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2시,장일범의 생생 클래식에서 바리톤 오현명을 추억하면서 한 시간 동안 특집을 내보내더군요.
덕분에 오랫만에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지난 세월과 만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들은 노래중에는 아주 오랫만에 듣는 노래가 대부분이어서 우리 가곡을 듣는 시간과
얼마나 멀어져 있었는지도 실감을 하게 되더군요.

특집이 다 끝나고 혹시 집에 갖고 있는 가곡 음반이 있나 뒤적여보았지만 이상하게 한 장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씨디가 아닌 LP판을 듣던 시절에는 분명 여러 장의 가곡을 갖고 있었는데 씨디 시대로 오면서 LP판을
다 처분하고 나서는 가곡을 일부러 사서 듣는 일은 없어졌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정호승의 시를 노래한 안치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고른 화가는 유영국입니다.

어제 밤 참 즐거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만나서 함께 영어를 공부했던 여학생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영어에 흥미를 못 느끼고 공부에 대해서도 역시 왜 해야 하는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에니메이션전공이었지요.
그러다가 기회가 되어서 프랑스 유학반에 들어가서 계속 준비를 했고
드디어 뚜르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이 결정되어서 이번 가을에 출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학교에서 영어를 과목으로 배워야 한다고 미리 준비하고 싶다고 해서 어제 오랫만에 만났습니다.
못 보던 세월동안 많이 변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괄목상대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로구나
마음이 흡족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앞으로 그 아이의 행보가 기대되기도 하는 그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권 책을 늘어놓고 우선 읽을만한 것을 고르라고 해서 시작한 책이 제가 프랑스에 갔을때
로뎅 갤러리에서 사온 어린이를 위한 책이었는데요,영어도 영어지만 그 안의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책을 반쯤 읽었습니다.
그 안의 불어에 대해서는 그 아이가 제게 가르쳐주고 (불어의 질문을 받아달라고 미리 이야기했더니
본인이 보던 프랑스어 문법책 한 권을 챙겨왔더군요.) 지명이 나오면 가 본 곳이면 설명을 하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서로 정말로 주고 받는 수업을 하고 나니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볍던지요.

사람이 변한다는 것,그것의 놀라움을 발견한 날,앞으로도 아이들을 통해서 이런 즐거움을 많이 누리면서
살게 되길 기원하는 심정으로 집에 들어왔더니
아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상한 강의를 듣고 있더군요.
이게 무슨 언어인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아랍어 강의라고 합니다.아랍어?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사탐과목중에서 한 과목이 불안하고 해도 어렵게 느껴진다고 하네요.그래서 만약 그 과목을 잘 못 치루고
다른 한 과목에서도 원하는 점수가 못 나오는 경우를 예상하면 제 2외국어를 해야 하는데
일본어과이지만 일,이학년때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일본어로 고득점은 하긴 어렵다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성적 맞기가 쉬운 아랍어를 해보고 싶노라고 합니다.
너무 엉뚱한 말에 아무리 그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랍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하네요.
친구들중에서 시작한 아이들도 있고 강의를 들으면서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일등급을 맞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도 다른 외국어에 비해서 표준점수가 높게 나올 것이라고요.
설명을 듣고 나서 제가 내 건 조건은 딱 하나였습니다.
시험끝나고도 계속 배울 의사가 있다면 수강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지요.

비록 이상한 형태라곤 해도 점수로 인해 이렇게 나름대로 고민하는 아들을 처음 보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놀랄 정도로 모의고사 성적이 잘 나오고 있는 아이에게 제가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이것으로도 정말 고마우니까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그냥 지금처럼만 해도 되지 않을까?
기말고사 끝나고 등록을 하겠다는 그 마음이 그 때까지 유지될지 어떨지 아무리 보아도 그림처럼 보이는
아랍어를 과연 제대로 배우게 될지 어떨지 모릅니다.
그래도 변화가 보이는 아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제겐 신선한 자극이 되네요.

사람은 가도 흔적이 남아서 그 뒤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바람이 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아이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는 일요일의 낮시간
안치환의 노래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