흘림골엔 여심폭포가 도봉산엔 여성봉이 있으니

그럼 난 여인봉이라!


정상 장인봉으로 항합니다.



맑을 청(淸)자에 서늘할 량(涼)자를 쓴 청량산. 

능선길을 걷다 보면 어디를 출발점으로 하든 크게 길지 않고 힘들지도 않아요.

청량산이란 이름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산임을 실감합니다.

그런데 실은 중국에선 문수보살 상주처가 청량산(오대산)인데 그것 본뜬 것.



탁필봉 ,,, 卓筆


암릉들이 특이하죠.

퇴적에 의한 수성암입니다.

진안 마이산과 같은 특징을 지니죠.

지질학적으로 '타포니'라 부릅니다.

공룡들의 전성기는 중생대 쥬라기 이전의 백악기.

그 백악기 때 이곳은 바다였어요.

그리고 수천만년 동안 바다에 퇴적 작용이 이루어졌고.

다시 수천만년 동안 융기가.

또다시 수천만년 비바람 등으로  균등 아닌 차별침식의 결과가 저 모습.

구멍들은 자갈,돌들이 빠져 나간 것.

(원효굴,고운굴,김생굴 등등 청량산에 굴이 많은 이유!)

암릉 뿌리가 헐리면서 붕괴위험도 있어 보이네요.



청량산 이전엔 水山이라 불렀어요.

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없어서 수산이라는 역설.

청량산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는데도 아이러니하게 물이 부족해요.

저걸 보니 그 이유를 알수 있겠어요.

퇴적으로 형성된 수성암 지역이라 비가 와도 금방 다 빠져 나가버린다는






연적봉

정상 까지 오를수 있는데 전망이 끝내줍니다.

硯滴,,,

먹을 갈 때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용기,,, 연적 같나요?

 먹이 더 맞을듯.



정상은 저 너머에 있어요



해발 800미터에 위치한 출렁다리,길이는 90미터,,,높이는 70미터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설치된 하늘다리랍니다.




청량사 맞은편 축융봉서 보면 이렇습니다.

구름다리 우측은 자란봉(紫鸞峰),좌측은 선학봉(仙鶴峰)

란(鸞)이 새를 의미하는 거 같은데 어떤 새?

사대부들만 아는 그들만의 리그!



아주 커다란 고구마를 세워놓은듯

삐죽삐죽 화강암이 아닌 퇴적암이라 세월의 풍파에 두리뭉실 예쁘게 다듬어졌고.




정상 장인봉.


하늘다리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 길에 이은 긴 철계단을 오르니 장인봉이 똻!


원래 의상봉이였는데 풍기군수 주세붕(1495~1554)이

불교 색체를 지운다며 장 인봉으로 바꾸었여요.

丈人,,,갑자기 왠 아내의 아버지란겨?

옆 봉우리는 丈母봉이라도?


처가 덕을 톡톡히 본 퇴계(1501~1570)~~

주세붕도 처가댁 덕좀 보았을지도.

주세붕은 풍기군수 시절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안향)을 세웠죠.

그 후임으로 온 군수가 퇴계.

5살 아래인 퇴계는 백운동 서원을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으로 승격시켰고.

주세붕은 청량산을 오른 후 청량산록(淸凉山錄)을 썼죠.

이 주세붕과 퇴계에 의해 유학의 세레를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청량산은 불교산에서 유교산으로 변신!


정상석을 자세히 보니 김생집자라고 써있네요.

외청량사 인근에 김생굴이 있는데 김생이 그곳에서 7년간 글씨공부를 했답니다.

서체에 기개가 서렸네요.


참고로,

주세붕과 퇴계가 군수로 있었던 풍기가 어딘고 하니

저 소백산 주능선 앞쪽이 풍기입니다.

퇴계는 풍기군수 때 소백산에 올라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남겼고.




정상 전망대서 바라보니


그림 좋네요.

산능선 평탄면엔 고랭지 채소밭.

여기서 보면 고랭지 농가가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저 마을 사람들은  이곳 청량산을 정원쯤으로 여길듯.


바로 앞 작은 봉우리가 금강봉.

금강봉에서 이곳 정상을 바라보는 맛이 기막혀요.

저 금강봉으로 하산합니다.




왼쪽 멀리 안동댐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주차장도 보이고.

하류 20키로 지점에 도산서원,퇴계종택,유택,,,그리고 농암 이현보 종택도.

아,이육사 생가도 있네요.

퇴계는 저 물줄기 따라 난 길을 타고 이곳에 왔어요.

강호문학의 선구자이자 영남가단의 중추인 농암 이현보(李賢輔,1467~1555).

그가 노닐던  강변의 정자도 머물면서.





저분들은 관절에 무리가 왔는지 게걸음으로 내려가네요



금강대 전망대서 바라본 정상 장인봉

우측 검정 암릉이 하늘다리가 있는 선학봉.



봉화 청량산은 영암의 월출산,청송의 주왕산과 더불어 3대 기악(奇嶽).



설악산 단풍하고는 또 다르다는.

당단풍 나무가 없어 붉음이 사라지고 노랑,황갈색,그리고 푸르름의 조화.

카페트 혹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녁같아 오히려 정감이 일죠.



아랫 계곡은 청량산 입구~청량사 길

우측 봉우리가 공민왕의 청량산성이 있는 축융봉. 




축융봉(祝融峰)


중국의 오악 중 남악은 형산(衡山,1,300m),,,그 형산 정상 봉우리가 축융봉입니다.

축융봉은 장수를 의미.

중국인들은 혈산 축융봉에 올라 향을 들고 소원을 빌며 장수를 기원.   

불교식으로 말하면 무량수(無量壽)를 축원한다는.



경사가 아주 심해요.

정상 장인봉서 하산까지 2키로 정도인데 심한 비탈길이라

무릅이 시큰 시큰.







당단풍




낙동강과 35번 국도










생강나무.

이른 봄 샛노란 꽃으로 봄을 알리지만

잎은 가장 늦은 겨울 문턱 까지 남아 늦가을을 노랗게 수놓습니다.

봄날 진한 향은 덤.




일상서 가을 노랑의 상징은 은행잎이지만 

산속에서 노랑은 당연 생강나무.

관목에 불과하지만 뜯어보면 정말 서사가 넘치는 생강나무입니다.





보통 생강나무는 노랑이지만 청량산의 생강은 붉은기를 띈다는.

설악산 생강나무 한번 보실레요?




설악 생강나무

확연히 차이가 있죠?








35번 국도는 태백시 까지 낙동강과 동무하며 달립니다.

이땅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멋진 도로죠.

첩첩산중 옛길은 여울,강을 따라 형성되다 보니 길의 경치가 좋을수 밖에.

부디 도로확장일랑 없기를....





삼부자 소나무랍니다.

별거 다 자랑이네요 ㅋ

겨우 일백년 정도 될듯말듯 하던데.



다 왔네요.



학소대 (鶴巢臺)

학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이니  얼마나 청량하겠어요.


사대부들이란  음풍농월에도  꼭 옆에는 거문고에 기생 그리고 학 한마리는 있어야해요.

그래서 유명 산에는 어김없이   학소대 지명이 있다는.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진짜같은 인공폭포.


인공폭포도 이정도면 인정해줘야죠

위쪽 계곡서 물을 학소대 벼랑으로 돌린듯해요.


흔히 사람들은 청량산을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입 다물고 나온다"고 말한답니다.

청량산의 수려한 경관에 놀라 입 벌리고 들어갔다가,

나올 적엔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워 입을 다물어 버린다는 것.


퇴계 이황도 세상에 알려질까 한걱정했어요.

청량사 일주문 입구에 세워진 시비 내용이 바로 그 것(아랫 사진).

퇴계는 저 여울 어딘가에 앉아 시를 읊었을 겁니다.



옮기면,

청량산 육육봉(六六峰,12봉우리 )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白鷗)뿐.

백구야 소문내지 마라 , 그러나 못 믿을 건 도화(桃花)로구나.

복숭아 꽃 떠내려가 다른 이들도  알까 두렵다.





귀경 직전 주차장서 바라본 청량산.



낙동강 상류


저 물길 따라 오르면 낙동강의 발원지 태백시 황지에 이르러요.

그러니까 저 물줄기가 낙동강 본류인 것.

오지 철도 여행으로 유명한 분천역,양원역,승부역,철암역도 중간에 있죠.

영주에서 동해시까지,,,

영동선이 바로 낙동강 상류 본류인 저 물길 따라 달립니다.




&&&&&....


퇴계 별책 부록



처가덕을 톡톡히,,그리고 성공한 사업가


먼저 일생을 정리해보죠.

1. 1501년 7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남

2. 부친은 생후7 개월 즈음 사망

3. 12살 숙부로 부터 논어 배움

4. 20세 주역에 빠져 위장병이 왔고 평생 고생

5. 21살  영주지역 외동딸과 결혼(이후 엄청남 재산이 퇴계로)

6. 23세 진사시험에 3번 연속 떨어지고 고뇌하다 심경(心經)을 읽으며 깨우침.

( 心經은 송나라 진덕수가 경전,도학자들의 저술 중 심성수양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집한 책)

7, 첫부인 둘째 낳고 산후 조리 중 사망

8. 27세 경상도 향시에서 진사 합격

9. 3년 후 도산 인근으로 유배온 권질 여식과 두번째 결혼(정신장애인,지참금 상당)

10. 한양 유학,그리고 성균관 입학

11. 33세에 문과 합격 후 본격 직장 생활.

12. 둘째 부인 사망 후 낙향해 낙동강 변에 양진암 짖고 은거.

13. 48세에 외직을 자처해 단양 군수 이어 풍기군수.

14. 50세 군수직 사직하고 낙향해 한서암 짓고 제자 가르침

15. 57세 도산서당 짓기 시작해 61세에 완공

16. 59세 때 33세의 고봉 기대승과 8년에 걸쳐 서신을 통한 사단칠정론 논쟁,,,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조선 주자 성리학을 정립

17.공조판서,예조판서 거쳐 69세 우찬성

18.낙향 후 70에 본가에서 사망


퇴계의 개략적인 일생입니다.

아,성균관 대사성(총장)을 세번이나 했는데 빠졌네요.

퇴계 하면 1우리는 천원 짜리 지폐 주인공에 조선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도로 알고 있죠.

그리고 무려 20여번의 사직 상소에,,, 33세 문과 합격 후 낙향과 출사를 반복했듯

지독히도 벼슬을 떨쳐내려한 자연친화적인 인물이라는 것.

이런 자연주의적 삶은 그의 묘지명을 보면 알수 있죠.

당연 묘지명은 세상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로
한 인간 정신세계의 결정판!

Bernard Shaw의 묘비명인 "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처럼.


퇴계의 유언으로 이리,

 退陶 晩隱 眞城 李公之墓 

도산으로 돌아와 / 만년을 숨어산 / 진성 이씨 지묘

보통은 생전의 관직에 추증 관직까지 모조리 넣죠.

다음은 이순신 묘비명.

증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좌의정 겸 영경연사

덕풍부원군 행 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충청 전라 경상 삼도수군통제사 시 충무 이공순신지묘.



그런데 그런데.........

 퇴계엔 우리가 모르는 흥미로운 사실이 있으니....


첮째로 처가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퇴계가 학문에 몰두하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을수 있는 기반은 처가로 부터 나왔습니다.

첫부인이 외동딸로 처가집이 엄청난 갑부었는데 26세 때 난산으로 사망하죠.

3년 후 재혼한 두번째 부인 또한 상당한 지참금을.

(두번째 부인이 바로 문제의 정신병 소유자로 숫한 애피소드를 남긴 인물)

이리저리 60만평에 이르는 토지를 소유하게 됩니다.

60만평!!!


둘째는 애처가에 로멘티스트(?)였다는.

두번째 부인이 정신질환으로 숫한 기행에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개의치 않았다는.

두번째 부인이 죽자 전처 소생 두아들에게 삼년상을 치르게 했고 자신도 낙향을.

물론 삼년상 직후 다시 기생 두향과 사랑에 빠집니다.


셋째는

  정치가라기 보단 오히려 성공한 사업가 였다는.


분재기(分財記)라 하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재산상속 문서를 말합니다.

퇴계가 죽으면서 남긴 분재기는 남아있지 않지만 

맏아들이 퇴계 사후 16년 지나  3남2녀 자식에 나눠주는 분재기를 보면 퇴계의 재산을 추측할수있죠.

그런데 맏이가 자식들에 남긴 분재기를 보면 좀 놀라운게 있다는.

다섯 자녀 모두 남여 차별없이 거의 균등하게 상속했다는 것(조선 중기까진 대부분 균등상속) 외에,

소유한 노비의 수가 367명이나 달했다는 것.

당시는 토지보다 가치가 높은 게 노비.

(당시 노비 1인 가치는 암소 한마리에 적잖은 곡식을 얹인 정도)

그때는 미개간지가 많아 노비들 통해 개간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었기에.

그런데 퇴계가 큰아들에 보낸 서찰을 보면 흥미로운 게 있죠.

퇴계는 노비가 같은 노비와 결혼하려 하자 못하게 막아요.

양인과 혼인을 강요하고 있는 거죠.

양인과 결혼 유도니 퇴계의 선의라구요?

아뇨!!!

당시는 노비가 양인과 결혼하면 자식도 노비가 되었어요.

일천즉천(一賤卽賤),,,

즉 부모 중 한 명만 천인이면 자식도 천인이 되니 

노비를 양인과 결혼시켜 노비 수를 늘리려 했던 것이죠.

(어! 맹자님의 측은지심,수오지심은 어디다 내팽게친겨?)


또 당대 수익 사업이 높았던 목화 재배 필요성을 맏아들에 역설합니다.

목화 상업 할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부를 쌓으려 한 거죠.

사/농/공/상

사대부가 가장 꺼리는 게 商인 것을 생각하면

 도학자  퇴계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아래는 퇴계 죽고 사관들에 의해 선조수정실록에 실린 퇴계 졸기(卒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자력으로 학문을 하였는데, 문장(文章)이 일찍 성취되었고…
오로지 성리(性理)의 학문에 전념하다가 주자전서(朱子全書) 를 읽고는 그것을 좋아하여
한결같이 그 교훈대로 따랐다… 빈약(貧約)을 편안하게 여기고 담박(淡泊)을 좋아했으며 이끗이나 형세,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


......빈약(貧約)을 편안하게 여기고 담박(淡泊)을 좋아했으며 이끗이나 형세,

분분한 영화 따위는 뜬구름 보듯 하였다......


졸기 이 끝부분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퇴계.

위인전의 헛점,,,뭔가 빈공간이 보이시나요?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테디베어
    '18.11.6 9:48 AM

    와~~ 단풍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퇴계 부록까지 잘 읽었습니다.

  • wrtour
    '18.11.18 2:28 AM

    감사합니다.
    가는 가을 붙들어 매시고 행복하세요

  • 2. 달빛소리
    '18.11.6 8:32 PM

    멋진 풍광에 퇴계선생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까지 들으니
    무슨 답사여행 갔다온거 같습니다.
    잘 봤습니다.

  • wrtour
    '18.11.18 2:31 AM

    달빛에 비친 청량사는 더 기막힐듯해요
    늘 행복하세요.

  • 3. nake
    '18.12.9 11:31 AM

    정상에서 그산이 그산같은데 알아보는게 신기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0572 남원 만복사지( feat 김시습 만복사 저포기) 5 wrtour 2018.11.17 964 0
20571 남원 광한루 4 wrtour 2018.11.17 1,440 1
20570 가을 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바라본다 2 도도/道導 2018.11.16 1,081 0
20569 숨은 고양이 찾기 2 띠띠 2018.11.15 1,827 2
20568 사랑, 그것 4 쑥과마눌 2018.11.14 1,282 2
20567 1박 2일 지들끼리 13 고고 2018.11.13 2,766 2
20566 삐용 12 띠띠 2018.11.12 2,151 3
20565 가을을 울안에 가두다 3 도도/道導 2018.11.12 1,001 1
20564 고령화 사회를 보는 듯... 4 도도/道導 2018.11.09 1,835 1
20563 견성이나 인성이나 2 고고 2018.11.08 1,658 2
20562 사전점검 앞둔 헬리오시티 정원 구경하세요 3 anny79 2018.11.08 4,079 0
20561 어떤 삶의 가능성 4 쑥과마눌 2018.11.08 1,283 1
20560 떠나는 마음과 보내는 마음이 가득한 피아골 4 도도/道導 2018.11.07 1,104 0
20559 마실 9 테디베어 2018.11.06 1,688 1
20558 청량산 청량사 5 wrtour 2018.11.06 1,794 2
20557 대안학교 춘천전인학교 을 소개합니다~ 나무꾼 2018.11.05 1,226 0
20556 빗장울이 떨어져도 아침에 만나는 풍광은 언제나 축복이다. 2 도도/道導 2018.11.05 952 1
20555 가을을 한 보따리 가져 옴 5 쑥과마눌 2018.11.04 1,343 0
20554 마루의 가을 16 우유 2018.11.03 2,242 2
20553 가을이 쏟아진 곳에서 2 도도/道導 2018.11.03 808 0
20552 으허허 아놔 5 고고 2018.11.02 1,473 0
20551 가을의 화려함을 즐기다 2 도도/道導 2018.10.31 1,097 0
20550 아기 유기견 새봄이 7 Roland 2018.10.30 2,574 0
20549 식구 4 고고 2018.10.30 1,360 0
20548 비오는 날 카메라를 들고 나가는 이유 7 도도/道導 2018.10.29 1,24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