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지중해 역사를 읽는 모임에서 자전거님이 제게 보여준 말,설렘터라는 글자였습니다.
설렘터요? 무슨 사연인가 했더니 요즘 목동에서 돌려읽고 있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의 저자가 57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는 지금은 75세가 넘은 일본인이라고,그런데 그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목동의 공부모임을 설렘터라고 이름지었다고 하네요.설렘에 터가 어울릴까?
차라리 설레임이 낫지 않은가? 아니면 다른 이름은? 공연히 수업중에 혼자서 머리를 싸매게 되었지만
설렘,그리고 며칠전 일산에서 수유공간너머같은 모임을 만들려고 준비중인 단체에서 울림이란 이름으로
포스터를 들고 온 것이 생각나더군요.설렘,울림,파장,파동,이런 것들이 일괄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생명력과 변화겠지요?

목동모임은 사실 제가 산파역할을 한 관계로 (함께 공부하는 자전거님에게 목동에서 지식을 함께 나누는
모임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하고 강력하게 권했던 일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여러 해가 지나고
그곳에 다양한 모임이 생기고,가지를 뻗어가고 있는 중이거든요) 애정을 갖고 지켜보고 있는 중인데요
금요일 역사모임에 70개국 이상을 혼자서 여행하면서 (그것도 살짝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이번 인도
남부여행의 경우 45일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 여행자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
제 상상의 영역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제비님이 오늘 사진을 씨디로 구워서 슬라이드로
보여주는 날이라고 와서 함께 하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사실은 월요일 마르크스의 경제,철학초고를 발제하는 날이라서 마음의 부담,시간상의 부담이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큰 유혹을 물리치기는 당연히 어려운 일,그래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동행을 한 명 만들어서 차로 같이 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목동이더라고요.
그녀는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을 만나기도 할 겸 고등학생인 둘째 딸에게도 여행의 기회를 줄 겸
그렇게 7월에 떠날 예정인데 지난 겨울의 자동차 여행이 좋았다는 말을 듣고는 처음으로 그런 여행을
시도해보려는 중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였지요.그래서 여행의 베테랑들을 만나서 도움을 받으려고
동행한 것인데 차안에서 여행이야기,그리고 투르에 있는 보자르에 다니는 딸이 그 곳의 공부에 만족하지
못하고 학교를 옮기고 싶어하는데 이 곳에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어린 나이에 유학을 간 딸과는
달리 한국에서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그 곳에 공부하러 온 언니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벌써 졸업후의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느라 정작 대학 입학생의 생기가 모자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이야기가
그칠새 없이 이어졌습니다.

수업의 멤버들이 도착하기 전 미리 가서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상의를 마친 다음 그녀는 바쁜 일이 있다고
떠나고,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도착해서 서로 친밀한 인사를 나눕니다.저도 두 번 정도 역사수업에 참석한
적이 있어서 서로 초면은 아니라서 반갑게 오랫만에 인사를 나누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컴퓨터와 티브이를 자전거님 특유의 방식으로 끈질기게 고민하고 기사님과 연락을 취하면서
손을 보다보니 드디어 화면에 사진이 떴고,인도뿐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여행지 루마니아부터
사진감상과 설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설명,게다가 혼자서 여행준비를 철저히 하는 제비님 덕분에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져서 마치 루마니아에
함께 동행한 기분이 들 정도의 몰입이 가능했고,함께 보는 사람들의 각자가 느끼는 감정이나 알고 있는
내용의 확인,모르는 내용의 질문등이 이어져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지요.


한쪽은 동방정교회가,그리고 다른 한 쪽은 힌두교가 삶의 핵을 이루는 곳을 한 자리에서 보고 있으려니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하는 문제에서부터 여행이란 우리들 각자에게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서로 나눌 이야기가 풍부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료가 너무 많아서 하루에 도저히 볼 수 없는 양이었지요.,그래서 제가 슬그머니 부탁을 했습니다.
혹시 다음에도 기회가 있다면 가능하면 세 번째 금요일로 시간을 잡아주십사 하고요.
그러자 다른 한 분도 이렇게 귀한 자료를 이번만 보는 것은 아깝지 않는가,한 달에 한 번 이렇게 자료를 보면
공부에도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찬성표를 던져 주었습니다.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제겐 오늘 오전중의 몇 시간으로 인해서 그동안 이상하게 마음이 동하지 않던 인도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솟아나게 된 점과 종교가 지닌 강점과 부작용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보고 싶어진 것이
수확이었습니다.

57세 사토씨의 공부 편력기,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인생이 펼쳐진다라는 긴 부제도 달려있는 책을 빌려서 돌아오는 길
내용이 궁금해서 펼쳐든 순간,몸의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결국 집에 도착하기 전에
책을 다 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전거님이 어떤 마음으로 목동의 모이에 설렘터라는 말을 쓰게 되었는지 그 마음이 이해가 되더군요.
금요일,이번 주엔 음악회 약속이 없는 날이었지만 설렘터에 다녀온 뒤 마리포사님이 빌려준 세 장의
음반으로 음악회 못지 않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오늘 하루를 반추하고 있는 시간,목동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멋진 공간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문이 열려있는 곳,누구라도 손 들고 저요,저요
함께 하자고 말할 수 있는 곳,그런 곳이 동네에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