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이상하게 마음이 동해서 여섯권의 책을 사서
한 주동안 다 읽느라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철학모임에 가니 캘리님이 물어보더군요.
그동안 왜 그렇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는가 하고요.
그런 시기가 있지요,누구에게나 인지는 모르지만
제겐 18세기의 조선으로 ,그리고 건륭제 시절의 청나라
베이징과 열하로의 여행으로 인해서 정신이 한 곳에 팔리니
그 이야기로 자꾸 흘러들어가 마음을 흩어버리는 일이
불가능했더랬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연습도 게을리하고 마지막 치료가 남아있는
정형외과에도 가능한 시간을 조절하면서 한 주일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곤 대부분
그 시대속으로 잠수를 한 기분이네요.
이덕일의 정조와 철인정치시대를 읽고 나서
우선은 분위기를 바꾸려고 1780열하를 먼저 읽었습니다.


1780년은 건륭제가 45년째 황제자리에 있었던 해
그해에 조선에서도 사절단을 보내게 되고
그 일행으로 참가한 연암이 펴낸 열하일기로 인해
우리에게 친숙한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대체 역사소설에서는 연암이 아니라
열하일기에서 연암과 짝을 이루어다니면서
별 호기심이 없는 인물로 그려졌던 정진사가 오히려
주인공으로 등장을 하고,그의 눈을 통해 입을 통해
새롭게 연암을 해석할 수 있기도 하고,당시의 청나라가
과연 북학파들이 말하듯 그렇게 배울 점이 많은
그런 나라였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 책읽기였습니다.
물론 북학파가 말하던 청나라의 우수한 점을 부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태평성대를 구가했다는 건륭제시대의
이면에 대한 것,
그리고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그 시기에
정권을 잡았던 만주족들이 그 이후로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한족의 명나라에 비해 영토를 네 배나 넓혔던 청나라로
인해 지금의 소수민족들중 많은 나라들이 당시의 청나라에
복속이 되었는데 청나라는 없어졌어도 소수민족의 역사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구나,이런 상황으로 인해 티벳이
독립하는 문제가 한 종족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문제의 해결은 어렵다는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지요.
역사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즐거운 읽을거리이자
새로운 도전이 되는 책읽기가 될 것 같네요.
저는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오래전에 읽은 고미숙의
열하일기와 박지원의 글을 다룬 정민교수의 책 두 권을
다시 꺼냈습니다.

소설가 한승원의 흑산도 가는 길,그리고 초의,
추사를 다 읽었습니다.이전에
그런데 그가 이번에 그의 소설인생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심혈을 기울여서 다산을 써냈다고 하더군요.
물론 제가 한국사에 처음 관심을 제대로 갖게 된 것이
오래 전에 읽은 소설 목민심서였고 그 이후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산에 관한 글을 챙겨서 읽었고
제게 개인적으로 관심이 제일 많이 가는 한국사의 시기가
영,정조때이기도 한데 누구의 입을 거쳐서 사람들을 만나는가에
따라 참 다양한 무늬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군요.

다산 정약용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소설에 손대는
것은 조금 꺼리는 편이라는 사람들에겐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한승원의 소설에서는 다산의 초년기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후반기의 인생에 대한 서술,그것도 마지막 순간부터
거꾸로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다시 시간을 돌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섞이고 마지막에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썼더군요.
이런 방식은 김별아의 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의
처음과 비슷하여 처음에는 어라,대가라고 할 수 있는
소설가가 어떻게 비슷한 방식을 구사했을꼬 하고
의아한 마음으로 출발하였지만 꼭 그대로 차용한
방식은 아니더군요.
소설가가 다산을 형상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고 고심을 했는가가 느껴지는 책읽기였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초의선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새록새록 생겨난 점과 불교와 유교가 만나는 지점
유교와 기독교가 만나는 지점,기독교와 불교가 만나는 지점
에 대한 것,소설가가 해석한 주역에 대한 것등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이 이 소설을 읽은 후의 또다른 소득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넉넉한 시간이 생기면 수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
정조를 기억하면서 용주사에도 들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온 날,
밤에 걸어들어오는 길목의 서늘한 바람이
벌써 여름이 가고 있다고 ,남은 여름 무엇을 하고 싶은가
생각하도록 부추기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