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시간여유가 없을까 요즘 고민인 문제입니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거의 매일 스터디가 있고
점심을 함께 먹고 어느 날은 한의원에 어느 날은 오후 수업이 일찍 시작해서 잠깐 집에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고
어느 날은 멀리 나가서 낮잠 잘 여유가 없고 이렇게 한 주일을 살다보니 낮 시간에 빈둥거릴 여유가 없어서 그림을 보거나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쓸 시간이 모자라더라고요. 더구나 금요일 밤 고전읽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읽고 싶은 책은 늘었지만 시간은 그대로이니 늘 뭔가 시원하다고 느껴질만큼의 책읽기가 가능하지 않아서 오는
부족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요.
언젠가 도서관에서 빌린 지식인 마을 시리즈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를 다룬 책,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그 때는 책이 지루하다고 느껴서 읽다가 말고 반납을 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그 책을 구할 기회가 있어서 어제 밤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 수업에서 마침 아퀴나스를 읽는 때라서요. 그런데 어제 밤에는 짧은 시간에 그 책의
내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결국 오늘 아침까지 책을 다 읽었지요.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역시 절실한 필요와
그 책을 읽기 위한 책근육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오전 수업에서 필요한 자료도 카피하고 즐거운 수업이 되었지만 점심을 먹으러 가서 갑자기 잠이 쏟아지네요.
힌약을 챙겨 먹고 한의원에 가려고 했지만 일단 집에 들어오니 나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시원한 바람 부는
마루에 누워서 좋아하는 곡 틀어놓고 듣다가 선잠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한의원은 내일로 하고 미루고 나니
목요일 낮시간 마음의 여유 시간의 여유가 많이 생겼지요.
하루 일과중에 이렇게 조금은 빈둥거릴 수 있는 시간여유, 마음의 여유가 정말 소중하다고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내일 로마사 두 번째 읽는 시간이라 보조 자료를 읽고 있지요. 마침 아우구스투스의 정치력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그가 군대의 법과 가족법을 엄격하게 정했지만 그가 죽은 이후 군대의 법은 그가 생각한 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그가 살아생전에 정한 가족법은 가장 가까운 그의 딸이 일으킨 문제로 결국 율리아가 멀리 추방되는 것, 나중에는
영양 실조로 죽어가는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강한 플랜을 갖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네요.
추상적이고 불변하며 누구가 믿어야 하는 그런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 제겐 가끔 그렇게 강한 확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부시게 보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섭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요. 역사책을 읽다보면 내가 무엇에 공명하고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에 불편을 느끼는가 감정의
반응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더라고요.
나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고정된 실체는 아닌 셈이지요. 상황이 변하고, 나이가 변하고, 몸상태가 변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성향이 변하면서 나라는 존재가 달라지면 내가 관심갖는 현상도 달라지고, 찾아서 읽는 저자도
달라지는 것을 느끼곤 놀라기도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이렇다 저렇다 자신의 주관이 너무 뚜렷한 저자를 읽는
일에는 피로를 느끼게 되는 현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