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음반을 사러 짬을 내서 교보문고에 들렀을 때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2월에 구입한 책을 다 읽고 가져오면 50%의 책값을 환불해준다는 구미가 확 당기는 내용을
그런데 그때는 시간이 없어서 그래? 다음에 와서 더 물어보고
그동안 못사고 망서리던 책을 사야지 마음먹었지요.
화요일,정독도서관의 철학모임이 있는 날,켈리님이
칸트를 맡고 나서 미루어지는 바람에 3번을 읽었노라고
정말 정돈된 발제를 하는 덕분에 즐거운 수업이 되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칸트를 읽으면서 김상봉의 글,그리고 이진경의
글까지 보조자료로 읽고나니 오리무중이던 칸트에 대한
것이 드디어 실마리가 보여서 흐뭇한 기분으로 모임을 마치고
교보문고에 갔지요.
데스크에서 물어보니 불행히도 줄을 그은 책은 반납이
되지 않으나 교보문고에서 파는 외국어서적까지 포함하여
거의 모든 책이 북리펀드의 대상이 된다고 하네요.

우선 외국어서적부에 갔습니다.지난 번 타쉔의 책중에서
the great paintings say란 책을 눈도장을 찍어둔 것이 있어서
물론 이 책은 리펀드대상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급해서요.그런데 역시 불길한 예감이 맞아버렸네요.
이미 다 팔렸다고요,오늘의 교훈은 꼭 읽고 싶은 책은
만난 날,망서리지 말고 구하라 뭐 이런 것인가 혼자서
궁시렁거리면서 다른 책들을 둘러보았지만 이미 보고 싶은
책을 만날 수 없으니 타쉔책에서 마음을 끌어당기는 책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술이 아닌 다른 분야를 돌아다니다 에이미 추의
the days of empire한 권만 구했습니다.

그 다음 코너로 여행기를 쌓아놓은 곳으로 갔는데요
아무래도 여행기는 한 번 읽으면 다시 보게 되지 않아서
정말 읽고 싶은 책이외에는 덜 사게 되지만
이런 기회에는 망서리던 책을 사고 싶어서요.
보람이를 위해서 파리여행기 두 권,저를 위해서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를 ,그리고 요즘 자신이 누구인가
고민하고 있는 기색인 보람이를 위해서 20대가 읽으면
좋을 가볍지만 생각거리가 가득한 심리학 책을 한 권
구했습니다.(이것으로 심리학과 인연을 맺어 평생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데 보조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리펀드대상이 될지 읽는 동안 줄을 죽죽 긋게 될지 모르는
책,그러나 이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 파워 오브 아트를
구했습니다.
BBC방송에서 미술강의 한 것을 글로 푼 책이라고 소개가
되어있어서 교보문고에 가는 길에 늘 집었다 놓았다 하던
책인데요 책값이 만만치 않아서 물경 3만6천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망서리면서 못 구하던 것인데 어제 와서
교황이 사랑한 타락천사 카라바지오에 대한 글을 읽는 순간
왜 이제껏 망서리고 못 샀던가,바보같으니 하고
저자신을 타박할 정도로 제가 읽어본 카라바지오중에서
최고의 글이었습니다.
궁금해서 저자의 이력을 읽어보니 아니,이 저자가
바로 렘브란트의 눈을 쓴 바로 그 사람이네요.
영어로 된 그의 책을 사서 영어를 왜 이렇게 어렵게 쓴거야
씩씩대면서도 내용이 좋아서 힘들게 읽었던 바로 그 저자로군요.
대학에서 역사와 미술사 두 과목을 동시에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되어 있네요.
책의 번역여부와 상관없이 더 구해서 읽어보고 싶은
저자가 한 명 더 늘었습니다.

그 이외에 진중권의 이매진(영화에 관한 담론을 시네
21에 쓴 글들을 모은 책이라고 소개되어있군요)
미국대학에서의 인문학강의에 대한 소개글,그림으로 읽는
현대사상,이렇게 다양한 책을 구해서 돌아오는 길에
책무게로 무거웠으나 마음이 즐거워 일부러 걸어서
경복궁 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버스를 타면 멀미로 글읽기가 어려워서요.
돌아오는 길 김영하의 여행자 하이델베르크를 다 읽고
한숨 자고 나니 몸이 가벼워지네요.
다시 파리여행기 (이것은 여행기라고 하기엔 파리에서
유학으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여성이 자신의 파리에 대한
단상을 쓴 글이라서 조금 무리가 있을까요?) 를 읽다보니
지하철이란 공간이 사라지고 엉뚱하게 다른 공간으로
순간이동한 기분이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밤에 보람이랑 이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과연 사람들이 북리펀드를 얼마나 할까,아마 게을러서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진짜 책을 기증하는 행사를
하겠지만 일종의 마케팅 전략적 측면도 있겠지?
그래도 이런 기회가 되니 미루던 책을 많이 사게 되니
기분이 좋네,나는 몇권이나 리펀드를 하고 그돈으로 다른
책을 구해서 오게 될까?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
했는데요,구한 책을 다 읽는 동안 무지하게 행복한
시간이 될 것같은 강력한 예감이 듭니다.
수요일 아침,루빈슈타인이 직접 연주한 쇼팽의 녹턴이
흘러넘치고,마음에 드는 화가 로버트 냇킨의 색감이
녹턴과 더불어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