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김치님의 남프랑스 소개가 엑상 프로방스에 이른 날,그동안 쌓인 책을 골라내고 책장 정리를 하다가
세잔,졸라를 만나다란 제목의 책을 만났습니다.

평소라면 이미 줄치고 읽은 책이라서 과감하게 처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겠지만 엑상 프로방스에 가게 된다는 단 하나의 인연으로 책을 따로 챙겼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야지 하는 마음에요.

책표지를 올리려고 검색을 하니 세잔과의 대화란 제목의 다른 책도 역시 소개가 되어있네요.
이 책에서도 역시 에밀 졸라,폴 베르나르와의 대화가 많이 인용되는 모양이라서 두 책을 나란히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우선 눈도장만 찍어놓은 상태입니다.
세잔의 그림을 보려고 들어오니 오래전의 기억이 갑자기 떠오릅니다.보람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처음 다녔던 화실의 이름이 세잔느화실이었지요. 세잔느,모네,그런 이름의 화실이 여러 군데 있었는데
세잔이 아니고 세잔느라고 이름붙인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고,미술학원이 아니라 화실이라고
명명한 것도 신선해서 별다른 탐색도 없이 그 화실을 선택했었거든요.

마침 화가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정리해놓은 싸이트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열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은 주로 그의 이름이 미술계에서,그 다음에는 대중에게 알려지고 난
이후의 그림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사실 초기작에 대해서는 잘 알기 어렵지요.
그러다보니 초기작부터 제대로 소개한 글을 읽거나 싸이트에서 그림을 보면 아하,이렇게 전 생애에 걸쳐서
그의 혹은 그녀의 변화를 따라가면서 보는 것이 주는 개안이란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모자상에서 시작하여 나중에는 은행가가 된 세잔의 아버지,사실 아버지의 유산덕분에 그래도 그는
고흐는 물론이고 모네,피사로,르노와르등이 겪은 경제적인 궁핍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그림속의 신문을 읽는 그의 아버지모습에서 보듯이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이해시키는 일은
상당히 어려웠다고 하더군요.이 작품은 세잔의 화집에도 가끔 실리는 초기작이라 눈에 익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지만 처음 두 작품은 이름이 명시되지 않을 때 세잔이구나 하고 다가가서 보긴 어려운 작품이겠지요?

같은 해에 그린 초상화인데요,변호사인 삼촌 도미니끄를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그런데 같은 초상화이지만
대조적인 면에 눈길이 가네요.우선 아버지를 그린 초상화와는 달리 배경에 아무것도 놓지 않은 상태에서
인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한 것과 인물을 표현한 방식이 달라서 그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고 할까요?

같은 해에 같은 인물을 다시 자세를 달리해서 그린 초상화네요. 세잔에게 더 마음을 열어준 인물일까?
아니면? 공연히 궁금해집니다.그의 전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초기의 세잔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구나 싶기도 하고요.


그의 초기작품중에서 제가 가장 따뜻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는 작품을 다시 만났네요.
한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 이상하게 눈길을 끈 작품이라서 오래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아노치는 소녀의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그와 르노와르 사이의 차이에 주목하게 되네요.
같은 소재라도 어떤 화가가 그렸는가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가,그런 차이가 주는 매력이 미술사를
관통해서 그림을 보는 즐거움중의 하나이겠지요?

이 그림과 위에서 소개한 abduction (유괴) 두 작품을 보면 어두운 힘이 전면에 드러나서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속에 잠재하고 있는 어둠을 돌아보게 하는 매개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두 그림중 첫 그림의 제목은 pastoral (전원)이지만 전혀 전원의 가볍고 즐거운 흥이 느껴지지 않고
아래 그림 모던 올랭피아는 아마 마네의 그림에 대한 오마쥬일까,아니면 풍자일까?
그림의 전경에서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세잔 자신의 투사일까? 그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초기작품을 살펴보고 나니,그에 대해서 조금 더 읽어보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그 다음 우리들에게 조금 더 익숙한 그림으로 넘어가고 싶어지네요.
줌인줌아웃에 등장한 열무김치님의 남프랑스 사진덕분에 공명하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그림을 본 날
진중권이 미학오딧세이에서 가상과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내용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