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제목을 볼때는 너무 자극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긴 책입니다.
그런데 어제 오랫만에 만난 친구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정신분석에 관심이 많아서 정신분석학회에
꾸준히 참석해서 공부하는 중이거든요 ) 가 만나자마자 책 한 권을 제게 사주고 싶다는 겁니다.
사실 읽어야 할 책이 많아서 일부러 영풍문고 안이 아니라 밖에서 보자고 했는데 (*안에 들어가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이리 저리 구경하다 보면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할 시간도 모자랄 것 같고
유혹에 딱 걸려 한 보따리 책을 사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 무슨 책이길래 만나자마자 이야기를 꺼내는가
궁금한 마음에 서점 안으로 들어갔지요.

바로 이 책,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였습니다.
본인이 읽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길래 그렇다면 네 책을 빌려주면 되련만 그렇게 말했더니
사서 읽는 것이 좋다고, 그리고 본인도 두고 더 읽어볼 부분이 있다고요.
책을 사들고 바리스타의 솜씨가 좋다는 커피 숍에 들어갔는데요, 작은 숍에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아마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겠지요?
구석 자리를 골라서 앉자마자 궁금한 이야기보따리가 프로이트와 라깡 특강을 받은 일, 그리고 그 강의에서
묘하게 이해되지 않던 부분, 그리고 실제로 정신분석을 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을 했지요. 그랬더니 대답을 하던 그녀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나서 그 때 이야기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을 하네요. 그렇구나, 그러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일상 생활속으로
이야기가 옮겨 갔습니다.
이야기도중에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것도 물론 화제가 되었지요.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이상하게 서슴없이 춤추듯이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춤을 추고 싶다가 아니라 춤추듯이 살고 싶다는 말이
입에서 바로 나온 것은 평생 처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이런 대답이 저절로 나왔을까 생각해보니 요즘
북을 치는 일과 운동을 통해서 몸을 자연스럽게 쓰는 일이 많아져서가 아닐까, 한 가지는 그런 이유이고
다른 한가지는 물론 춤을 추는 일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훈련에 의해서 어느 경지에 이르면 몸이 스스로
움직이는 자유를 느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작동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지금 일하고 있는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상황에서 2개월 정도 쉴 수 있어서 이런 귀한 기회에
네팔에 트래킹 가고 싶다는 그녀에게 15일의 트래킹도 좋지만 혹시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관심이 있는가
물었더니 갑자기 흥미를 보입니다. 이런 저런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직접 서점으로 다시 들어가서
산티아고에 관한 글을 여러 권 찾아보았습니다. 결국 산티아고 길에서 받은 영감으로 직접 올레 길을 개척한
서 명숙씨의 책과 다른 여행기 한 권 고르는 일을 함께 하고, 각자 뒷 시간 약속이 있어서 헤어졌지요.
밤에 집에 도착해서 이 책의 표지를 읽고 있으니 보람이가 흥미를 보입니다. 엄마, 제목을 보니 나도 읽고 싶다.
하루만 기다리라고 말하고 읽어보기 시작했더니 각 파트가 영화를 대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이론적인 배경이 없어도 이 책을 만나는 일에 크게 어려움은 없을 것 같네요,다만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회피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
마침 어제 밤 보람이 중학교 때 친한 친구들이 놀러와서 한참 이야기중이더군요.
82cook에 올라온 기사중에 3주 이상 여자 친구와 여행을 간 남학생 이야기가 있던데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니 그 중의 한 친구가 말을 합니다. 우리들이 컸다는 것을 부모님들은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자 한 녀석이 대학교 2학년이면 20,혹은 21살인데 너무 빠른 것 아닌가 ,24살이면 몰라도 해서 웃었습니다.
24살 이면 되고 20살이면 곤란하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번집니다.
언젠가 보람이랑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 언니, 그 다음에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설마 우리를 부르는 소리는 아니겠지? 했는데 설마가 바로 우리들을 부르는 소리였지요. 어린 시절
함께 공부했던 제자이기도 하고, 보람이에는 친한 후배이기도 한 아이가 남자친구와 여행을 와서 바로 그 자리에서
만난 것인데요 환한 얼굴로 친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저 혼자만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민망했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당황하고 있는 것일까?
그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보람이가 묻더군요. 엄마, 속으로 엄청 당황했지? 겉으로 다 표시 나더라
지난 겨울에는 피렌체의 민박집에서 20일 이상을 여자 친구와 함께 유럽 배낭 여행을 다닌다고 하는 남학생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표정이 밝고 이것 저것 우리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즐겁게 도와주는 그 남학생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우선 든 생각은 과연 상대 여학생은 그리고 그 남학생은 집에다가 둘이서
여행간다고 말하고 떠났을까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외국인이 그렇게 여행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구나 하고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왜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나의 이중성에 대한
것이었지요.
어제 밤 아이들이 물어봅니다. 혹시 승태가 여자 친구랑 그렇게 여행간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하고요. 그렇구나, 그 생각은 못 해 보았는데 우선 여행경비는 스스로 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은 모르겠네
하고 말을 이어서 못하고 말았는데, 아직도 제 안에 금기가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한 날이기도 했지요.
그러니 내가 나를 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갖고 깨어난 토요일 아침, 저절로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를 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