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네모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지난 금요일의 모임은 예비모임이었으니
어제가 첫 모임인 셈이거든요.
오락가락하는 몸살기운,그래도 첫 모임인데 빠질 수 있나 싶어서 서둘러 나선 길
선인장실에는 벌써 모여서 안나돌리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함께 간 호수님과 일단 인사부터 나누고 순광,역광,측광등에 대한 이야기를 실전을 통해서 들으니
그렇게 오리무중이던 말들이 드디어 의미를 갖고 이해가 되기 시작한 날,아하 소리가 마음속에서 연발을
합니다.그러니 어떤 것과 만나는 일에는 시기가 무르익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론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사진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제까지 제가 알아왔던 것들과 다른 것이 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조금 다른 눈으로 피사체를
들여다보지 않겠는가,적어도 그렇게 노력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생긴 날이기도 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니 공연히 지난 여행 사진들중에서 정리하지 못한 것들에 손이 가네요.
처음 만난 것이 쌩 뽈 현대미술관의 작품들인데요,기억을 더듬는 시간이 되기도 해서 올려놓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방가르드,현대역사,현대 철학,이런 식으로 현대가 제 안으로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기분이로군요.
그런데 이것이 낯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기저기서 서로를 보충하면서 자극하여 신선한 느낌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몸살로 인해 낮 시간에 들어와서 쉬면서 음악회를 포기해야 하나,고민할 정도였는데
소파에 누워서 음악을 듣고 있으니 소리가 시끄러운 것은 아니구나,잠깐 기다려보자 싶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누워서 잠이 들어버리면 어쩔 수 없고 상태가 좋아지면 집을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다행히도 음악을 듣는 도중 몸이 점차 나아지더군요.일어나 앉아서 일본어 번역 숙제를 대강대강 마치고
교향악축제에 갔는데요,그 곳에서는 창작곡,성민재가 협연하는 더블베이스곡,그리고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 연주가 있었습니다.프로코피예프의 연주덕분으로 아침에는 집에서 그의 첼로 소나타를 듣고 있는 중인데
음악에서의 제 개인적인 레파토리가 점점 늘어나고 있네요.


옆자리에 앉은 캘리님이 케이블 티브이에서 들은 쇤베르크의 무조음악 개념에 대해서 제게 쉽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아니? 이건 무슨 텔레파시인가? 순간 놀랐습니다.
그녀와는 이상하게 같은 시기에 같은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있어서 (미리 짠 것도 아닌데) 늘 깜짝 놀라곤
하는데요,어제 제가 쉔베르크 음반을 하나 구했거든요.과소비로 당분간 자제한다는 혼자만의 약속을 깨고
음반을 구하고 나서 이것은 화요일 철학시간을 위한 예습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다음이었는데
그녀가 쉔베르크의 무조음악에 대해 설명을 하니 슬그머니 음반을 꺼내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의 아래에 써놓은 말,어라 만지지 말라는 말이로군,글씨가 눈에 들어와서 신기해하는 중입니다.
어제 첫 모임에서 만난 그린님과 두리번님께 목요일 불어모임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착안해서
호수님과 제가 강력하게 함께 할 것을 권하는 것에 두 사람이 아마 조금은 놀란 모양이더군요.
다른 일에서는 그렇게 나서지 않는 제가 이상하게 공부모임에 관해서는 약간 저돌적으로 돌변하는
호르몬 변화를 겪는 것일까? 혼자 의아해 할 정도록 적극적으로 돌변하는 편인데 그것은 정말 저 자신도
의아하게 생각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캘리님이 관심을 보이네요.사연인즉 가을쯤 파리여행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언어소통의 어려움에 대해서 영국에서 오래 산 친구분에게 들었다고 하더군요.영어가 자유로운 부부가
파리에 가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니 그녀도 최소한 읽는 것이라도 해결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요.
그래서 목요일 불어모임은 아무래도 점점 변신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프로코피에프를 다 듣고 나니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소나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물론 사연인즉
지난 번 교보에서 구한 러시아 첼로곡 삼인방 음반이라서 그런데요,이상하게 현대 미술관의 그림을 보는 것과
어울리는 아침이 되고 있습니다.


정원에서 만난 니키드 생 팔의 흔적이 눈에 확 들어오던 날이 기억에 떠오르네요.
그녀의작품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처음 만났습니다.(오래전 퐁피두 센터앞에서 처음 만났지만 그때는
누구인지도 몰랐으니까요.그러다가 시립미술관에서 만나고,이번 여행에서는 일부러 퐁피두 센터 앞에서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한참을 서성대다가 저처럼 그 곳을 어슬렁거리던 상하이에서 온 여성과
한참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요)그 때 인상에 남아서 그 이후로는 어딘가에서 만나면 반드시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작가중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여행에서는 파리에서만큼이나 니스와 그 주변에서 마음을 흔드는 작품을 많이 만나서
참으로 인상적인 시간을 보냈구나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군요.



그런데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갑자기 사용공간이 모자란다고 하면서 중단이 되어 버리는군요.
파란의 블로그에 사진을 70회 정도 올린 것으로 블로그 사용공간이 모자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두 세번 시도해도 역시 같은 결과라서 그림을 보다가 그쳐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잠들어 있던 사진들을 어제 아네모 모임 덕분에 살려보게 된 것,그것이 어제 모임의 첫 자극이
아닌가 싶어서 신기하네요.함께 한 사람들과의 시간도 좋았지만 뎍시 이런 after가 있어서 더 즐거운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