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서울시향의 연주를 듣고 가슴 벅찬 기분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김선욱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협연으로 그동안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곡이
새롭게 생기를 얻어 때론 영롱하게 때론 격렬한 폭풍이 되고,때론 지휘자와의 깊은 교감으로
단원들의 소리와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는 과정이 인상적이었고,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던
같은 작곡가의 교향곡5번도 클라리넷으로 시작하는 소리를 전과정을 따라가면서
제대로 들어본 날,마지막 악장이 너무 익숙한 멜로디라 이상하다 고개 갸웃거리며 들었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물어보니 캘리님이 우리나라 가요중에서 이 멜로디를 차용한 곡이 있었다고 하네요.
역시,하면서 웃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속에서 중국어 강의를 듣는 일이 내키지 않을 정도로 음악의 멜로디가 머리속을 맴돌아
라디오를 켜니 매주 금요일 그 시간에 게스트로 나오는 한 오보이스트가 이번에 소개한 음반이
트리오 로코코란 그룹의 비틀즈 곡을 듣고 (비틀즈곡을 그대로 연주한 것이 아니고
비틀즈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로 새로 작곡한 곡들인데 한없이 흘러나오는 곡들에 매료당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그들에 대한 것을 찾아보니 마침 그 시간 그 방송을 들은 한 사람의 놀라움과 찬사의
기록밖에는 아무 자료도 없네요.아쉬운 마음에 비틀즈곡이라도 하면서 듣기 시작했는데
블로그에 올라온 많은 동영상덕분에 초기부터의 자료를 더듬어가면서 새롭게 비틀즈를 만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후의 세계사 수업때문에 미리 자료를 읽던 중 2차대전이후의 변화,그증에서도 대중문화현상을
설명하는 글에 다시 비틀즈가 크게 다루어져서 어라,어라 하는 기분으로 그 기사를 자세히 읽었습니다.
그리곤 어제 밤에도 역시 비틀즈와 존 레논의 곡을 찾아서 들어보게 되었지요.
한없이 나오는 기록들,그 중에서도 그들의 노래도 노래이지만 청중석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일이 더 재미있다고 느껴질 만큼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이 흥미있더군요.

일요일 오전 한 주일의 피로를 풀기위해 전화를 시간맞추는 일없이 몸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려고 했지만
아들이 일찍 일어나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싶다고 8시에 깨워달라고 합니다.
아니,이럴수가 이런 때 고맙다고 해야 하나,괴롭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8시는 너무 빠른 것아니니,(워낙 일요일 아침은 일어나고 싶을 때까지 자던 아들이라)
9시에 일어나는 것이 어때? 그렇게 말을 해도 아니라고 합니다.
덕분에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몸이 깨는 것을 기다리면서 역시 비틀즈를 듣고 있는 중이지요.

강의를 하나 듣더니 주섬주섬 챙긴 아들이 독서실 등록하게 돈을 달라고 합니다.
독서실?
아무래도 주말에 집에서 시간낭비가 있어서 독서실에 가고 싶다고요.
고3이 되어서 많이 달라진 아들을 보면서 기쁘면서도 마음속에서 한 학기만 이런 변화가 빨리 왔어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이런 마음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이전에는 그저 마음을 잡기만 하면 그것이 군대제대후라도 좋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람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정말 놀라운 일이지요? 아니 당연한 것인가요?

가방 챙겨서 나가는 아들을 배웅한 다음 다시 듣기 시작한 노래가 더 즐겁게 들리는 것은
마음이 가벼워진 탓이겠지요?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떠오르네요.마음속에 울음이 가득한 상태로 살았던 시절도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하나,내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대신하는 것이 빠르겠다고 안타깝게 생각한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기억이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을 마냥 기다리던 것이 힘들었는데 이제 스스로의 마음으로 힘을 내고 있으니
가다가 지쳐도 스스로 다시 일어나서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제 겨드랑이에 날개가 솟는 기분으로
일요일 아침을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