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정독도서관에서 철학 강의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호수님의 차로 함께 가기로 해서 집앞에서 만났을 때 보니 차가 바뀌어 있네요. 그 안에 동영상을
볼 수 잇는 장치가 있어서 라 보엠을 틀어놓고 가는 길 내내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오페라 모임에서 무엇을 보면 좋을까 검토하느라 라 보엠, 그리고 일 퓨리타니를 챙겨서 캘리님에게
들고 가던 길인데 정독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마지막까지 보긴 어려워서 그렇다면 돌아오는 길에 마저
보고 일단 일 퓨리타니만 건네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요.
차 안이 공연 감상실로 변신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벌써 강의 시간이 얼추 다 되어 갑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에서 시작하여 여러 권의 책을 통해 이미 만나고 있었던 강신주 선생이
미지근한 자극이 될지 폭탄이 될지 아직은 모르는 상태에서 인사를 나누고 아직은 잠도 덜 깬 선생은
우선 입이 풀릴 때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툭툭 던지더군요.
(새벽 다섯 시 반에 잠이 든다는 사람이 열한시 강의에 맞추어서 정신이 깨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
저도 한 올빼미 하기 때문에 그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더군요 )
타자, 이렇게 하면 뭔가 철학적인 개념처럼 보여서 어렵지만 사실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낯설게 느끼게 되고 서로 소통이 어렵게 되는 경우
그것이 바로 타자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을 유심히 보면
철학이 삶속에서 살아가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카드를 쓸 때 일시불과
할부에 대한 비유로 시작해서 가정이 화목하다는 것의 진짜 의미, 우리가 사귀고 싶어하는 친구란 과연
어떤 친구인가, 학창 시절의 친구와 만났을 때 과연 우리들은 소통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툭툭 던지는 이야기도 좋았지만 그가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 한 이야기와 철학사를 다 아울러서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어떤 한 철학자와의 만남이 중요하다,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내 삶에 대한 고민에서 우러난 문제가 아닐 때 읽기 어려운 법이라고, 카프카의 예를 들면서 하는
이야기는 머리에 확 와 박히더군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 말은 쉽지만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파장이 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거의 두 시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가 가지를 뻗어서 정작 두 번의 강의에서 다루고자 하는 텍스트는
손도 대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 이야기안에서 두 번의 주제는 얼추 이야기가 되었지요.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도 감탄하게 되는 것중의 하나는 강사가 다른 이야기를 주로 하는 것같지만
한참 듣다보면 한 철학자가 살았던 시대,그가 어떤 상황에서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다루었나 하는 이미지가
그려진다는 겁니다.그래서일까요? 그 다음에 그 부분을 다시 읽으면 같은 텍스트인데 다르게 읽히는
희안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아침에 호수님이 제게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건네주면서 먼저 읽으라고 하네요. 아직 새 책이라서 망서리다가
줄 그으면서 읽어도 되는가 했더니 좋다고 합니다. 덕분에 오늘 저녁 시간 날 때마다 짐멜과 이 상, 보들레르와
벤야민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하 짐멜이 이렇게 연결이 되고 근대성이란 개념을 이렇게 볼
수 있겠구나, 읽기 어려웠던 벤야민을 다시 이런 각도에서 읽어본다면? 하면서 책장에서 잠자던 벤야민
책을 꺼내 놓기도 한 시간, 강의의 매력은 역시 현장에서의 시간만이 아니라 after를 강력하게 촉발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