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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꿈을 찾아서

| 조회수 : 1,738 | 추천수 : 96
작성일 : 2009-11-01 14:44:11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예고를 가고 싶어서 엄마를 한동안 졸라댔다. 학교 미술 선생님도 적극 권해서 한동안 선생님의 화실에서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미술을 전공하는 것을 결사반대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눈물을 머금고 화실을 그만 두고 공부로 마음을 돌려야 했다. 그 당시 엄마의 반대 이유는 돈벌이가 하나도 안되는 미술은 취미로나 해야지 전공은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고 나는 엄마가 너무나 돈만 생각한다고 큰 원망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엄마가 원하는 문과 계통으로 공부를 했고 장학금이 없으면 형편이 안되었기 때문이 학부는 국문학을 했지만 대학원에서는 엄마가 그리도 바라던 영문학을 전공하면서 나는 엄마가 바라는 착한 딸 노릇을 잘 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마음 한켠에는 언제나 그림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었고 그럴 때면 꼭 엄마에 대한 원망도 같이 따라 나왔다.  

결혼하고 취미 생활을 해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따라 새로 화구를 준비하고 이젤 앞에 앉았을 때의 그 감격은 이산가족이 상봉했을 때마냥 감개무량함 그자체였다. 시간이 없어서 직접 나가 풍경을 그리진 못하기에 시작한 것이 명화를 따라 그려보는 것이었다. 이름 모를 어느 화가의 사과 광주리와 마띠스의 명화를 따라 그리면서 내 마음 속에 오랫만의 과거와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같았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마음에 접어두었던 미진함과의 새로운 만남이다.  

한국으로 이사를 갔을 때 엄마가 내 그림을 보시면서 아직도 그림을 그리냐고 물으셔서 나는 오래전부터 묻어온 불만 덩어리를 감추지 못하고 내보였다. 엄마가 그만 두게 해서 전공을 못해서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고, 그때 계속해서 화가가 되었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 거였다고. 아이 넷을 낳고도 철이 안들은 딸에게 느닷없이 수 십년 전의 불만의 화살을 맞은 엄마는 아무 말도 안하시고 내 그림을 쓰다듬기만 하셨다.  

며칠 후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미술에 재질이 있는 둘째가 미술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는 일이 있어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함께 칭찬을 하고 축하를 했다. 엄마가 둘째의 그림을 쓰다듬으시면서 그러셨다.
"제 엄마를 꼭 닮은 게 하나는 나왔구나. 은선아, 네 엄마도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몰라. 엄마는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겠다고 너만큼이나 각종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고 그랬어. 중학교에 가서도 예술고등학교에 가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말 가난했거든. 그래서 다른 이유를 대고 못 보냈어. 우리 은선이는 할머니가 엄마더러 꼭 밀어주라고 할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그려야 돼. 알았지?"
둘째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으시면서 나를 쳐다보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는 존재이다. 말을 해줘도 오해를 하기 일쑤이고, 말을 안해주면 그나마 더 큰 오해로 상처가 되기 마련이다. 엄마의 반대 이유 한마디만 평생을 마음에 담고 한 조각 원망을 품고 살아 온 나를 보면 정말 그런가 보다.  

나도 자식을 기르면서 다른 이유도 아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자르게 될 때처럼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다른 이유는 다 사실이 아니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말도 사실은 어줍잖은 변명이고, 그저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을 하기에는 나의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다 말을 못해줄 때가 더 많았다. 그러나 엄마의 고백을 들은 그 날 이후, 나는 경제적 정직을 하나의 육아의 철칙으로 삼게 되었다. 그것이 당장은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아이들에게도 어쩌면 더 아프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헛된 원망이나 헛된 희망을 불러일으켜 더 큰 상처와 더 큰 실망을 안겨주는 일만큼은 막아준다는 믿음때문이다.

미술에 재질이 남다른 둘째가 나를 닮았으니 이쁘기보다는 나역시 엄마와 꼭같이 미술보다는 다른 것을 전공했으면 하는 마음이 한동안 있었다. 돈벌이라는 이유보다는 예술을 하는 것이 살아가면서 힘든 요소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엄마로서의 노파심과 내가 잘 뒷바라지를 할만큼의 능력이 안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한 세대가 지났지만 엄마의 걱정의 색깔은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 학기부터 둘째를 미술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아이는 순수미술보다는 건축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무엇을 하든 제 꿈을 이루는 것이라면 힘을 다해 도와야겠고 그러다 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본다.

지난 주에 완성했다고 독수리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는 둘째의 얼굴이 그 무엇을 할 때보다 더 행복해보인다. 나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릴 때가 가장 행복한 때이고 가장 아름다울 때라는 것을 둘째는 엄마보다 훨씬 일찍 건강하게 배워가면 좋겠다.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소박한 밥상
    '09.11.1 4:56 PM

    어머 !! 문외한이지만 퍽 잘 그려진 작품같네요 !!!!!!!!
    저도 미대 지망생이었는데
    부모님 꿈나무로 이젠 소위 말하는 전문직이 되어 있지만
    젊을 때 잠시 미술학원에 다녀 보니
    제가 생각했던 천재적인 화가로써의 소질은 없다는 걸 알아 버렸지요 ^ ^
    저희때는 미대 지망생은 예비고사를 치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도 부러웠지요.
    둘째의 그림은 엄마의 소질이 만만치 않았다는 걸 짐작케 합니다만........
    마티스의 그림은 러시아의 에르미따쥬 박물관에서 퍽 매력적으로 보고
    작품앞에서 사진도 한장 찰칵했네요 ^ ^

  • 2. 션와이프
    '09.11.1 11:13 PM

    어쩜..저랑 똑같으시네요.
    어릴 때부터 미술을 하고 싶어했지만, 집안 사정이 넉넉치 않아 전 그냥 제가 스스로 포기했죠.
    엄마는 지금도 안쓰러워 하시지만,...

    저도 나중에 여유가 되면 취미로라도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독수리 그림 정말 force가 장난이 아닌데요.^^

  • 3. kleome
    '09.11.1 11:20 PM

    저는 그림보는 눈은 부족하지만
    독수리의 눈동자가 살아있어요
    반짝 빛이 나면서 ~~~재능이 보입니다

  • 4. 흐르는 물
    '09.11.1 11:31 PM

    항상 님의 글 잘 읽고 있읍니다

  • 5. 크롱^^
    '09.11.1 11:44 PM

    동경미님~~~~. 정말 못하시는것이 없으세요.
    역쉬 그림두 대단하세요. 경험글 읽으면서 돌쟁이 딸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답니다. 감사해용^^

  • 6. 동경미
    '09.11.2 1:38 AM

    소박한 밥상님,
    마띠스의 원작을 보셨군요. 저도 그림을 전공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그림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져요^^
    우리 둘째가 저보다는 더 소질이 있는 것같아요.

    션와이프님,
    그러셨군요. 엄마 마음도 풀어드리시고, 님도 그림 꼭 다시 그려보세요.
    저도 시간이 항상 없지만 그래도 그림 그리고 있으면 마음이 정돈이 되고 좋아요.
    둘째에게 전해줘야겠네요. 다들 칭찬하셨다구요^^

    kleome님,
    감사합니다. 재능이 있다고 해서 잘 살려주려고 하는데 갈 길이 머네요^^
    사춘기를 지나면서 왕짜증을 부리다가도 그림만 붙들면 입이 벌어지는 걸 보면 저렇게 좋구나 하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해요.

    흐르는 글님,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크롱^^님,
    사실은 썩 잘하는 게 없지요. 뭐든 조금씩 할 줄 아는 것보다는 한 가지를 잘 하면 좋을텐데 말예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이쁜 딸이 원하는 꿈을 잘 이루어주세요^^

  • 7. 파랑새
    '09.11.2 9:52 PM

    나의 꿈을 위해 땀을 흘릴 때가 가장 행복한 때이고 가장 아름다울 때라는 말이 와닿네요.
    근데 자식만 부모마음을 다 알지 못하는게 아닌듯해요.
    부모도 자식맘 다 모릅니다. 그러니 서로 소통하고 서로 노력해야 하는 관계같아요.

  • 8. 동경미
    '09.11.2 11:24 PM

    파랑새님,
    맞는 말씀이세요. 부모와 자식이 혈연이긴 하지만 서로 멀고도 가까운 사이에요.
    표현하지 않으면 늘 오해하고 상처받는 사이지요.

  • 9. 안나돌리
    '09.11.3 9:08 AM

    지금 우리 자식들은
    부모가 재능이 있어 보이는 자식들을
    키워 주려고 하지만 우리 어렸을때 그런 것이 있었나요..뭐...
    전 소설책 읽는 것도 야단도 맞았네요^^ㅠㅠ

    저도 그림에 대한 갈망이 있긴 있었는 데...
    걍 사진만으로 만족하려 합니다.
    가끔 이 사진도 뭔가....싶을 때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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