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일요일 수업을 하러 가기 전
사야 할 영어교재가 한 권 있어서 서점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신간코너에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이 있어서
집어들었는데 안을 펄럭거리면서 잠깐 보니까
멘체스터 장인길드를 세운 사람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되어 있네요.멘체스터 장인길드? 어디서 들어보았더라
참 익숙한 이름인데 하고 조금 더 찾아보니 피츠버그에서
예술프로그램으로 소개된 바로 그 길드더군요.
길드라는 이름자체가 중세적인 이미지를 풍기면서
예술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생활과
밀착하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것,어라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사실은 소설가 김경욱의 활금사과란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중이고 중반을 넘어서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서 손에서
놓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던 중인데
오늘 낮에 산 이 책으로 인해서 오늘 하루는 하루 종일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책을 읽느라 중세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계에 있는 베르송이란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1960년대의
피츠버그에서 지금까지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간 하루였습니다.

몰락해가는 도시에서 꿈도 없이 살아가던 한 소년이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고등학교 3학년때 어느 날 우연히
지나던 학교의 복도에서 들여다본 미술실,그 곳에서
흙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미술선생님을 만나고
물레에서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매료되어
그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인생의 길을 찾아간 과정
그 과정을 혼자서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1968년 마틴 루터 킹이 살해당하고 흑백사이의 반목으로
살벌하던 도시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고자
교회와 연계해서 19살 나이에 장인길드를 세운
한 남자의 이야기가 마음을 휘저어 놓았습니다.

그는 나중에 멘체스터 비드웰센터라는 이름의 직업훈련센터
도 맡아서 운영하게 되는데 두 단체를 합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함께 공부한 적이 있는 건축가에게
의뢰하여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을 보게 된
계기가 처음에 그에게 도자기의 세계를 보여준 바로 그
미술선생님과 함께 그 건물을 보러 가게 된 것이었는데
저자는 그 때 그 건축물에서 삶의 빛을 보았다고 하더군요)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자선이 아니라 삶의 밝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짓게 됩니다.
그 안에 재즈 뮤지션들을 위한 공연홀을 짓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왜 그런 홀이 필요한가 반대가 심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미술선생님의 작업실에서 흘러나오던 재즈
그 음악이 저자에겐 또 하나의 메타포가 되었고
삶의 어려운 국면에서마다 음악은 그에게 새로운 문의
구실을 했다고 하네요.
그 뮤직홀에서 연주하게 된 디지 길레스피가
악기라곤 평생 한 번도 연주해본 적이 없는 저자에게
당신의 가슴이 시키는대로 하는 이런 일이 바로
당신의 재즈라고 했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음악에서의
스윙에 해당하는 경험을 해나가는 것으로 요약을 하고
있더군요.그래서 그런 음악에서의 인용이 재미있어서
집에 와서 재즈를 찾아서 듣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언젠가 일본여행에서 연말에 상당한
세일을 하고 있는 커다란 음반점에 가서 이런 저런
음반을 사던 중 the best smooth jazz라는 타이틀로
음반 8장을 구한 것이 있었는데 다른 음반들은 여러번
들었으면서도 이상하게 재즈에는 손이 가지 않아서
4장만 듣고 4장은 포장도 뜯지 않고 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 포장을 뜯고 음반을 듣기 시작하니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음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고 있는 중인데요
아마 사전에 음악,그것도 재즈에 대한 비유로 가득한
글을 읽고 난 반사효과일까요?

재즈를 들으면서 고른 화가는 라울 뒤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재즈를 만나리라고 젼혀 예상하지 못한 책에서 어떤 음악책보다 진한 재즈에의 초대장을
받은 기분이 드는 것이랍니다.
그러니 책은 펼쳐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기 전에는 무엇을 만나게 될지 상식적인 수준에서 기대하지만
막상 걸어들어가면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비밀의 문이라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