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와서 피아노의 새로운 악보를
보던 중 어디선가 익숙한 멜로디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였습니다.
새로운 악보란 늘 뒤숭숭한 마음으로 보게 되는지라
여러번 연습한 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익숙하게 들어보고 싶어서
밤에 들어와서 에디뜨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를 찾아서
들어보고 있는 중입니다.
들어가서 보고 있는 블로그의 포스트에 나에겐 노래없는
사랑,사랑없는 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인용구가
있네요.
우리들 각자에게 있어서 무엇이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해당하는 그 무엇을 찾기위한 노력이 결국은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녀의 뜨거운 노래를 듣기 시작하자 원래는 다른 화가의
그림을 보고 싶었지만 마음을 바꾸어서 프란츠 마르크의
그림을 찾았습니다.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군요.
말을 이렇게 그릴 수 있다니 이 화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놀랍다,놀라워
그렇게 감탄하면서 우선 그에 관한 책이 있나 확인을
했더니 소책자 분량의 책 한 권이 번역되어 나왔더군요.
한참을 즐겁게 읽으면서 그의 그림을 찾아보았었지요.
그는 청기사파라고 칸딘스키나 마케등과 함께 활동을
했던 화가인데요,자연속의 동물에 대해서 느끼던 친화력이
인간에 대한 친화력못지 않게 아니 오히려 더 친근하게
느꼈다고 하네요.그래서인지 그림속의 소재도
압도적으로 동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촘스키의 책과 만났습니다.
이상하게 그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읽을 기회가 없었던 저자인데요
제가 선택하고 고른 책이 아니라 카이스트 신입생들의
읽기목록에 들어있는 책인 모양이더군요.
그 책을 오늘 모임에서 권희자씨가 들고와서 제게
읽을 기회를 준 셈인데 본인은 그저 선의로 한 일이
제겐 오늘 새로운 저자와의 진한 만남이 되었습니다.
2000년대에 저자가 쓴 칼럼을 묶어서 번역한 책인데요
일관된 입장으로 제국을 향하여 가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더군요.
대외정책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들이라도 칼럼내용으로만으로도
제대로 사안을 읽을 수 있는 눈을 키우게 된다는 점에서
제겐 참 신기한 글읽기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일본의 NHK기자가 쓴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나를
며칠전 도서관 서가에서 꺼내 읽고 있던 중이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촘스키의 책읽기에 진입장벽이
덜 했는지도 모르지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우왕좌왕 갈피잡기 어려운 시절에 제 나름으로
방향키를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지난 시대에 대한 글읽기와 더불어 요즘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글읽기,그리고 현재를
파악할 수 있는 시대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칼럼이나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서 읽는 일인데요
그것이 주는 혼란이나 고통도 있지만 안개속을 헤매던
기분에서 조금씩 길이 보이는 기분도 맛보고 있는 중이랍니다.
사랑의 찬가를 찾아서 들어간 블로그에 김광석의 노래가
정리가 잘 되어서 올라와 있네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오랫만에 만난 김광석
그래서 오늘 밤은 마치 기습적으로 받은 선물처럼
김광석의 노래와 만나고 있는 중입니다.
다시 마을이다에서 조한혜정 선생님은 근대 이후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을이다란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었습니다.
제겐 도서관에서 만나 공부하는 사람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고 ,공부모임,미술관 모임
그리고 음악회를 통해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들이
또 다른 마을 구성원이 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족한가,조금 더 할 일은 없는가
그런 생각을 해 본 밤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