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를 읽다가 카이유보트의 그림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침에 캘리님이 올려놓으신 (happyprince 카페에) 하이든 곡을 듣다 보니까 갑자기 그림이 보고 싶어지네요.
-언젠가 소개한 네이버의 카페 행복한왕자는 미야님의 도움으로 만든지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지만
아이들의 활발한 참여로 상당히 모양새를 갖추어가고 있습니다. 초,중학교 학생들이 있는 집에서는 사이버상으로
함께 참여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들어오는 방법은 네이버의 카페 검색에 행복한왕자라고 붙여서 치면
하단에 happyprince-행복한 왕자가 나옵니다. 그곳으로 틀릭하고 들어오셔서 가입한 다음 ,글을 읽고
쓰는 일에 함께 하실 수 있고요, 특히 역사에 관심있는 아이들에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_
인상파 화가들이 주로 가난과 싸우느라 힘든 생활을 했다면 그래도 경제적으로 유복해서 친구들을 돕는
일에 앞장 선 몇몇의 화가가 있어서 나머지 화가들의 숨통을 터 주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카이유보트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콜렉터로 역할을 하다가 그림을 그리게 된 화가여서, 아무래도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다고 하더군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속 파리는 오래전 부터 있었던 파리가 아니라 나폴레옹 3세의 지시로 시작된 오스망
남작주도하의 재개발이 이루어진 이후의 파리, 그래서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파리는 재개발 이후의 파리인
셈입니다. 그 거리를 발코니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이유보트의 시선을 따라가보게 되네요.
당시는 철도가 개발되어 시공간의 개념이 넓어진 시기이기도 해서, 파리에서 철도를 타고 하루만에 오고
갈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 말하자면 여가를 즐기는 범위가 커졌다고 할 수 있고요, 그 때부터 여행상품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가까운 곳에 가서 보트타고 놀이하다 돌아올 수 있어서 인상파 화가의 그림안에
보트가 그렇게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고요.
1870년 보불전쟁이 일어납니다. 큰소리 치던 나폴레옹 3세는 오히려 전쟁에서 포로가 될 지경에 이르러서
파리는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화가들 중에서도 군인이 되어서 전사한 바지유같은 사람도 있고 보물전쟁을
피해서 런던으로 갔던 모네는 거기서 콘스타블과 터너의 그림을 만나서 영향을 받게 되기도 하지요.
파리코뮨의 패배로 충격에 휩싸인 사람들, 그 이후 파리는 전과 똑 같은 곳이 되기가 어려웠겠지요?
이 그림은 제목도 오스망 불르바드이네요. 달라진 거리, 산뜻하긴 했겠지만 그 자리에서 쫒겨난 사람들의
애환, 보이지 않는 곳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가난, 그러니 우리가 개발에 대해서 말하던 모든 문제들이 역시
파리의 개발에도 존재했었다고 볼 수 있답니다.
이 화가의 그림에는 보트 타는 사람들.보트가 정박해 있는 곳이 유난히 많네요. 개인 보트가 있었다는 글을
어디서 읽는 기억도 나고요.
그림을 검색하다 보니 너무 많아서 어라, 내가 알던 카이유보트를 넘어서고 있구나 ,그렇다면 한 번에 다
볼 화가가 아니로군 싶습니다 .일요일 아침의 첫 그림보기는 여기까지가 적당할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