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새는 몸을 흔들며
억새는 바람이 이는 억새이고 싶었다
온몸에 쌓인 먼지를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소용돌이치는 골짝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흐느러지게 나는 산새들의 날갯짓에 몸을 흔들었다
차라리 안개이고 싶었다
우거진 나무 너른 잎이 지는 숲 속
차라리 고쳐지지 않는 상처라도 갖고 싶었다
어느 버려진 계집아이 자랑스럽게 몸주신神을 받들기 시작하고
할미 무당巫堂의 첫눈에 빛나는 모습으로 어른거리며
말 못할 커단 하늘 위로 치솟는 안개이고 싶었다
달빛 어려 천방산千房山 봉우리라도 밝히려는가
밤이면 홀로여야 할 제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하나의 억새이기 위하여 흐느낌에 눈뜨기 시작할 때
다만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순교라도 할 듯
어떠한 의미도 없이 그림자도 없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억새이고 싶었다
침묵이고 싶었다
억새는 몸을 흔들며 담긴 사연이며 슬픔이며
이미 옛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 오랜 목소리를 출렁이고
대답 없는 하늘을 향하여 헛된 몸짓으로라도
언제나 신神내림을 받는 꽃으로 거룩하고 싶었다
- ----구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