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던 올림푸스의 OM-1...

몇 년 후, 취직을 하고 돈을 벌면서 새로 장만한 니콘 F801로 갈아타면서 벽장속에 모셔두고 잊어버렸던 카메라...

그 F801을 팔게되면서, 훨씬 오래전에 물려받았던 라이카 M3는 고장이 나면서 결국 이 녀석을 다시 꺼내들었는데...
주인을 잘못만나 28mm 광각렌즈는 테두리마저 찌그러지며 상처도 입고...

렌즈캡도 잃어버려 모자없는 설움에...
Mikanon 200mm 망원렌즈는 현재 병원에 입원중...

며칠전, 길을 가다 우연히 렌즈캡을 하나 주웠는데 사이즈가 ∮49mm라 씌워봤더니...
50mm 표준 렌즈에 딱 맞는군요... 올레~!
그런데... 삼성이라니...
이거슨 마치... 삼성케푸스?

가끔씩 어린 친구들은 '요즘, 이런걸로 누가 사진을 찍냐'며 키득거리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그들이 선망하는 오늘날의 DSLR이,
우리가 그 나이때 선망하던 SLR이,
지금처럼 작고 가볍게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1973년, 이 OM-1의 등장에서부터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주이코 렌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렌즈교환식 일안레플렉스 카메라의 혁명이었다는 사실을...
워낙 작은 바디에 촘촘한 구조를 갖고 있어 실력있는 전문 카메라점에서도 분해수리를 맡길때면 유독 OM시리즈에는 난색을 표한다는 바로 그 걸작이라는 사실을...

끝으로, 맨 아래는...
언젠가 고감도 필름으로 찍은 거친 느낌의 흑백 사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말을 듣고 한번 찍어본 것이었는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전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교훈을 얻게 됐습니다.
당시 필름은 코닥 ISO 400
기계식 수동카메라는 최소한 닥치고 매일 필름 한 롤은 버려야 한다고 그러지만...
요즘엔 그나마 필름 파는데도 많지 않습니다.
더구나 흑백은 현상비도 인화비도 더 받습니다.
흑백이 무슨 죈가...
앞서 언급한 그 어린 친구들,
상대적으로 사용자 편리성이 극대화된 DSLR을 얼마나 잘 다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사진의 필름 SLR 카메라는 아마 답답해서라도 사용하기에 무척 버거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한 가지,
보상 기간이 길다는 것.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비록 당대에는 세계인의 시선을 받으며 그 영광과 명예를 한몸에 받았던 걸작이었지만 이제는 쓸쓸히 퇴물로 취급받는 오래된 기계식 수동 카메라를 보면 현재 우리네 삶의 속도를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찍고, 바로 결과를 LCD창으로 확인하고 가차없이 지워버리는 오늘날의 사진 문화는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들이 사회로부터 평균적으로 대우받는 인간의 가치와도 같다는 생각입니다.
적어도 그 때, 필름 한 롤 24컷 혹은 36컷을 다 찍고 현상을 해서 라이트 박스에 비춰보기 전까지는, 인화지에 한 장의 사진으로 뽑아보기 전까지는 하늘이 뒤집어져도 그 사진이 얼마나 내 생각대로 나와주었는지, 얼마나 나를 만족시켜 주는 사진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시절에는 기다림의 시간이란 것이 존재했었고 기다리는 동안 정당한 보상이란 무엇인가 은연중에 배울 수도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중독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즉각적인 보상이 컴퓨터 화면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의미있는 연구결과를 굳이 소급하지 않더라도, 요즈음의 우리는 기다리는 데 점점 익숙해지지 않는 삶을, 충분한 시간과 노력에 의한 보상이 점점 가치를 잃고 의미를 잃고 세상에서 홀대받는 그런 삶을 가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크게 와 닿습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누군가의, 현대인을 위한 경고가, 충고가 점점 무게감을 더해가는 가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