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의 그림을 보면서 계속 내려갔습니다.아니,어떻게 된 것이지?
설마 두 사람의 이름을 건 전시회인데 도대체 그들의 그림은 어디 있는 것일꼬? 의아해하면서도
역시 다른 그림들에 마음을 뺏기고 보고 있던 중 베르메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하철을 타느라 지나다니면서 여러 번 선전포스터를 보아서 그런지 분명히 이 그림이 큰 그림이란 인상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처음 보았을때 우선 작은 싸이즈에 놀랐습니다.아니 이렇게 작은 작품이었나?

그래도 원화로는 처음 대하는 그림이라 마음이 설레더군요.

디테일로 두 사람의 표정을 잡아놓은 것이 있어서 올려놓습니다.
제목이 love letter인 이 그림에서 악기연습을 하고 있던 여주인에게 편지를 들고 온 하녀의 표정이
재미있습니다.두 사람의 표정을 보는 것에서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요?

둘러보았지만 베르메르는 정말 딱 한점이네요.이럴수가!
생각해보면 워낙 작품수가 적은 화가라 그럴수밖에 없겠다고 심정적으로는 동의를 하지만 그래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왕에 만난 이 작품이라도 조금 더 보고 싶어서 다른 작품을 보고 다시 와서 들여다보고
그런 식으로 여러 번 발걸음을 하게 되네요.언제 다시 만나게 될 지 기약할 수 없는지라.

마침 그의 그림을 찾으러 들어온 싸이트에서 친절하게도 시기순으로 그의 그림을 다 소개한 곳이 있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있습니다.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온 예수를 그린 그림이로군요.
성경을 읽던 시절,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대접을 하느라 분주한 상황에서 마리아를 높이는 설명을
읽으면서 (말씀을 우선으로 하는) 과연 그런가? 그런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평생 마리아처럼 (말씀을 우선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일상의 일에서 조금 떨어져서 살아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일상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덕분에 삶이 굴러가는 것은 아닌가,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과연 제대로 평가되고 고마움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어서일까요?)살아왔지만
그래서 더욱 더 마르타의 역할을 평가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요?
물론 두 사람 다 두 가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벨런스가 어려운 경우 본성대로 나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본성을 거스르면서 노력하는 것이 더 합당한 것일까요?

처음 들어본 성녀 Praxidis를 소재로 한 그림입니다.그녀가 무엇때문에 성녀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르네상스시대에 그려진 성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라서 신기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초기작인데도 옷을 그리면서 색을 쓴 것,그리고 옷위에 떨어지는 빛이 앞으로 이 화가가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란 느낌이 듭니다.

Diana and her companions란 제목의 그림인데요,여기까지가 그가 소재로 삼은 성경과 신화를 그린
그림이고 그 다음부터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일상을 그린 그림들,특히 실내를 그린 그림이 주를 이루고
아주 드물게 델프트 풍경을 담은 그림이 있지요.

이번에도 역시 미술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미술책을 여러 권 사왔습니다.
아이들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지만 쉬운 설명속에서도 할 말을 다 해놓은 책이라서 제가 읽어도 너무
훌륭한 책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는 셈인데요 어떤 아이가 물어보네요.
선생님,프랑스에 가셨는데 왜 영어책인가요?
당연하지.프랑스어로 된 책을 사 오면 우리가 어떻게 읽니?
앗,그렇구나!
그래도 망서리고 망서리다 사실은 불어로 된 나의 첫 미술사 이야기,이렇게 번역될 만한 책을 한 권 샀습니다.
물론 당장 읽을 수는 없으니까 파리의 보람이 집에 두고 왔습니다.
그 아이의 룸메이트가 마침 한국에서 불문과에 다니다 온 아이라고 해서 그렇다면 두 사람이 사이좋게
번역을 해보고 책에다 과감하게 단어를 적어달라고 부탁했지요.
책이 예뻐서 그대로 보존하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읽는 것이 우선이니 찾는 단어는 다 적어놓으면
제가 어떻게든 읽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행에서 새로운 일중의 하나가 불어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결심자체는 훌륭한데 여름에 보람이가 돌아오면 실제로 시도하고 마무리를 할 수 있길!!
이야기가 딴데로 흘렀지만 그 책들속에서도 요즘은 베르메르가 어린이들이 꼭 알아야 할 화가의 목록에서
거의 빠짐없이 들어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소개한 책인데요 베르메르의 모자란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베르메르의 그림 한 점을 여행에서 알게 된 저자가 미술관에서 그 그림을 우연히 보고 나서는
그림속의 모자를 소재로 당시의 역사를 종횡무진 동서를 횡단하면서 써내려간 역사책이지요.
그러나 역사책에서 역사적 사실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안으로 걸어들어가게 만든 재주가 훌륭해서
여러 사람들이 돌려보고 있는 중인 책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통해서 거꾸로 역사속으로 들어가보는 그런 심도있는 책들이 네덜란드의 황금기 그림들을 통해서
더 쓰여지고 더 번역되고 그런 기회가 오면 좋겠네요.


베르메르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되풀이되고 있는 소재중의 하나가 편지를 읽고 있거나 편지를 쓰고 있거나
하녀가 건네준 편지를 받는 장면등입니다.
편지가 소재라는 것은 당시에 멀리 가는 남자들이 많았다는 것,그러니 그 편지가 멀리 간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그 사이에 마음이 다른 사람과 통해서 그 사람에게서 온 것인지 알 순 없지만 소통의 주요수단이 편지였던
시절을 보여주는 셈이고 편지를 매개로 드러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화가에게 흥미있는 소재가
되었던 모양이네요.
사이버상에서도 이런 정도의 빛을 보여주는 이 그림들을 언젠가 직접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저절로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에서 눈길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디테일을 본 다음 처음 그림을 다시 한 번 보실래요?
참 느낌이 다릅니다.여기까지 보고 나니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원래 글의 제목을 피나코텍에서 만난 두 화가 베르메르,렘브란트 이렇게 정하고 두 사람의 그림을 보려고
했으나 베르메르의 그림에 붙들려 결국은 그의 그림마저도 다 못 보고 말았습니다.
여행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으면 일상과 혼동이 올까봐 정리를 빨리 하려 했지만 생각을 뒤집어보면
그렇게 붙들려서 서로 혼동이 되는 것이 뭐 나쁜 일인가? 그것은 그것대로 좋지 않은가 싶어서
느긋하게 그 곳에서 만난 화가들의 그림을 반추하고,그것에 보태서 더 보고,그들에 관한 글도 읽고
이렇게 즐겁게 after를 하고 싶다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