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의 일입니다. 화요일 수업을 함께 하는 진달래씨가 전한 말, 우리가 함께 읽고 있는 일본문화사
자신의 책이 파본이라서 출판사에 연락을 했는데 이 쪽에서 파본을 보내기도 전에 책이 도착했다고요
놀랍고 고마운 마음에 파본인 책을 보내면서 그녀는 볶은 커피를 정성껏 넣고 아무래도 제 상상이지만 감사의
인사를 정성껏 보냈을 것 같아요, 그랬더니 출판사의 사장님이 직접 연락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정성스러운 태도는 어디서 비롯되나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녀는
화요일에 모여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이야기를 했고, 출판사 사장님은 주부들이 모여서 이 책을 오랜 시간 읽는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서 그렇다면 장항동 제본소에 올 일이 있는 김에 자신의 출판사 책을 몇 권 전해주고 싶다고 해서
오늘 오후에 행복한 왕자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덕분에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의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
책을 매개로 만나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사장님과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그 분의 자녀들이
한국에서 입시 공부를 하지 않고 독자적인 방식으로 살다가 일본 대학에 스스로 공부해서 진학한 이야기를 듣던 중
그렇다면 한국에 나오게 되면 행복한 왕자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제 머리는 그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는 전하겠노라고 긍정적인 답을
주시더라고요.
일본문화사를 번역한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사실 번역자가 원래 독문학과 출신인데 나중에
일본문화사를 가르치게 된 과정에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궁금했지요. 번역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저자와 의견이
갈리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견해를 주석으로 달아놓으면서 번역한 부분이 돋보여서 궁금했던 역자이기도 했고요.
그래서 어렵사리 부탁을 했습니다. 혹시 번역자와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연결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요.
이런 식의 부탁을 하면서 제 자신이 참 많이 변했구나 느낀 날이었습니다 . 혼자서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을
여럿이 모여서 함께 해나가면서 힘이 생겼다고 할까요? 가능한가 아닌가와 상관없이 좋은 기회를 만들고
거기서 새롭게 가능성을 보고, 그것이 실제로 성사되었을 때 예상하지 못한 문이 열리고 ..
이렇게 기분좋은 날 고른 음악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살아있는 책이란 생각을 가끔 합니다.
제 경우는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보다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이긴 하지요. 그렇다보니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2500년에서 2000년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날들이
많다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말하자면 축의 시대라 불리는 시대의 사람들이 제 일상에 늘 끼어들어와서 균열을
내기도 하고 가끔은 섬광처럼 마음을 헤집어놓고는 한동안 헤어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만을 산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그리고 과연
내 생각이란 내 생각이기만 한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만나기도 하고요.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이사무 노구치의 조각을 몇 점 본 날, 마침 그 날 밤에 북 오프에서 일본 미술관을 전부
모아놓은 책 한 권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보람이가 마침 그 다음 주말에 홋카이도 여행을 간다는 말이 기억나서
홋카이도 미술관을 뒤적이다 보니 이사무 노구치가 방치된 쓰레기장을 치우고 만들었다는 조각공원에 관한 기사가
있더라고요. 아마 제 잠재의식속에 이사무 노구치 조각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그냥 스치고
지나고 말았을 기사, 그런데 그 날따라 그 기사가 눈에 들어와서 나중에 그 부분과 홋카이도의 박물관,미술관에
관한 것을 휴대폰으로 찍어서 보람이에게 보냈습니다.
실제로 가서 볼지 말지는 전적으로 보람이의 몫이었지만 혹시 가게 되면 저는 덤으로 사진으로라도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첫 반응은 너무 멀어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것, 그런데 막상 여행을 가서는 그 곳에
들렀고 엄마 여기가 천국인가봐 라는 메세지와 더불어 아주 행복해 보이는 표정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과
조각을 찍은 몇 장의 사진을 보내왔더라고요. 요코하마 미술관의 노구치 조각, 미술관 책 발견, 그것을 찍어서
보내고 덕분에 저도 공원을 사진으로라도 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함께 보고 싶어서 전송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휴대폰이 열어준 세상에 대한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가 되었지요.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리면 오늘 우리들이 받게 된 책이 매개가 되어서 무엇이 피어날지는 아직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음 화요일에 만나는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새로운 기운이 솟게 될지도 모르고요.
see the unseen 광고는 인문학이다란 책을 어제 오늘 읽었는데 거기서 만난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단테의 천국을 읽으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더랬는데 홋카이도를 둘러싼 이야기를 하다보니 다시 이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네요.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세상 너머 이데아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지만 우리가
마음을 열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 그것을 보는 일에는 인간을 향한 애정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것, 여러가지로
의미있는 하루를 보낸 날, 음악속으로 스며들어오는 말이 되어 제 안에 울려퍼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