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한 번도 찾아가보지 못한 혜곡 최순우의 집에서 마침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고 해서 그렇다면 이번에는 꼭 가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드디어 금요일,처음으로 그 곳에 가게 되었는데요
처음으로 집앞에서 만난 것은 권진규의 조각전을 알리는 포스터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단정하게 살던 한 선비와 만난 기분이 들더군요.
그가 박물관과 인연을 맺어 한 평생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자취도 남아 있는 공간에서
변종하 화백이 연하장으로 보낸 재미있는 그림들을 만난 것은 정말 의외의 소득이었고요
시인 김광규,그 역시 성북동에서 산 시인이었으니 자주 마주쳤겠지요? 둘이서
혜곡이 죽고 나서 최순우란 제목의 시를 쓴 모양입니다.
그 시를 서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혜곡과 간송의 관계는 어린이들을 위해서 출간된 간송을 소개하는 글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 이 집에도 간송의 흔적이 있더군요.
토요일 오전,몸살을 날려버린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어제 그 시간의 흔적을 기억하느라
이종상의 그림을 찾아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은 목요일 오후 갑자기 식은 땀이 나기 시작하면서 어라,몸살이 오는 신호아닌가,그렇다면
금요일 하루 무리해가며 돌아다닐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간송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기 시작한 순간부터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조금씩 좋아지더니
음악회에서 조금 무거운 모짜르트,(피아노 협주곡 9번의 2악장이 특히)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주가 돋보이는
브람스의 협주곡,그리고 경쾌한 베토벤 triple concerto 특히 3악장을 들으면서 몸이 거의 다 회복이 되었습니다.
마침 음반가게에서 구한 2007,2008년 스위스 verbier festival에서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부분만을 따로
모아서 편집한 동영상과 짤즈부르크에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전람회의 그림
이렇게 동영상을 두 장 구했는데,집에 와서 그래도 그냥 자야지와 한 번만 들어보고 자야지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음악이 몸을 완전히 이겨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한 밤이었지요.
토요일 아침에는 정말 오랫동안 자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지난 밤 늦은 시간이라 소리를 죽이고 들은 그 연주를
볼륨을 크게 해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자리에 그냥 누워 있기가 어렵더군요.
결국 일어나서 다시 듣고 있는 음악들,바흐,모짜르트,바르톡,그리그,쇼스타코비치,그리고 발음도 어려운
witold lutostawski
갑자기 한국화가들의 좋은 전시가 열렸으면,이 가을 그림속에서 우리의 얼굴을 만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네요.
어느 곳을 간다는 것은 가기 전과 가고 나서의 내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몰라요.
인격이 바뀐다는 그런 거창한 의미가 아니라 그 전에 생각해보지 못하던 것들과 갑자기 마주치게 되고
그것이 생각지도 못하던 방향으로 관심을 틀게 되기도 하고 관심을 놓아버리게 하기도 하고
그런 파장을 경험한다는 것이지요.
국립박물관의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간송미술관과 최순우옛집에서의 시간과 맞물려 어라 어라 하는
즐거운 기분에 잠기던 시간이 기억나는군요.
내년 봄 전시에 가게 되면 이 곳에도 다시 발길이 저절로 향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