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 <장금이>와 <민정호>
개인적으로 T.V <드라마>와 <영화>, 스포츠 경기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그쪽 동네의
사연이나 사정들을 잘 모릅니다. 서울 장안이 한 편의 드라마와 영화로 시끌벅적
거리면, 그때서야 “아, 그런 게 있었나.......” 하면서 어쩌다가 뒤늦게 찾아보는 편입니다.
《겨울연가》, 《대장금》이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에서 대박을 터트렸을 때 이 작품
들을 재방송해 주어서 관심을 갖고 《겨울연가》전편을 볼 수 있었고, 다시금 《대장금》
을 보기 시작했었지요.
사실 제목이 약간 모순이 있는 것은, 저는 《대장금》 전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방송 중 1회~9회까지만 보았는데 7회인가 8회에서 귀가 “번쩍”하는, 명대사가
나온 적이 있었죠. 기억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이 대사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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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략 이런 내용 ―
민정호(지진희)가 장금이(이영애)에게 하는 말,
“당나라 때, 귓병을 앓고 있던 악공(樂工: 악기 연주자)이 한 사람 있었지요.
그 악공은 귓병을 고치기 위해 <명의>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는데,
오랜 세월을 걸쳐서 의서 (醫書, 한의학 서적) 를 읽고
견문을 쌓으면서 연구하고 치료하는 동안, 어느덧 당나라 제일의 <의원>
이 되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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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내용은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악공에게 치명적인 ‘귓병’이 있었지만, 절망적 상황
에서도 그 지병을 치료하기위해 유명한 의원들을 찾아 중국 천하를 수소문搜所聞하며
‘끊임없이 묻고 공부하고 익히며 치료에 전념해서, 실증적 의술을 터득하다 보니’
스스로 당시 중국에서 최고의 귓병 전문 의원이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의서를 읽고 견문을 쌓으면서 연구하고 치료하는 동안을’ 유교에서 말하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고 터득해가는 과정과 방법으로,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드라마틱dramatic한 사연이 실화實話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한 인간의 포기하지
않는 선한 집념이 당나라 최고의 귓병 치료 의원으로 거듭나게 되는 감동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렵니다. ‘일념통천一念通天’ 즉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력하면 하늘도 감동시켜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으니까요.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중 이 장면에서던가요?......<마리아>가 해군 대령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한 쪽 창문이 닫히면 하느님은 다른 한 쪽 창문을 열어 주신다.”
《대장금》의 그 장면과 이야기를 생각하면 오래전에 보았던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기억해 두었던 한 구절이 생각나는데요, 가정교사 <마리아>가 해군 대령에게 속삭이듯
사랑이 묻어나는 깊은 밤의 목소리로 했던 이 말입니다.
“한 쪽 창문이 닫히면 하느님은 다른 한 쪽 창문을 열어 주신다.”
나중에 이 말은, 인도 《힌두hindu 철학》의 학자들이 했던 말로 우연히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청각을 잃어가던 <악공>에서 <의원>이 되어가는 사례와 꼭 들어맞는
말이지요.
희망이 불투명해서 자기 극복을 하지 못하고 절망으로 이어질 때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의 마이너스 요인을, 플러스화化하여 자생력을 길러야함은 『존재의 생리』입니다.
한편으론 누구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일을 찾고 도전하지만, 결과는 천차만별로 다르게
드러나는 걸 보게 되는 경험들을 각 개인들은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자기의지>의 실현, 즉 성공이 항상 바람직한 것만은 아닌 까닭은, 성공했기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고, 실패로 인해서 성공하는 역설이 인간의 삶에 면면히
흐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깊은 의미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랜 숙원을 성취시켰지만, 얼마 안 가서 무너지고
실패해가는 과정을 늘 보게 되니까요. 《바이블》의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 이라는 심오한 말은 바로 이런 경우를 포함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
이 선한 의지가 담긴, 끊임없는 물음(?....)이 인간의 사고능력을 진화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으로 이끌어줍니다. 일이나 공부에 진전이 없다고 혹은, 잦은 문젯거리들로 인해
착오가 생기고 더디게 진행된다고 낙망하지 않아야 하는 ‘의연함’과 거시적인 ‘안목’이
그래서 요구되기도 하지요.
원래 올바른 일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고,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느린 것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반복적인 연습이나 시행착오는 <되어감>과 <완숙>을 끌어오기 위한 예비 단계로 보고
감당해야 하는 시간과 그 과정이라고 보시면 되겠지요. 인간은 실수와 잘못의 경험을
통해 교육되고, 지혜의 깨침을 얻습니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 <세잔느>는 『정물화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100번의 작업을 해야
했으며, 초상화 한 작품을 그리기 위해 150번의 포즈pose를 요구했다.』고 메를로
뽕띠는 말하고 있습니다.
또 통일신라 말기의 대문장가 최치원은 《중용》20장의 『남이 한 번 해서 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 해서 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나는 천 번을
한다.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를 인용한 듯한 다음 문장을 가슴속에 품고서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납니다.
먹장구름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며 걸어가야 하는
것이 <사람살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꿈을 키우며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건 <자기 자신>, 즉 자아실현의 ‘단독자’(單獨者, 대중과 차별되는)가 되어가는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의욕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따라 좌절을 겪게 될 때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이 이 세상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나에게 「주어진 현실」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며, 올곧게 자기의 길을 만들어
가야하는 끊임없는 지향志向과 의욕이 필요합니다. 절망으로 자신을 ‘내면화’시키면
삶에 생기를 잃고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나의 성장을 돕고 절망에서 건져줄 진정한 <후원자>는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지혜로운 어부는 날씨가 좋으면 바다에 나가 그물질을 할 것이고, 기상이 악화되어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면 자신의 삶을 성찰하든가 배를 손질하거나 바다에 관한 지식
들을 얻으려 시간을 선용善用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늘 골치 아픈, 자신에게 주어지는 어떤 《문제:화두話頭》를 안고 고뇌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실상은 이 문젯거리들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세상의 음양陰陽을
통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생을 통해 온갖 쓴맛을 맛보게 될 때 그 맛이 생의 의미와 잠든 혼을 각성하도록 늘
‘흔들어’ 일깨워 주기에 삶의 과정에서 터득하게 된 것들로 인해 어제와 다른 현인賢人
이 되어간다는 말이지요.
삶이 주는 단맛은 쓴맛의 결과일 때가 많고, 지속되는 단맛은 자기오류에 빠지게 하거
나 자신을 과신하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는 걸 우리는 스스로 터득해나갑니다.
한 인간이 내면적 성숙으로 익어가기 위한 긴 어둠의 시간인 ‘밤’의 과정이 누구에게나
있는데요, <혼불>의 최명희 작가도 “어둠이 아니면 우리는 아무도 생명으로 태어
나지 못할 것” 이라고 말하는 그 암흑의 때 말입니다.
어둠(고통, 절망, 혼돈)은 반드시 빛(행복, 환희, 질서)을 품고 있는 제한적인 시간이며,
나의 존재와 생명이 열린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어둠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서 그
밤의 기간에 잘 준비하고 견뎌내야 빛으로 거룩한 전환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언젠가
그 무거운 빗장이 풀리는 ‘반전反轉의 시간’으로 올 것이기에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겠지요.
어둠의 깊이와 양만큼 미래의 ‘광명’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늘
희망을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1950년‧60년대 초 유엔 사무총장이면서 역대 유엔 사무총장 중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는 <다그 함마르셸드>가 우리들에게도 전해주는 말입니다.
“인생이 비참하게 느껴집니까?
능력이 너무 없는 것 같고,
앞날은 먹구름이 끼인 듯
두렵기만 합니까?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는 것을.”
다그 함마르셸드(Dag Hammarskjöld, 1905~1961): 스웨덴 출신의 경제학자, 정치인으로
제2대 유엔 사무총장
1961년 9월 18일, 콩고 내전을 끝낼 평화협상을 중재하기 위해 현지에 가던 중 아프리카
상공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운명(향년 56세), 그해에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었다.
현직 정치가로서는 드물게도 그의 내면세계는 영성(靈性, spirituality)에 관심을 갖고 탐구
했기에 ‘성직자 같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나간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가올 모든 것을 긍정합니다.”
다그 함마르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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