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女性, 그리고 영화 2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 조회수 : 2,933 | 추천수 : 228
작성일 : 2009-10-23 01:53:56
[여고괴담 - 두 번째 이야기]


각본,감독 김태용, 민규용 / 촬영 김윤수 / 음악 조성우 / 출연 박예진, 김민선, 이영진, 백종학 / 러닝타임 1시간 38분


사랑도 아닌 것이...
그러나 우정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강렬한 경험일 것입니다.
죽음을 불사하는 17세 두 여인의 끈끈한 교감, 단지 소녀가 아니라, 단지 학생이 아니라, 그저 17살 먹은 女子 이야기.

남들보다 조금 다른 생각, 좀더 세대를 앞서간 조숙함 때문에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당하게 되는 효신.
육상선수, 선머슴같은 외모, 그 나이 또래 소녀들에겐 어쩌면 동경의, 혹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시은.
판이하게 다른 두 여고생이 교환일기를 쓰게 되고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엽기적일 정도로 집요한 사랑이 시작됩니다.
결국... 온 학교의 왕따였던 효신으로 인해 주위의 잡음이 끊이질 않자 시은은 만인 앞에서 효신을 부인하고 맙니다.
우연히 이들의 교환일기를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 민아는 그 날 죽은 효신의 영혼의 자취를 더듬으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고생들의 꾸밈없는 일상이 녹아 들어있는 이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10대의 하위문화 코드들까지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이 최대강점일 것입니다.
쉬는 시간에 화장을 하는 소위 '날라리'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아...오늘도 밤일 나가십니까..?"하고 천연덕스럽게 물어보는 아이,
"우리 반 최고의 각선미는 누구일까요?"하며 요염한 다리를 들이미는 아이,
결국 자기가 최고 퀸카라며 자기 얼굴을 카메라에 비치고 맙니다.
이 여고생들의 순수한 일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풍부한 디테일이 영화의 시종을 흐르고 있으며 이 또한 이 영화가 강한 호소력을 가지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조숙한 제자를 사랑하는 선생은 스승과 제자라는 인간관계의 굴레에서 안타깝게 경계선 가까이 다가가고 그 선을 넘을 듯 말 듯 때로는 부도덕하게까지 비치기도 합니다.

이 두번째 이야기는 확실히 누구든 공감하듯 전작에 비해 '괴담'보다는 '여고'에 더욱 집착합니다.
미사곡 "키리에"가 음산하지만 슬프고 장엄하게 흐르는 가운데 친구를 사랑한 한 조숙한 여인이 죽음으로 온 학교를 공포에 빠뜨리고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 후 떠납니다.

효과적인 트래킹 숏들과 스텝 프린팅들도 간간이 위력을 발휘하는 화면의 압권이 보기 좋았습니다.


누구든(그게 남자든 여자든 여기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번쯤 그 나이 때는 고민하게 되는 인생의 문제들.
때로는 무겁게 짓누르는 짐이 되기도 하고... 그러나 돌이켜보면 감성을 키워준 거름이 되기도 했을겁니다.
마치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시켜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는 대사.
효신이 죽은 날, 날라리 세 명이 모여 그 일을 얘기하며 불길한 예감을 말합니다.

"...일곱명째야...그러면 그렇게 된단 말이야..."
"...뭐가 되는데???"
"이런...뭐가 되기는 ㅈ되지...(자체검열 -_-;;)"
"아니~ 일곱명이 죽으면 학교가 폐교된대..."

하여간... 그 시절은 온갖 루머와 소문과 근거없는 말들이 난무하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또 진실이 아니라도, 아닌 줄 알아도 그게 진짜면 오히려 실감 난다는 듯 억지로라도 믿게 되는 나이...
게다가 그런 소문은, 그것이 엽기적이거나 끔찍할수록 남학교보다는 오히려 여학교에서 그 세월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있는 교정을 통해 은은하게 전해져 내려온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또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우리 사이가 겨우 그것밖에 안되니?"
그랬습니다.
그 시절, 그 나이엔 친구, 단 하나, 너만 있다면 모든게 다 되는 시절이기에 우리 사이가 겨우 그것밖에 안된다면 얼마나 절망적이었는지...
지금도 우리 아이들은 그때 제가 했던 고민들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첫번째 편이 괴담에 촛점 맞추면서 언젠가는 꼭 공론화되었을 이야기인 여학교의 무시무시한 전설들을 전면에 내세워 자살을 선택하는 우리 사회의 아이들의 문제를 끄집어 냈다면 이 두번째 이야기는 여자들의 관계성, 그속에서 자라나는 성숙의 과정들을 통해 역시 자살을 선택하는 우리 사회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나갑니다.

그 이후에 개봉한 세번째 이야기는 여고도 괴담도 어느하나 특징도 제대로 못잡은 주제에 온갖 잡탕 귀신영화들의 충격적인 장면들만 잔뜩 빌려와 이도저도 아닌 졸작으로 몰락하고 말았지만 역시 자살을 선택하는 우리 사회의 아이들의 문제를 여전히 껴안고 있었습니다.

아까운 시리즈 영화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이후, 생각도 하기싫은 세번째와 폼만 잔뜩 잡다가 용두사미가 된 네번째, 아무런 느낌도 감흥도 전달해주지 못한 최근의 다섯번째까지...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재미없는 영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마치 재능을 너무 일찍 탕진해버린, 혹은 이미지를 너무 식상하게 팔아버린 삼류 연예인을 보는 듯한 안타까움마저 있습니다.

자살은 죽고싶다는 열망과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혼합되어 나타나는 정신 이상 형태라 합니다.
특히나 투신자살은 내가 죽고싶은 생각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훨씬 강할때 선택하게 되는 극단적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아이들이 자살을 선택한건 결코 나약해서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성적만을 평가하는 사회의 냉정함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기형적이고 이기적인 사회성 때문에,
외모만이 나를 빛나게 해준다는 비뚤어진 가치관들 때문에 죄없는 소녀들이 살해당했다고,
결국 이 사회의 모순적 병폐가 그녀들을 죽였다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캐드펠
    '09.10.23 3:06 AM

    요즘 회색인님께서 올려주시는 영화이야기 잘 보고 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 고개 끄덕일때가 가끔 있답니다.
    놓쳤던 부분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을 하게 해 주셔서 아~! 그렇지 할 때가 있어요.
    가끔 회색빛 사진도 올려 주시면 더 감사하다면 제 욕심 이겠지요?^^*

  • 2. 회색인
    '09.10.23 1:10 PM

    캐드펠님,
    좋은 말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사진은 좀 우울...합니다... -_-;;;
    게시판 성격과는 많이 맞지 않은 것 같은데요... 우울하고 싶으시다면...^^;;;;;;;;;;;;;;;;;

  • 3. 겨울내기
    '09.10.25 7:37 PM

    회색인님의 영화 이야기는 한창 한국영화에 애정을 쏟던 90년대가 생각나게 합니다.
    그때 보았던 좋은 영화들이 생각나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탁--------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12227 옆구리 터질 뻔한~~~사진 한 장 9 안나돌리 2009.10.26 2,702 120
12226 회룡포 1 애팔이 2009.10.25 2,238 139
12225 푸틴의 노트 9 꿀아가 2009.10.25 2,972 127
12224 금요일 국립박물관 나들이,함께 하실래요? 5 intotheself 2009.10.25 2,461 175
12223 생각(?)이 많아지는 가을입니다.... 9 소꿉칭구.무주심 2009.10.25 2,044 70
12222 곱게 물든 단풍으로 바탕화면을 ~~~~~~ 2 도도/道導 2009.10.25 2,967 140
12221 단칼에 베어버리소서, 장군~! 10 회색인 2009.10.24 2,420 146
12220 박지윤아나운서.... 1 이랑 2009.10.24 3,078 103
12219 오늘(토)관악산은~ 10 wrtour 2009.10.24 2,828 91
12218 가을이 깊어지니.. 1 여진이 아빠 2009.10.24 2,104 111
12217 결혼전과 결혼후의 차이를 아시나요? 3 안나돌리 2009.10.24 2,836 138
12216 멘델스죤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진 날 4 intotheself 2009.10.24 3,020 254
12215 3800원,3900원의 행복 intotheself 2009.10.24 2,511 235
12214 아름다움/ 반전 2 흙과뿌리 2009.10.24 2,082 115
12213 백악마루에 서서... 4 청미래 2009.10.23 2,608 117
12212 먹고싶은 생선 1 섬마을 2009.10.23 2,257 87
12211 아기고양이 9 햇밤 2009.10.23 2,171 68
12210 10월의 일산 호수공원 산책로 6 지우산 2009.10.23 3,313 108
12209 이름모를 꽃들... 5 Merlot 2009.10.23 2,002 102
12208 한낮의 여유~~ 13 oegzzang 2009.10.23 2,627 60
12207 女性, 그리고 영화 2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3 회색인 2009.10.23 2,933 228
12206 실례하겠습니다. 잠시 자리 좀 뜨겠습니다. 8 카루소 2009.10.23 3,189 172
12205 가을의 서오릉 3 지베르니 2009.10.22 2,999 105
12204 그녀........... 6 된장골 2009.10.22 1,711 119
12203 목요일 오후,모네를 보다 intotheself 2009.10.22 2,107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