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수업대신 오늘 서울대미술관에 갔었습니다.
아침에 떠나기 전 급하게 위키디피아에 들어가서
화가에 대한 이력을 읽고 조금 더 읽고 싶은 기록은
초록글방에 스크랩해놓은 다음
길을 나섰지요.
당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약속시간에 늦었더군요.
생각보다 길이 밀려서 일행들은 이미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논술시험과 겹친 날이라서 그런지
정류장에서 아직도 택시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과 만나서 미술관으로 갔지요.
설명을 부탁하니 젊은 도슨트가 흔쾌히 따라나서서
미술관을 지은 건축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건물의 특성에 대한 것,지금 전시되고 있는 두 전시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한 다음 본 전시장으로 올라갔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침 나절 간단히 본 기록으로 인해
전시회의 설명에 몰입하기,전시장에 걸려있는 설명이
눈에 확 들어온다는 것이었지요.
전시는 윌리엄 블레이크에 관한 것,그가 빅토리아 시대
라파엘 전파에게 끼친 영향을 볼 수 있는 작품들
그리고 현대에 와서 화가가 어떻게 수용되었나를 보여주는
전시,그렇게 3부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이 전시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이 그림을 직접 보았다는
것에 있었습니다.제겐
생각보다 훨씬 작은 작품이어서 우선 놀랐고
수없이 스크린상에서 본 그림이지만 느낌이 달라서
한참을 서성거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 이 사람은 영문학을 공부하던 시절
우선 시인으로 먼저 만난 사람이었는데요 그 때는
사실 별 관심이 없던 시인이라 그가 그림을 그렸다는 것
자신의 책에 일러스트레이션을 직접 했다는 것도
물론 몰랐었지요.
돌고 돌아서 새롭게 그를 주목하게 되고 그가 쓴 시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니,이 세상에 절대 못해
절대 아니다 이런 것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원안에서 몸을 구부리고 콤파스를 대고 있는 창조주라
우리가 생각하던 창조주와는 개념이 사뭇 다른데
당시 이성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이성 만능의
자연과학이 기세를 올리던 시절에 살았던 블레이크는
그런 사조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창조한 그 나름의 부정적인 의미의 신을보여준다고
하네요.

혹시나 하고 기대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작품이 바로
뉴턴인데요,이 그림은 직접 못 오고 대신 이 그림에서의
뉴턴을 형상화한 조각이 한 점 대신 왔더군요.
이 조각은 축소한 작품이고 실제로는 대형 작품이
대영도서관 앞에 서 있다고 하는데
뉴턴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보이는 블레이크의 뉴턴을
모델로 세운 조각이 그 앞에 세워진 것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불만을 품기도 한다는 일화를 도슨트가
설명을 해주네요.

18세기에 태어난 블레이크,그는 종교적으로는 영국국교회에
반대하는 청교도집안에서 태어난 모양이더군요.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는 않고 어머니에게서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 그 때 고전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요
그리고 물론 성서에 대한 굳은 믿음은 있었지만 기존
교회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고
합니다.
루벤스풍의 그림을 거부했고 라파엘과 미켈란젤로에게
경도된 그는 앞에서 소개한 창조주의 모습에서도
뉴턴의 모습에서도 근육의 표현에서 미켈란젤로를
느끼게 하더군요.
바로 위의 그림은 밀턴의 실락원 표지그림이라고 하는데요
실락원,그리고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단테의 신곡
이런 책의 삽화를 그린 것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작품을 검색하다 보니 오늘 미술관에서 본 바로 그 작품이
나와서 눈길을 확 끌고 있네요.
이번 전시에서도 역시 블레이크 작품이 많이 온 것이
아니라 맛만 본 상태이지만 앞으로 조금씩 더 찾아가면서
볼 때 원화를 본 것이 도움이 되겠지요?
이번 전시에서는 라파엘 전파의 그림들을 생각지 않은
장소에서 본 것이 도움이 되었고
현재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는 신세대 화가들의 면모를
맛본 것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