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공간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오래 된 사진들을 정리했습니다.
시간이 꽤 걸리지만 그래도 덕분에 새롭게 지나간 사진들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네요.
문제는 오전에 읽어야 할 도덕의 계보학이 자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인데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금 미루고 오전 중 널널하게 사진과 더불어 놀았습니다.

그 사이에 맛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된장찌개도 끓여보고,그러고 보니 요즘 토요일 오전이 제겐
새로운 도전의 날이 되고 있는 셈이네요.
변화하는 일상이 주는 상큼함이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아침입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요.
신문을 펴면 어디서 어디까지 문제인가를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로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신경쓰고 살면 하루도 제대로 살기 어렵다고 느껴질 만큼 혼란스러워서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되네요.그것은 그것,이것은 이것 이렇게 똑 부러지게 나눌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힘들어서요.

어제 밤 지하철에서의 일입니다.캘리님이 내리고 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던 중
누군가 제게 불쑥 음식을 내밀면서 팔아달라고,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병원비가 없다고
허리 고부라진 할머니가 떡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돈을 건네면서 이 떡은 다른 사람에게 파시라고 드리고 나니 마음속이 복잡하더군요.
그녀의 자식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자식들에 분노하는 마음
한편 이렇게까지 되도록 부모를 봉양할 수 없는 처지에 처한 것일까? 그들은 .
알 수 없는 일이지요.그래도 소설을 읽는 일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빈곤의 문제를 신문에서 읽고 있으면 추상적이지만 실제로 제 주변의 사람이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는
훨씬 예민하게 되고,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마음을 쓴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서 참 힘이 들면서 ,한 가족이 갑자기 처하게 되는 고통속에서 국가는 어떤 책임이 있는
것일까,국가에게 있어서 국민은 세금을 내는 존재일 뿐인가,생각이 멀리까지 나가게 되기도 합니다.


사실 봉급생활자들 대부분에게 있어서 그것은 남의 일만이 아니라 언제 자신에게 현실이 될 지 아무도
모르는 칼날인지도 모르지요.그 할머니를 보면서 든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아침에도
역시 그녀를 또 생각하게 되네요.

복지가 시혜가 아니라,자존을 위한 기본이 되어야 하는 이유.아침 신문에서 민들레 국수집이야기를 읽다가
그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의 말이 마음속에 스며들어오더군요.이 곳에서는 줄 선 순서가 아니라
오래 배고픈 순서로 밥을 드린다고요.국수집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수보다는 밥을
원하기 때문에 국수를 드릴 일은 거의 없다고요.그래서 국수를 드릴 수 있는 날까지 이 식당을 운영하고
싶다는 전직 수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오늘 아침 갑자기 찬 물로 세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청량감이란
이런 사고를 지닌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로구나 하면서요.



이런 식으로 글씨로 작업을 한 화가가 있더군요.나는 사람이라는 말을 지긋이 바라보게 되는군요.
누구나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그것이 저절로 오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요?


혼자서 즐거운 일만 하고 사는 삶에 대해서 이대로 좋은가 고민할 시점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제 지하철에서의 경험은 제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데,아마 생명을 낳아서 스스로 키운 여성의
경우라서 더 그렇게 강하게 마음에 와닿은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