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승태는 기숙사에서 그리고 보람이는 아침부터
학교에 가니 즐겁다면서 집을 나섰습니다.
나가는 아이에게 말을 했지요.
즐겁게 학교생활 하라고.그리고 부럽다고요.
왜? 의아해하는 아이에게 엄마도 학교에 가고 싶어서라고
말을 하고 나니 정말 학교에 가고 싶어지네요.
물리적인 장소인 학교가 아니라 아마 제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것이 더 크겠지요?
everymonth에 짱매님이 이성주의 건강편지를 올려주고
있지요.그런데 저는 건강편지보다는 그 뒤에 따라오는
음악이 더 좋아서 오늘은 무슨 음악이 올라오나
기대하는 마음으로 클릭을 해보게 되는데요
오늘은 로씨니의 도둑까치 서곡이란 재미있는 곡을
듣게 되었습니다.
몸이 깨어나는 덕분에 한 번 두 번 더 듣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림을 찾아보는 중인데 오늘 고른 화가는 미국 인상주의화가인
hassam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러시아가
연상이 되는군요.
갑자기 무슨 러시아 타령인가 싶지만
사실은 어제부터 도서관에서 빌린 김성호의 유라시아 기행을
읽고 있는 중이거든요.
책을 집필할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던 (지금은 어떤지
모르고요) 그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따라 모스크바에서
부산까지 열차여행을 한 기록을 따라서 읽어가다보니
연상작용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i am what i eat,i am what i read
이런 말이 생기는 모양인가요?
음악이 바뀌어 칼라스가 노래합니다.로시니의 슬픔이여 가라
동영상이 제공되는 음악이라 생전의 칼라스를 바라보고
있는 중인데요 새삼 기술의 민주화란 말이 생각나는군요.
새로 읽고 있는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저자가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낸 세 가지 중에서 하나로 꼽는 기술의
민주화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고 있나를
매일 실감하면서 살고 있는 중이지요.

인터넷에 접속하면서 세계의 미술관을 내집처럼 들락거릴
수 있다는 것,검색어만 치면 새로운 그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늘 새로운 마음으로 접속하면서 살게 되는군요.


어제 밤 대여점에 가니 보르히아란 영화가 디브이디로
출시가 되었더군요.
보르히아가 보르쟈의 스페인식 발음인 것은
캐롤님의 영화소개로 알고 있었는데 기다리던 영화가
드디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빌려보았지요.
알렉산드르 6세 교황,그가 에스파냐 출신인데 그래서
보르히아로 읽는 모양이고 영화는 스페인어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그냥 그리운 마음이 왈칵 들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다가 만난 교황,그리고 그의 아들
체사레 보르쟈
영화의 마지막에서 체사레 보르쟈가 감옥을 탈출하여
나바르에 있다가 여동생 루크레치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있더군요.
그러나 로마에 돌아오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가문의 이름은 이제 잊혀진 이름이고 오명이 가득한
이름이다란 답신을 보내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보르쟈가
단 한 명의 시종을 거느리고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는
현장에 자작나무가 가득하더군요.
자작나무,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던 저자가
자작나무 가득한 그 공간에 대해 묘사를 여러번 해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닥터 지바고를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한 날인데
보르히아의 마지막에서 그렇게 만나니 이게 무슨 인연인가
싶었습니다.


이제 노래가 바뀌어 파바로티가 로시니의 춤을 부르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그의 목소리를 듣는군요.
파바로티는 갔어도 그의 노래는 남아서 이렇게 마음을
흔드는 소리를 내고 있네요.


하삼의 화사한 색감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로군요.
이렇게 앉아서 즐길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