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오전 미술사시간에 바로크,로코코에 관한
장을 읽었습니다.
종교개혁에 대항해서 반종교개혁을 단행한 카톨릭측의
바로크와 개신교로 전향한 네덜란드에서의 바로크
그리고 스페인의 바로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빛깔의
바로크 그림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역시 점심을 먹으로 집으로 들어오니 시간중에 본 그림
없어서 아쉬웠던 그림들이 떠올라서 찾아보는 중입니다.

이탈리아의 바로크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카라바지오이지요.
그는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기법으로 후대에
많은 화가들에게 아주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화가인데요
오늘 공부한 이주헌의 서양미술 자신있게 보기 2에서는
카라바지오의 바로 이 그림을 도판으로 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마태의 소명이란 제목의 그림인데
화면을 둘로 분할하여 우리가 보는 쪽에서 왼쪽에는
마태와 일행이 왼쪽에는 예수와 그의 제자가 배열되어
있습니다.
다른 화려한 성화와는 달리 예수의 존재가 후광으로
뚜렷하게 둘러쌓인 것이 아니고 희미하게 보이고 있지요.
그러나 그가 가르키고 있는 손가락의 강렬함과
그 위에 사선으로 뻗은 빛이 예사로운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입니다.
이 소재로 그린 다른 화가들도 있지요.저는 개인적으로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이 그림에서도
하얀 식탁보로 쏟아지는 빛이 인상적이고
그림속의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함께 빨려들어가는
기분,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이 만남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잠자는 큐피드,이 그림속에서 그는 아름답다거나
매력적인 큐피드가 아니라 새로운 느낌의 큐피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잠들어있는 큐피드의 배꼽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빛과
대조적으로 캔버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어둠의
강렬한 콘트라스트가 주는 느낌은 한 번 본 이 그림을
잊기 어렵게 만들고 있네요.

카라바지오가 그려낸 나르시서스입니다.
최근에 나르시시즘에 관한 심리학 책 한 권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안에 나르시서스적인 요소를 갖고
살아간다고 하더군요,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상대방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경우 그 사람이 누구이건 그 사람의
삶을 옭매여서 부당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고요.
심리학책을 액면 그대로 다 받아들이긴 어려워도
그것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서 삶을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끔씩 읽는 심리학서적은 도움이
많이 되고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 그림에서
어쩐지 유디트는 제대로 그려지지 못한 느낌입니다.
아르테미시아란 여성화가의 유디트가 제겐 가장
강렬하고 매력있는 작품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아마 그것은 그녀의 힘이 제대로 표현이 되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카라바지오의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노파의 얼굴이 더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아있지요.
같은 사건이나 텍스트라도 누가 해석을 하는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림이기도 하지요.

카라바지오의 작품중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중의 한 점인데요 사람들의 심리를 아주 잘 포착하여
마치 연극의 한 장면처럼 느끼게 만드는 힘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언젠가 한국에서 카라바지오의
작품만으로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 왔으면 하는 공상을
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