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가능하면 그동안 구해놓고 처음에 몇 번 보고는 오랫동안 멀리하던 연주회 실황을
제대로 보자고 마음 먹고 오늘 골라서 본 것이 카랴안이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9번입니다.
4악장까지 다 보고 나니 ,갑자기 마음속에서 그림을 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나는 것이 재미있는 현상이네요.
아무래도 제겐 음악을 듣거나 좋은 책을 읽은 후,사람들과 만나서 수업을 하고 그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서
무엇인가 더 하고 싶은 에너지가 생길 때 저절로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구나
이것은 좋은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금요일 강남 교보에서 본 그림중에 같은 화가의 그림을 조금 더 찾아보고 싶어서 적어온 이름중의
하나를 검색하니 그 이름으로는 자료가 없군요.그래서 화가의 그림 제목을 넣어보았습니다.
문제는 같은 제목인데 다른 화가의 그림만 검색이 되어서 원래 찾으려던 그림이 아닌
고갱의 the flutist를 만났습니다.물론 이 그림은 고갱의 그림중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라
예정에 없이 어라,그렇다면 하고 고갱의 그림을 조금 더 보기로 마음 먹게 되네요.
그러니 사람이 예정하는 일이 늘 예정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 재미있는 부분일까요?
고갱의 그림은 생각보다 모르는 그림들이 많아서 찾아볼 때마다 나는 과연 그 화가를 잘 알고 있는가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어린 시절 섬머셋 모옴의 소설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고갱을 모델로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작품을 읽었을 땐
그가 일상을 버리고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술가의 전형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높이 평가하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그런 평가가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보고 그에 대해서 그렇게
높게 평가했던 것일까,잘 모르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평가의 문제는 고갱 한 사람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겠지요?
예술가의 작품과 예술가의 삶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있는 것중의 하나이지만 요즘에는 우선은 작품에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안녕하십니까,쿠르베씨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는데요,여기서도 안녕하세요 고갱씨란 제목으로 번역할 만한
그림이 있네요.
제가 불어에 관심을 갖고 발음이라도,그리고 최소한의 번역이라고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오로지
미술서적을 읽을 때 자주 등장하는 인용구,그리고 그림의 제목을 마음대로 읽을 수 없다는 불편때문인데요
지금처럼 매일 조금씩 테이프를 듣다보면 언젠가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는군요.
화병속에 담긴 꽃도 꽃이지만 화병을 받치고 있는 것이 악보라는 것이 특이한 작품이라서 골랐습니다.
BRETON이란 지역에 가서 그린 고갱의 그림들,여기서부터 고갱이로군 하는 특색이 드러나는 색감과
형태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나오고 있네요.
예술가의 자화상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창조자라는 의미에서 신의 반열에 올려놓은 느낌의 뒤러
그리고 이 작품도 역시 화가의 머리위에 halo (성서의 인물을 그릴 때 신성함을 보이기 위해 그린 ) 가 그려져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어라,이 그림은 색다르네 마치 기습을 받은 기분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침 두 번째 돌려서 들었던 4악장도 끝나고,이 그림을 발견했으니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군요.
새로 시작하는 월요일,이번 주에는 많은 아이들이 기말고사를 치루는 주라서 집집마다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실갱이가 있을 것 같지요?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닌 것도 그 와중에 있을 때에는 그것이 전부처럼 보여서 마음을 달래기가 어려운 법이지만
그래도 한 번 심호흡하고 조금만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한 주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