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의 일입니다. 작곡과를 준비하고 있는 승민이와 영어 수업을 하다가 너무 놀라서
아이에게 진심을 담아서 축하를 했습니다. 승민아 정말 영어 많이 늘었네
한 주일에 한 번 겨우 시간을 내서 만나고 있는 중인데요, 사실 처음 만났을 때 과연 어디까지 진보가 가능한가
감을 잡기 어려웠지요. 고3이고 절대 시간은 부족하고, 원하는 학교는 너무 높고 .
그래도 하나 믿어볼 것은 본인의 의지가 강하다는 것, 문제는 의지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영어에 흥미가 별로 없었다던 아이는 아예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통째로 기억하는 방식으로 준비를 해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종이에 번역을 다 해오고 그것을 읽기 바쁘던 아이가 어제는 자신이 배운 내용을 소화해서 교재에서 바로
해석이 가능했고 더구나 상당히 매끄럽게 의미를 소화해내고, 자신이 배운 내용에서의 어휘를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칭찬을 하자 아이가 쑥쓰러워 하면서도 말을 합니다. 작곡 선생님도 없던 음악성이 샘솟는 모양이라고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아마 강조하느라 그렇게 표현하신 모양입니다. ) 칭찬을 해주시고, 피아노 레슨시간에는
혹시 레슨을 두 군데에서 받고 있는가 질문을 받았다고 하네요. 그 정도로 늘었다는 표현을 돌려서 그렇게 해주신
것 같고요.
한편 몹시 기쁘면서도 이 상태가 지속될지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제가 꺼낸 이야기, 인생에서도 공부에서도
일직선으로 계속 오르기만 하는 예가 과연 있을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고 오르지 않고 제 자리 걸음을
한다고 느낄 때 어떻게 하는가가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닐까? 도저히 진보가 없다고 느낄 때면 그 전의
자리를 되돌아보고 어디까지 떠나 왔나를 보는 힘,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으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뒤로 가기 십상이란 것, 그러면서 제가 읽던 영어책을 보여주면서 이 책이 만약 불어나 스페인어
책이라면 아마 페이지마다 새까맣게 단어가 씌여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르는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을 것이고 그것이 싫다면 새로운 언어를 즐겁게 읽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는 문법책도 함께 볼 만한 여력이 생긴 승민이가 늘 시작만 하고 끝내지 못한 문법책이 많다고 하길래
그 중에서 설명이 가장 많은 책을 들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문법이 실제로 문장에서 어떻게
씌이는지 함께 공부해보자고요. 그러자 아이가 이 공부가 다 끝나고 대학에 가면 독일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네요.
언젠가 독일로 공부하러 가고 싶다고요.
물론 대학에 들어가면 독일어 함께 공부하자고 했습니다. 성악하는 형이 오고 있으니 그렇다면 음악하는 아이들과
더불어 독일어 공부하는 즐거움을 누리겠네 싶으니 제가 예술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 호사를 누리나 갑자기
즐거워졌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에 함께 기뻐하고, 기대하고 그 아이들이 커서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 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이야기가 아닐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