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아침부터 오후까지 어른들과의 공부모임이 연달아 있는 날이라
조금은 뻑뻑한 느낌으로 일주일의 첫 날을 시작하는 날인데
마침 일본어 수업을 휴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렵게 생긴 그 빈 시간에 아직 못 보고 있던 (다음 달 영화모임의 작품이기도 해서)
슬럼독 밀리오네어를 보러 갔습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려고 했지만 처음 장면은 놓치고 보기 시작한 영화
일부러 영화에 관한 기록을 전혀 보지 않고 간 영화라서
몰입해서 볼 수 있었지요.

인도가 배경이지만 영화를 찍은 감독이나 대본작가,그리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인도인이 아니니
배경만 인도이지 인도영화라고 할 수 없는 이 영화에 대해서
잘 만든 영화,감동이 있는 영화라고 선뜻 말하긴 어려운 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을 나서고 나서도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으니
역시 볼 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18살 청년이 되어 퀴즈쇼에 나온 자말보다 제게 더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어린 자말이었습니다.
어린 자말의 대사가 주는 울림이 오래 남기도 하고요.

살림과 자말,한 형제이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인생행로,그렇게 극적으로 갈릴 수 있나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실제의 인생에서도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소설이나 드라마,혹은 영화라서 더 극적이다 단정지어서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겠지요?
무엇이 사람을 다르게 반응하게 만드는가,그것이 유전인가 환경인가 아직도 논쟁이 진행중인 것이지만
비슷한 환경에서도 서로 다른 반응이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유전이 먼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네요.

알함브라 궁전을 보고 나서 언젠가 타지마할에 가 볼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아직 인도는 제게 조금은 불편하고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별로 생기지 않는 곳
(아마 그곳에서 무엇을 만나게 될까 마음의 준비가 덜 되어서 일지도 모르지요) 이라
알함브라 궁전을 보았으니 하면서 마음에서 한 수 접어두고 있는 공간이었는데
오늘 영화에서 만난 알함브라는 자말의 재치로 새롭게 눈길을 끌게 된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간디의 죽음을 초래했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이 그 이후 지역을 달리해서 갈라졌다고
그래서 인도내에서의 종교갈등이란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영화에서 보니 아직도 회교도에 대한 증오심으로 횃불을 목조건물에 던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종교가 개인의 신앙일 때와 그것이 집단의 힘이 될 때의 간극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었지요.

주인공들이 자란 뭄바이의 빈민가,그 곳에서 주거공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협소한 집들을 보여주는 장면과
지금 이 장면의 강렬한 대조,그것이 인도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너무 심하다,너무 차이가 난다,너무나 다르다,이렇게 너무를 남발하게 만드는 생활환경이란
그 안에 얼마나 폭발하기 쉬운 잠재력이 숨어있는 것일까,그것이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퀴즈쇼에 나온 문제들이 보여주는 것,과연 이런 식의 인생역전을 노린 영화라고만 단순하게 말할 수 있나
그렇다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살림과 자말,그리고 여주인공 라디카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가물가물하네요 이름이)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방식,선택했다기 보다 선택을 강요당한 삶의 방식
어른들이 보여주는 삶의 방식,폭력성이 인간에게 끼치는 무시무시한 힘
이런 이야기들이 서로가 본 관점에서 충분히 이야기될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