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신문을 들고 마루에 나갔습니다.
어제부터 듣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작품을 틀어놓고 신문을 펼쳤는데 이상하게 눈이
뻑뻑해서 활자를 읽을 기분이 아니었습니다.그래서 일단 신문을 옆으로 밀어두고 마루에 누웠지요.
눈을 감고 음악소리를 듣고 있는데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30분정도를 경험하고 나니 이런 것이 바로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란 느낌이 드네요.
눈을 감고 있었더니 뻑뻑하던 눈도 자연스럽게 풀리고 돌아가던 음반도 다 끝났습니다.
그 다음 무엇을 하다가 바이올린 소리의 고음을 중화해서 들을 수 있는 마르첼로의 첼로곡을 골랐습니다.

지난 금요일 강남교보의 책에서 만난 그림,그리고 어제 대화도서관에서 만난 그림,같은 그림을
두 곳에서 이어서 만나니 저절로 화가에게 흥미가 생겨서 수요일 아침 가장 먼저 찾아보게 된 그림인데요
제목은 가난한 시인이라고 되어 있군요.
지금 내가 있는 환경이 우산을 쓰고 누워 있어야 할 누추한 곳은 아니라해도 시인이 누리고 싶어하는
평온과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이 시간의 평화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오늘부터 수요일 모임에서 새로 시작하는 책이 노리치가 쓴 the middle sea인데요,지중해라는 한 키워드로
오천년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읽어야 할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어제 밤까지 겨우 다 읽었는데
그 중에 지도를 찾아보지 않으면 어디인지 모르는 지명들이 보이더군요.
그 중 하나가 스와비아란 곳이었는데 (결국 못 찾고 만) 오늘 아침 그림속에서 swabian girls at a garden fence
란 제목을 보니 눈이 번쩍 하는군요.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단어였을텐데 하고 혼자 웃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 도서관에서 급한 사람들을 위한 표현이란 의미로 긴 제목을 단 프랑스어 책 한 권을 빌렸습니다.
그 안에서도 눈에 익은 구절 하나를 만났지요.
프랑스어 공부 시작을 축하하는 메세지를 보내준 클레어님의 글에서 제일 먼저 본 구절인데
무슨 소리일꼬 하고 궁금했던 말을 바로 그대로 책안에서 만나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요,
나의 축하를 보낸다는 의미였더군요.
영어와 글자가 같아서 눈치로 용기를 내서 하라고 하는 다른 표현은 짐작으로 알았지만 나머지는
그저 글씨로구나 하고 바라보던 구절을 알게 될때의 느낌이라니,그렇게 조금씩 개안을 해가면서 누릴
즐거움이 모르는 것 투성이의 언어를 배워갈 때의 작은 행복이구나 싶습니다.


이 화가의 그림을 보게 된 책 제목이 재미있는데요,하하 미술관이라는 제목이더군요.
다음의 블로그에서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이란 이름으로 그림을 소개하기도 하는 저자의 책인데
그가 다룬 그림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생소하기도 하고,그래서 도서관안에서 자리잡고 앉아서 본 다음
마지막으로 (나머지는 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우리 나라 화가그림이었고) 서양 그림이 딱 한 장 있었는데
바로 위에서 소개하고 있는 carl spitzweg였습니다.
나머지 화가,혹은 사진작가의 그림도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지만 대출권수가 다 차서 우선은 눈인사만으로
본 것인데 그래도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지요.다만 spitzweg는 금요일에도 만난 화가라 수첩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어서 아침에 저절로 손길이 간 것이니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가 충분한 것이로군요.


이제는 기억력에 의존해서 무엇을 담고 있는 일에 자신이 없어서일까요?
가능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수첩을 꺼내 기록을 합니다.그리곤 잊어버리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것도 물론 많이 있지만 어느 순간 무엇을 기억하고 다시 찾아보고 싶을 때 수첩이 아주 유용하기도 하고
지나간 기록을 다시 읽을 때 아 그 때는 내가 이런 일에 관심을 갖고 있었구나 다시 새록새록 느낌이
되살아날 때도 있지요.
어제는 수첩 이 곳 저 곳에 새로 알게 된 프랑스어를 잔뜩 써놓았습니다.
언젠가 뒤적이다 보면 웃음이 날 정도로 기초적인 단어이지만 그 시절,열정을 갖고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내가 들여다 보일 추억의 페이지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나는 수첩에 무엇을 적으면서 하루를 보내게 될까,궁금해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