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
제작 얀 드봉, 루카스 포스터 / 감독, 각본 커트 위머 / 출연 크리스찬 베일, 테이 딕스, 에밀리 왓슨 / 음악 클라우스 배델트 / 촬영 디온 비브 / 2002년 미국 / 러닝타임 107분
인간은 이성에 의해 움직이는가, 감성에 의해 움직이는가.
이 둘 사이의 균형은 어떻게 잡힐 수 있는가.
지난 2003년에 조용히 개봉한 작은 영화 한 편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이 영화의 홍보카피는 '매트릭스는 잊어라'
그런데 정작 매트릭스와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고 이 카피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 한 편이 매트릭스를 흉내낸 3류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정작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지한 인간성의 대한 고찰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문명사회가 거의 절단났고 살아남은 자들이 새로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누리기 위해 전쟁의 유발 요소를 연구한 결과 그것은 인간의 감정, 분노와 증오에서 비롯되었으며 이 감정을 움직이는 모든 문학과 예술작품을 철저히 말살하고 감정 억제제를 사람들에게 주입하여 무미건조한 인간사회를 만든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맥없이 조종만 당하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기에 영화는 엄청난 반전을 향해 치닫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 제국을 건설했던 로마.
오늘날 서양 사회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로마는 이제 지구촌이 하나로 묶인 전 세계의 모든 법제도와 국가 통치 기반과 철학과 학문과 문화 각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것도 로마의 흔적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원래부터 공화정 체제였던 로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공화정을 사실상 무너뜨리고 크라수스, 폼페이와 함께 트로이카 시대를 열면서 더욱 견고해졌으며 정적 크르수스와 폼페이를 무찌르고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이집트의 프롤레미를 제거한 후 소아시아까지 정복하고나서는 로마사회로부터 '독재자' 칭호를 받으면서 사실상 황제의 권력을 손아귀에 잡으며 황제와도 같은 권세를 누렸습니다.
자국 통화에 초상을 집어넣은 세계 최초의 인간, 왕이 곧 신으로 추앙받은 세계 최초의 인간이기도 한 카이사르는 그의 사후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대에 이르러 'Pax Romana'라는 번영의 시대에 근간을 만들어두기까지 한 위대한 지배자였습니다.
그런 그이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에 그 이면의 약점에 결국 양자 부루투스로부터 암살당하지 않았나요...!?
인간 세상에서 이성과 감성 사이에 정확한 균형을 잡고 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바로 인간이기에...
감정유발물을 불태운다고 인간의 감정이 죽는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요, 그 감정을 느끼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긴 합니다만,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오로지 장점과 강점에만 의지하지 않고 약점 또한 같은 무게로 갖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이 추악한 것은 그 약점을 약점으로 인정하지 않고 강점으로 사용하기 위해 어떤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는 바로 그 '감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는 사회도 이렇게 더듬어봐야 할 것인지 모르겠군요.
인간이 말보다 빨리 달리기 시작한건 불과 200년 상관입니다.
수천년 인간의 역사와 비교해보면 너무 짧습니다.
인간이 소리보다 빨리 날아다니게 된건 불과 100년 상관도 되지 않습니다.
수천년 인간의 역사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현대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법제도와 국가 통치 구조와 학문과 문화의 모든 기초는 저 옛날 2~3,000년 전의 대제국,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고 그것을 그저 끊임없이 빨리 변화시켜왔을뿐입니다.
시대와 역사를 넘어오면서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인간이 변하지 않는건 바로 이기심과 교만함입니다.
이 자각을 애써 잊으며 계속 겸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류 자멸의 길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PS. 어린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태양의 제국"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미소년 크리스천 베일이 이렇게 훌륭한 배우로 성장했구나...고 단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영화기도 합니다.
확실히 최근의 베트맨과 터미네이터에서 보이던 매력과는 다른 차원의, 훨씬 인간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수작이랄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