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갑자기 이민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낸 동생,그러나 영어와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그녀가
과연 다른 나라에 가서 잘 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과 실제 생활에서의 적응력이 강한 동생이라
오히려 언어장벽을 넘어서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반,혼자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이야기가 별로 진척되지 않는 것같아서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드디어 이민심사에서 합격을 해서
언제라도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지요.그것이 이년전 일인데
한국에서의 여러가지 사정들을 다 정리하고 드디어 오늘 떠났습니다.
여러 차례 이런 저런 만남을 갖고 며칠전에도 일산에 사는 여자형제들끼리만 만나서 밤늦게까지
이야기나누기도 했지요.
그래도 실감이 크게 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언니,나 지금 떠나,몸 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눈물이 솟구치네요.
옛날처럼 이민을 간다고 해서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비행기 타고 가면 만날 수 있는 곳에 가는데도
이전처럼 쉽게 마음이 동하면 연락해서 만나는 거리에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겠지요?
화요일 오전 수업이 없는 날,이런 저런 일을 하려고 계획했으나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림을 보려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무슨 그림이 좋을까,이런 기분에 찾다가 고른 그림은 역시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색채의 마술을 부리는
르노와르입니다.
여자형제가 많은 우리집,어려서부터 개성이 각각이라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오늘 떠나는 동생은 수학과 운동에 특별한 재주를 보이던 아이였습니다.
운동이라면 무슨 운동이든지 뛰어나서 입을 못다물게 하던 아이가 떠나기 몇년전 탁구에 입문하여
아니 이렇게까지 몰두해서 할 수 있나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기도 했지요.
캐나다에 가서도 한인사회에 탁구하는 사람들 모임이 있다고 좋아하던 표정도 생각납니다.
사실 전혀 연고가 없던 지역 일산에 살게 된 것은 그녀때문이었습니다.
주택공사에서 분양하는 땅을 사게 되었노라고,그러니 그 곳에 가서 집을 짓고 살려고 하는데
언니들도 가자고 오랫동안 꼬득이는 바람에 어어 하는 사이에 다 함께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대화동에 지은 그 동생의 집 지하에 공간을 꾸려 어린이도서관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어떤 면에서 그 동생이 제 인생의 행로를 일정정도 바꾸게 한 장본인인 셈이기도 하네요.
그 이전에는 저는 이렇게 혼자서 책을 읽는 reader였지만 지금은 도서관의 책모임에서 시작하여
everymonth의 책모임,다른 인연들과 얽혀서 읽는 책모임,이렇게 모임이 일주일에 여러 차례 지속되는
여럿이서 함께 책읽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의 시발점이 바로 그녀가 일산에 이사해서 지은 집으로 인한 것이니 사람의 인생은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아무도 잘 알기 어렵고 그런 것이 더 사는 일을 신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토론토에 가서 자리를 잡으면 아무래도 이 곳에 사는 조카들도 놀러가기도,연수를 가기도
혹은 공부하러 가기도 하는 거점이 되겠지요?
오래전 그녀가 제게 말을 하더군요.
언니 아이들 다 키우면 캐나다에 와서 살면 어때?
캐나다? 나는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살러 가게 될 것같진 않지만 아이들이 다 크면
자주 가서 네가 사는 것을 보기는 할 것 같다.
새출발하는 그 가족의 삶에 모든 일이 처음부터 수월하긴 어렵겠지만 그 과정을 이기는 힘이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른 그림입니다.사과와 꽃이 조화를 이루는 그런 삶
아들이 셋이나 되는 대식구가 비행기타고 한국에 오기엔 쉽지 않은 일이겠기에 우리들이 이동하여
만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 가능성이 있는 일이겠지요?
즐겁게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날이 오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고르면서 오늘 방금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 고른 그림치고는 너무 성급한 것일까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나오네요.
너무 먼 미래의 일은 접어두고 인터넷 통화가 가능하다는 전화를 알아보러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