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늦은 시간에 들어온 보람이, 자다가 일어나서 아이 얼굴을 보았더니
엄마, 역시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라고 생각해 라고 말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응, 어제 지나가는 소리로 내일 생일이라고 말했더니 저녁 시간에 서프라이즈로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거든.
사연인즉슨 아사히 글라스에서 한국에 와서 내년에 입사할 신입 사원을 모집하려고 홍보차 왔다고 하네요. 인사팀에서
인사팀 직원들과 이틀 함께 다니면서 통역도 하고 안내도 하고 역할을 한 모양인데 마지막 날 밤이라고 모여서
함께 놀던 중에 일어난 일을 말 한 것인데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달력에서 7일이란 날짜를 보고도 다음 날이
보람이 생일이란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엄마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갑자기 잠이 확 깨버렸습니다.
어물거릴 수가 없어서 솔직히 고백을 했습니다. 보람아, 엄마가 솔직히 말해서 오늘 날짜를 보고도 네 생일 건을 완전히 잊고 있었네
정말 미안해, 미역국도 준비 못하고 말이야. 그랬더니 아이가 이미 사람들과 축하를 했고 내일 낮에는 대학친구들과 밤에는 다른 친구들과
약속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의연하게 말을 하네요. 그래도 민망하고 미안한 것은 역시 남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얼굴 들기 어렵게 만들었던 다른 사연 한 가지가 기억 저너머에서 떠오르네요.
그 아이의 대학수학능력 시험 날, 너무 긴장한 탓인지, 새벽에 시간을 맞춘 전화벨이 들리지 않아서 내처 자고 있었습니다.
비몽사몽하던 중에 집으로 들어온 동생이 언니 왜 아직까지 자고 있어? 그래서 화들짝 놀라서 보람이를 깨우고 부산스럽게 준비해서
시험장인 학교까지 가던 중 길은 얼마나 밀리던지요!!
만약 동생이 태워준다고 오지 않았더라면 ....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장면인데요, 이상하게 그 이후 꿈에서도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아찔한 순간입니다.
오늘 밥먹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자 앞에 앉은 다른 사람이 슬며서 하는 이야기, 아들의 신검받는 날을 표시하느라 달력에
6일이라고 크게 써놓았는데 오늘에야 그 날짜가 눈에 들어왔노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일단 오늘 가보라고 아들을 재촉해서
보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로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이런 식으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일까, 순간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다른 것은 몰라도 기억력 하나는 빛난다고 생각하던 제게도 이런 식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기 시작하면
앞으로는 어떤 사태가 올 것인가 미리 겁을 먹어도 소용이 없겠지요?
그러고 보니 내년부터는 아이의 생일날이라고 옆에 있을 수도 없구나, 그런데 한국에서 어쩌면 생일 날 함께 있을 수 있는 당분간은
마지막 생일인데 이렇게 되어버렸네 혼자서 끌끌대고 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 자책해보아야 소용도 없고, 그냥 일어나서 운동하러
가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시기가 어린 시절의 보람이 생일이 아니란 점이겠지요?
너무 어린 나이면 자신의 생일을 잊어버리는 엄마라니 이해가 불가능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