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편인 내가 유일하게 타인의 노력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냥 따라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금요일 음악회인데요, 캘리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음악회를 자주 다닌다는 말을 듣고 함께 가도 되는가 물어본 이후
거의 5년 세월을 그녀가 정한대로 패스,패스 하면서 따라다니고 있지요. 그래서 심지어 어제 처럼 음악회가 끝나고 가장
큰 목소리로 소리 지르고 환호한 날조차 음악회의 정식 명칭을 모르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즐기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 참 신기한
일이랍니다.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에서는 손열음의 피아노를 , 브람스 피아노 4중주에서는 정명훈의 피아노를 들은 날, 특히 브람스의 경우
베르테르란 부제가 설명해주듯 격정이 몰아치는 연주가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이 곡은 캘리님이 미리 행복한 왕자 카페에 곡을
올려 주신 덕분에 연주회에서 만날 곡인지도 모르고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상당히 멜로디는 친숙했지만 역시 현장에서 들을 때는
느낌이 달라서 비교하면서 듣는 재미를 만끽하기도 했고요.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클래식 기타 3중주로 파가니니 모음곡 연주가 있었을 때는 어라, 이 중의 한 곡은 내가 연습하는 곡과
멜로디는 같은 느낌인데 속도나 기교면에서 도저히 같은 곡이라고 볼 수 없네, 귀를 쫑긋거리면서 듣기도 했는데요 바이올린 연주자의
파워가 압도적이라고 느낀 날, 적절한 표현이 무엇이 있을까 찾게 되기도 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녀가 브람스에서는 비올라
주자로 다시 나온 것이었습니다. 연주자는 같은 사람인데 악기가 바뀌어서 순간 내가 무엇을 잘 못 보았나 싶어서 어리둥절한 경험을
한 날이기도 했지요.
연주가 다 끝나고 7명이 나와서 여러 번에 걸친 앙콜곡을 연주해주던 순간. 정명훈과 손열음의 어울림, 첼리스트 양성원의 단원들을
바라보는 미소가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악기로 이루어내는 하모니, 그것이 일이면서 동시에 놀이일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 부러움을 느낀 날이기도 했지요.
오늘 같은 날,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고 느꼈지만 산노을님이 토요일 아침 일찍 몽골로 의료 봉사 떠난다고 해서 아쉽게 헤어지게 되었고
집에 와서는 슈베르트와 브람스 음반을 다 뒤적여서 골라내고, 어제 밤부터 오늘까지 계속 이런 저런 곡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음악회는 역시 현장도 좋지만 그 이후로 이어지는 after가 별미로군요.
음악과 더불어 보고 있는 그림은 샤갈입니다.
목요일 수업의 민경이가 좋아한다고 , 그의 그림도 보고 싶다고 해서 골랐는데요.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제 기분과도 맞아떨어지는
이미지이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