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토요일 지리산 피아골 행,,, 아침 7시 서울 출발~~
경부 타고, 대전서 대전~통영 간 타고,함양서 88 타고,,,남원으로 빠져나와 달궁계곡 지나 성삼재에.
단풍철이라 정체로 12시 20분 도착.
노고단 거쳐 피아골 계곡으로 하산 후 연곡사까지.11키로 약 5시간 소요 예정.
출발지는 이곳 성삼재(性三재.1,102m)~~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고개로,지금은 구례~남원까지 관통도로가.
마한,진한,변한,,, 삼한시대의 마한의 왕이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
운무 속 아래로 구례 지리산 온천단지와 산수유 마을이 보이고~~
성삼재 노고단 일대는 온통 산죽 세상~~~
노고단 까진 쉬운길,어려운길로 나눠 정비했기에 남녀노소 누구가 쉽게,,,그냥 산책로 정도.
노고단 대피소서 물 한모금 마시고~~
짝뚱 노고단 정상~~~
진짜는 맞은편 7백미터 지점에,,,자연 훼손이 너무 심해 고육책으로.
한시간 2.6키로 지나니 노고단(1502미터) 고개길에~~
여기서 부터 피아골 갈림길까지는 산허리를 지나는 완만한 내리막 길.
노고단 일대는 삼한시대부터 하늘의 뜻을 받으려고 재단을 쌓고 재를 지낸 신성지역.
1920년대는 건물이 50동이나 될 정도의 대규모 선교사 휴양시설이.
허나 진짜 정상은 천하를 다 삼켜버린 운무로 포기(아무 것도 안보이니).
맑은 날 노고단 정상에 서면,
산 아래로는 구례 황금들녁 옆으로 푸른 섬진강이 S라인을 그리고,
수평으로는 장대한 지리산 봉우리들과 능선의 파노라마가.
또한 최고 운무에,일출 감상처~~
지존 천왕봉을 비롯한 연봉들이 다도해의 섬처럼 운해를 뚫고 솟아오르는 모습은 이곳 노고단에서 볼 때 가장 장엄.
그래서 지리산을 12번이나 오른 남명 조식은,
/지리산에 올라야 산을 보고 물을 보고, 그리고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본다/ 했겠지.
*소설 태백산맥에서 노고단 일출 묘사가 압권인데 생략*
이제 돼지령 향해 고고.
산길은 온통 산죽 세상~~
나무들이 옷을 다 벗으니 더욱 선명하고,,,그래서 이 길은 겨울이 더 돋보인다는.
청과 백의 선명한 대비,,,파란 산죽 위로 쌓인 흰눈들이란.
운무는 더욱 짙어져가고~~
후덕해 보이는 한 파리지엥~~~
정상까지 종주한다는데,앞으로 23키로는 더 가야.
산허리 길을 감싸안은 운무 속,,,저절로 서정이 일고~~
왕초보가 지리산을 한번이라도 맛보고 싶다면 성삼재~노고단 정상(힘들면 여기까지)~돼지령~
삼도봉 구간을 택하면 결코 후회는 없을 터.
유턴 후 노고단서 화엄사 계곡으로 하산해 화엄사까지면 더욱 좋고.
아니면 피아골 계곡으로 빠져 연곡사로.
수도권이라면 여수행 KTX 타고 구례구역 하차,성삼재 까지 택시를(개인당 1만원),,,겨울 제외하고 버스도 운행.
돼지령~~
일대는 원추리 자생지로,멧돼지들이 원추리 뿌리를 캐먹기 위해 자주 출몰한다해서 돼지령이라.
투구꽃의 열매~~
9월에 꽃을 피우는 대표적인 가을꽃.
천남성(아래 사진)과 함께 사약을 만들던 독초.
한방에서는 투구꽃을 초오(草烏)라 불리는데 장희빈 사약이 초오였다나.
투구꽃 열매~~
지난 9월 전남 광주에서 부부가 초오( 투구꽃)뿌리로 담근 술을 소량 마셨답니다.
남편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고 부인은 중태.
천남성 열매~~
큰까치수영도 가을옷으로 갈아 입었고~~
물기 머금어 더욱 푸른 산죽과 조화롭네요.
지리산 10 경을 아시나요?
1 경 - 천왕봉 일출 , 2 경 - 노고단 운해 , 3 경 - 반야 낙조 , 5 경 - 불일 폭포 ,6 경 - 벽소 명월 ,7 경 - 세석 철쭉 , 8 경 - 칠선계곡 ,
9 경 - 섬진 청류 , 10 경 - 연하 선경인데
제4경이 바로 피아 단풍~~~!!!
정말 그리 대단한지 지금 부터 확인해보죠.
자,피아골 향해 하산합니다.
고도를 낮추니 서서히 단풍이 나오고~~
운무가 짙어지더니 조금씩 가랑비로 변하고~~
가량비로 더욱 싱그러운 산죽~~
두시간을 걸었는데도 산죽 세상은 끝이 없고~~
추사 김정희가 지금 나라면???
세한도 소재는 잣나무 아닌 산죽이였을지도.....
망상인가요??
야!
그림 한번 굿~~~.
저분들, 알록달록 속마음까지 젖였을듯.
조정래 <태백산맥>의 피아골 단풍 관련 묘사로 나의 소회를 대신합니다.
/지리산의 시월은 가을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고 있었다. 골짜기 골짜기마다 가을빛으로 흥건하게 물들어 있었다.
잎이 작고 얇은 나무들부터 색갈이를 하기 시작하여 잎이 크고 두꺼운 나무들까지 가을로 치장하고 있었다.
분 홍, 주황, 노랑, 빨강, 나무에 따라 그 색깔은 가지 가지로 물들어 산을 뒤덮고 있었다./
/여러 가지 나무들이 무질서하게 숲을 이루었어 도 녹음은 자연스럽게 조화되었듯이 그 나무들이 단풍들어
온갖 색깔들로 변해도 그 다양한 채색들은 또 그지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지고 있었다./
/봄이 늦어 철쭉을 유월초순에나 피워내는 지리산은 가을은 또 유난스레 빨라 시월이면 단풍들 지 않은 나무가 없었다.
다만 바늘잎을 가지 침엽수들만이 둔감하게 초록빛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골짜기마다 단풍이 흐드러지고 자지러지지 않은 데가 없었지만 피아골은 특히나 유별났다.
피아골에는 금방 뿌려놓은 핏빛 같은 선홍의 단풍들이 다른 골짜기에 비해 유독 많았다.
그 새빨간 단풍들은 계곡의 물까지 묽게 물들였다./
/주황빛이나 주홍빛의 단풍들 사이에서 핏빛 선연한 그 단풍들은 수탉의 붉은 볏처럼 싱싱하게 돋아보였다.
피아골을 단풍으로 유명하게 만들어 지리산 십경 중에 하나로 끼이게 한 그 나무는 바로 단풍나무였다.
피아골에는 단풍나 무가 다른 계곡에 보다 많아 단풍이 빨리 들면서도 그 곱기가 빼어나. 다른 계곡을 앞지르고 있었다./
/경사가 급한 계곡을 올라가면서 보면 단풍잎들은 곧잘 하늘과 겹쳐져 보이고는 했다.
해맑게 푸른 가을하늘과 어울어진 새 빨간 단풍의 투명함은 흡사 백설 위에 점점이 찍힌 피의 선연함이었다.
그러나 피아골의 단풍이 유명한 것은 단풍이 고와서만이 아니었다/
/피아골은 그 길이가 길 뿐만 아니라 암반과 기암괴석들이 많았고, 암반 위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넓고 굵었다.
단풍잎들은 가지가지 형상의 바위들과 넉넉하게 흘러내리는 물과 조화를 이루어 그 곱기가 한층 돋보였던 것이다/
피아골 삼거리서 2키로 걸으니 피아골 대피소가~~
붉은 건 당단풍,복자기나무,사람주나무,가래나무,신나무,철쭉,붉나무~~
노란 건 생강나무,서어나무.
황갈색은 참나무 류.
저 두분,피아골 가을을 다 갖였네요.
/피아골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지리산 시인 이원규님 시정에 동의하시나요?
/산이 붉게 타니 산홍(山紅) 이요/
/단풍이 비친 맑은 소가 붉으니 수홍(水紅) 이요/
/골짝에 들어선 사람들도 단풍에 취하니 인홍(人紅 ) 이라/
남명 조식이 어느 가을날 피아골에서 읇은 삼홍소(三紅沼)라는 시입니다.
피아골 삼홍소라는 명칭은 여기서 유래.
자작나무 군락지~~
거의 다 내려왔네요.
여전히 산길은 피아골 따라~~
대나무 숲이 나오고~~
대나무 숲 너머로 마을이~~
직전 마을입니다.여기까지 차가 들어오고.
稷田입니다.주식으로 쌀 농사 대신 피를 심어서겠죠.
피아골 지명 유래이기도.
외에도 피아골 유래는 빨치산들이 흘린 피에서.
수탈을 피해 이상향 찾아서,,,등등.
직전 마을 부터 연곡사 까진 포장도로~~
<태백산맥,이어서 >
/그러나 피아골 단풍이 그리도 핏빛으로 고운 것은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고 했다. 먼 옛날로부터 그 골짜기에서 수 없이
죽 어간 사람들의 원혼이 그렇게 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떠도는 말은, 연곡사 아래서부터 섬진강
어름까지 물줄기를 따라가며 양쪽 비탈에 일구어낸 다랑이논마저 바깥세상 지주들에게 빼앗기고 굶어죽은 원혼들이
그렇게 환생하 는 것이라고도 했다./
/바람이듯 떠돌며 전해져오는 그 두 가지 이야기를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옛날부터 피아골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것이고, 바깥세상에서는 살 길이 없어 이 지라산 골짜기로 파고들어
비탈에 다가 층층이 돌을 쌓아올려 땅뙈기를 만들어내 연명해가던 사람들은 여러 곡절 끝에 그것마저
빼앗기고 굶어죽는 일들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잊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 전하는 것은 원혼들이 단풍으로 환생했다는
신기함 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거기서 많은 목숨들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 오고 있었던 것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바람처럼 떠도는 그 이야기는 바로 사람들의 삶을 엮어놓은 역사였던 것이다/<계속>
연곡사(燕谷寺,구례군 토지면) 도착~~
8세기 화엄사,대원사에 이어 지리산에 3개의 절을 세운 전설적인 연기법사가 창건한 절.
가을이라 경내는 국화 화분으로 꽃단장을.
매화나무가 많아 봄이면 경내가 매화향으로 진동하죠.
현재 주지스님이 국화에 심취하신 분. 절앞 공터 약3000평에 국화를 재배하고 있고.
연곡사는 박경리 <토지>의 배경이기도~~
서희의 할머니가 여기 연곡사에 불공 드리러 온 이야기가 나오죠.
연곡사에서 이런저런 사연으로 사생아 김환을 낳고....
하동 악양에서 이곳 피아골까지는 한나절이면 가능,,,가운데 지점에 화계장터가 있고.
연곡사는 조선 후기까지 왕실 위패용으로 쓸 밤나무 숲을 관리해오다(栗木之所) 한말 의병의 근거지가 되면서 황폐화.
엎친데 덮쳐 한국전쟁 땐 빨치산 아지트가 되면서 전각들이 전소.
지금 건물들은 최근에.
그러면 뭘 볼게 있다고 피곤한 다리 이끌고 이곳엘??
동부도(국보)~~
동쪽에 있어서 동부도.8세기 말.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부도와 더불어 가장 아름답다는.
정연한 비례,안정된 체감률 & 단아함이 돋보이고. 우리나라 부도 중 '甲 of 甲'
도선국사의 부도(승탑)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도선은 바로 앞 섬진강 건너편 광양 백운산 옥룡사에서 입적.
미술사학자들은 신라하대를 흔히 '부도의 시대'라 부르는데.
그 만큼 조형적으로 뛰어난 부도가 이때 많이 만들어졌다는 뜻.
구산선문 계열인 화순 쌍봉사,문경 봉암사,장흥 보림사,하동 쌍계사,곡성 태안사,남원 실상사에도
유사한 조형의 부도가.
5분 여 오르면 북부도(국보)~~
현각선사 부도로 추정.
고려 초기 작품으로 옆 동부도를 발전적으로 모방했고.(싱크로율 80%)
당대엔 이렇게 사찰을 중창한 중흥조가 입적하면 개창조 부도를 모방한 것이 일반적이였네요.
그래서 앞에 나열한 구산선문 사찰엔 각각 비슷한 부도가 많고.(명품 모방이야 동서고금 일반적 현상)
북부도에서 서쪽으로 5분여 내려오면 조선시대 네기의 부도(서부도)가 있는데 그 중 소요대사 부도(보물)~~
이것도 동부도를 밑그림으로 해 나름 운치있게 변주.
주인공은 조선시대 소요대사로 그 는 서산대사의 4대 제자 중 일인.
이후 조선 불교는 이들 4대 계보가 면연이 이어지면 지금의 조계 종파를 형성.
소요대사는 조일전쟁 때 불타 버린 연곡사를 다시 세웠고.
이렇듯 연곡사엘 오면 신라 하대 부터 고려 초,그리고 조선 중기까지
부도의 조형적 변천사를 비교사적으로 알수있다는.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그는 광양만에 집결해있는 일본군에 대적하기 위해 이것 연곡사에서 곡성,구례 등 호남 의병들을 모았다는.
선조가 바로 임진외란 때 의병장 고경명.
비는 동백나무 숲에 안겨있는데 동백의 붉은 모가지가 뚝뚝 떨어지는 4월이면 처연할듯.
그래서 <태백산맥>엔 이곳 피아골 관련 의병 얘기가 나오는데~~
/사람들의 한맺힌 죽음은 임진왜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왕조라는 것이 한심하고, 거기에 붙어서 일신의 영화나
누리자고 도모하는 벼슬아치들 또한 한심하여 왜놈들이 쳐들어 왔으나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왜놈들은 방화와 약탈과
살인을 일삼 으며 경상도지방을 휩쓸고, 전라도 땅도 어지럽히려고 들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섬진강을 따라 전라도땅을
들어오는 외길목 이 바로 피아골 입구였던 것이다.
그 길목에서 왜놈들을 막아내지 못하면 전라도 내륙땅은 그대로 내줄 수밖에
없었다. 관군 은 이미 있으나마나한 상태라서 백성들은 의병을 일으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 승려들도 합세하여
연곡사에 군량미를 쌓고 지휘본부를 만들었다. 의병들은 밀려드는 왜놈들에 맞서서 싸웠지만 무기부터가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의병들은 섬진강 상류를 피로 물들이며 죽어갔고, 힘이 모자라게 된 그들은 피아골로 밀리게 되었다.
싸우며, 죽으며, 밀리 며를 되풀이하면서 의병들은 연곡사도 빼앗기고 자꾸 피아골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왜놈들의 포위에 걸 려 삼흥소 부근에서 거의 다 잡히고 말았다. 왜놈들은 결박한 의병들을 바위에 세워
일일이 목을 쳐죽였다. 칼을 내려칠 때 마다 목 따로, 몸뚱이 따로 계곡물에 곤두박혔다. 삼흥소가 시체로 넘치고,
거기서부터 피로 물든 계곡물이 이십리를 넘게 흘러 강에까지 닿았다. 그리고, 갑오년에 일어난 농민전쟁을 또
피아골의 물은 피로 물들었다. 그때도 농민들은 목이 뎅겅뎅 겅 잘리며 계곡물에 곤두박혀 온몸의 피를 남김없이
쏟아내고 죽어가야 했다. 알량한 왕조는 왜놈들을 불러들여 청부살인권 을 주었던 것이다.
그 다음으로, 왜놈들의 노골적인 식민지화에 저항하여 한일협약을 계기로 도처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그때 전남의병은 몰리고 몰리다 그 최후를 피아골에서 맞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순사건때도 많은 사람들이 섬진강을 건너 피아골로 쫓겨 들어와 피를 뿌렸던 것이다./
고려초 경종 때 현각선사 부도비~~
몸돌은 사라졌고.
부분도~~
괴기스러운 만큼 파워가 느껴지는.
미술사적으로 표현하면,'고려시대 문화적 특성을 잘 반영했다'라.
여의주를 물고 잎 가엔 수염까지.
&&....
연곡사부터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수키로 계곡변 좌우 다랭이논(계단식 논)이 유명한데 밤이라 아쉽고.
6시 연곡사 출발해 구례서 순천~전주간 고속도로 진입.
예상 외로 소통이 원활해 10시 서울 도착.
동서 50km, 남북 32km, 둘레 320km로 3개도와 5개 시군에 걸쳐있는 산악군.
주봉인 천왕봉 1915m을 중심으로 촛대봉, 형제봉, 토끼봉, 반야봉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만 20개가 넘는,,,
그런 지리산~~~!!
할말은 많치만 현지 단풍 라이브라 서둘러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