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 시간으로 1월 2일 저녁 비행기라서 하루는 못되지만 그래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혼자라면 생 샤펠에 간 다음,로뎅 미술관에 가고 싶었지만 보람이는 샤펠에 갔다가 식구들에게 줄 선물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다고 하네요.파리의 비싼 물가에서 학생신분으로 살다보니 절약이 몸에 배어서 신기했거든요.그런데 마지막 날 정도는 그래도 엄마가 내는 돈으로 맛있는 식사 한 끼 하고 싶다고 해서 그렇다면 로뎅미술관은 포기하고 일단 나가보자고 집을 나섰습니다.

25일 박물관이 쉴 것이라고 예상하고 멀리 나가서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성당에 가보고 싶었으나
예상치 않게 퐁피두도 ,그리고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도 열린다는 소식에 마음이 바뀌어서 결국 파리 밖으로
나가서 성당을 보는 일은 취소가 되었습니다.그래서 파리안에서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쌩 샤펠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길게 줄이 늘어서 있네요.이른 아침부터,그런데 마침 벤취에 앉아있는 이 둘의 모습에 시선이 가서
살짝 카메라를 눌렀습니다.나중에 보니 모자간인 모양이던데 처음에는 시선이 각자라서 어,모르는 사람들끼리
앉아 있는 것일까 하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너무 큰 공간에 들어가니 어떻게 찍어야 할 지 어리둥절합니다.그 때 생각했지요.그래서 배움이 필요한 법이라고,그러니 돌아가면 어떻게든 카메라로 사진찍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요.
물론 기계치인 제겐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거기서 멈추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길이 막힐 뿐만 아니라
그나마 알고 있던 것도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만다는 것을 경험으로 뼈저리게 느꼈으니까요.


vault,rib vault이런 말이 건축에 관한 글을 읽을 때 자주 나옵니다.실제로 한 아이가 읽는 영어지문에서
vault라는 말이 나오니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궁금해하더군요.그려서 보여주었지만 그림 솜씨가 모자라서
원하는 만큼 전달이 잘 되지 않습니다.그래서 미술사 책을 꺼내서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니 아하,하고
알아듣더군요.언어만으로는 곤란한 것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있어요.실물을 보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라도 언어의 한계를 보완하는 그림,사진이 참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네요.


당시 이 성당안에 들어왔을 사람들을 생각해봅니다.그들이 일상을 사는 공간과 너무나 다른 이 곳에 왔을 때
그들은 마치 이 곳이 설교에서 듣는 그 천국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로마네스크,고딕 성당이란 말을 가끔 들을 겁니다.로마네스크는 무엇이고,고딕은 무엇인가 의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요.반 룬은 예술사 이야기에서 로마네스크식은 무엇인가 외부로부터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들이
만든 형식의 성당이라면 고딕은 이미 기독교가 뿌리내려서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문제될 것이 없고,그들이 도시에서 누리는 삶을 보여주고 싶은 ,자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든 형식의 성당이라고요.
물론 그것이 전부인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히 명쾌한 설명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고딕 성당이 존재하기
위해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고,경제력이 해결이 되어야 할 것이고,그 성당을
짓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의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했겠지요?

로뎅미술관을 포기하고 나니 조금 시간여유가 있습니다.엄마 어디 가고 싶어? 하고 물어보는 보람이에게
그렇다면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보는 음악회 포스터와는 달리 소박하다고 할까,초라하다고 할까 그런데도 시선을 확 끌어당기면서
그러고보니 이 곳에 와 있는 동안 결국 음악회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네 하는 것에 생각이 미치네요.
하루 종일 다니다보면 너무 피곤해서 음악회에 가는 것까지는 생각도 못 하겠더라고요.
노다메 칸타빌레의 유럽편을 보다보니 주인공들이 조깅을 하다가,혹은 길을 걷다가 교회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고 파리에 가면 나도 그런 기회를 만나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결국 포스터와
인사하는 것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길거리에 늘어선 노점,정말 규모가 작은 이런 식의 상점에서 팔고 있는 물건들중에서 역시 책이나 그림
엽서에 관심이 가서 찍어보았습니다.

지나다보니 이 곳이 바로 첫 날 밤 비오는 시간,캐롤님과 만나려고 서로 연락했던 바로 그 자리이네요.
낮과 밤의 얼굴은 얼마나 다른지요!!


영어책을 파는 이 서점은 워낙 유명해서 파리를 소개하는 책자엔 단골로 나오는 곳이기도 하고,가끔은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서점이기도 합니다.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이미 많은 책을 사서,여러 권을 놓고 심사숙고하면서 고르고 골랐습니다.


서점안의 비좁은 공간에 피아노가 놓여 있네요.그런데 외우고 있는 곡이 하나도 없어서 치고 싶은 유혹은
느끼지만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습니다.


밤에 열리는 글쓰기 워크샵을 소개하는 글이 붙어 있더군요.글쓰기라,저도 제대로 된 글쓰기 훈련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지만 거기까지는 도저히 시간을 못내고 있는 중이라,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하는 마음때문에?

크다고는 도저히 말 할 수 없는 공간에 참 다양한 것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더 정감이 가고 ,다음번에도
오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물론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얻는 에너지,지지,그리고 고통이 공존하지만
사실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얻는 에너지도 대단하지 않을까요?
이 곳에 있는 동안 이름만으로도 다정한 기분이 들거나 더 만나보고 싶은 이름들을 찬찬히 구경하는 동안
그런 생각이 더 들었거든요.나를 구성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고민하다가 고른 책이 폴 존슨의 르네상스,아무래도 2010년 겨울 여행지를 정해놓은 상태라서
그렇다면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관한 책이 좋겠다 싶어서요.실제로 돌아와서 읽어보니 도움이 많이 되어서
흐뭇해했지요.덕분에 르네상스에 관한 다른 책들도 다시 찾아서 읽고 있는데 이렇게 하나의 선택이 다른
선택을 촉발하고 그 와중에서 새롭게 눈뜨게 되는 것들이 생기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른 시간에 들어갈 때는 밖에 장이 서지 않았는데 나오니 중고책을 파는 노점이 형성되어 있네요.
한 번 쭉 제목을 보았지만 마땅한 책이 없어서 눈인사만 하고 돌아나오는 길,역시 책방에 가면 갑자기 없던
기운도 생기는 제 자신이 참 신기한 생물이로구나 웃음이 절로 나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