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를 이렇게 표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지난 금요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개운해질 때까지 누워서 음악을 듣다가
강렬한 피아노 소리에 촉발되어 피아노 연습을 하고
갈까 말까 망서리던 한의원에 간 다음
벌써 더부룩해진 머리 자르고
지하철안에서 조선의 프로페셔널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우리들에게 거의 알려진 적이 없는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살았던 (주로 18세기 인물들이지요)
사람들을 찾고 찾아서 살려낸 저자의 노력도 돋보이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3시 조금 넘어서 도착하니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두 사람이 보이네요.
정각심님,제비꽃님을 만나서
전시장안으로 들어가면서 오늘 무엇을 보게 될까
설레는 마음이었습니다.
처음에 만난 그림이 바로 구스타프 모로의 오르페우스입니다.

제목을 모르면 어라,살로메인가 하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
그런 그림인데요 살로메라고 하기엔 여자의 모습이
너무 정적이지요.
그리고 목이 잘린 사람의 아래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혹시 악기가 아닐까 싶어서 자세히 바라보니
제목과 그림이 매치가 되어서 다시 살펴보게 되네요.

그가 그린 살로메입니다.

오르페우스에서 시작하여 르동의 소품 한 점까지
찬찬히 구경한 시간,오래전의 기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셋이서 따로 또 같이 그림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관람하는 시간이 참 즐거웠습니다.

두번째 걸린 그림은 르노와르가 그린 바지유의 초상화였는데요
바지유가 르노와르를 그렸고 르노와르는 바지유를 그렸다고
하네요.
바지유의 그림으로 전시된 것은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전시장에서는 번호를 적어서 각 인물이 누구인가
알려주는 성의를 보였길래 어라,이 사람은 하면서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한 쪽에서는 피아노를 치고
삼삼 오오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는 중에
한 쪽 구석에서 빨갛게 타오르는 난로가 시선을 끄네요.
19세기에는 문인들이 미술비평에 힘을 보탰고
보들레르,에밀 졸라같은 사람들은 인상파 화가들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그림이 대중에게
인식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이 그림안에도 에밀 졸라가 들어있었던 듯한데
지금으로는 누가 그 사람인지 기억할 수는 몰론 없네요.

그가 그린 또 다른 스튜디오 그림인데요
이번에는 난로의 위치가 완전히 다르고
사람들이 없는 텅 빈 공간으로 그림들만 잔뜩 걸려있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진초록의 의자에 앉아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그림을 구경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사실 스튜디오 그림에서 그림안의 그림을 그리는 일이
상당히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보기도 하게 되네요.
당시 화가들은 서로 친밀하게 지내면서 그림을
서로 주고 받기도 하고 사고 팔기도 했다고 해요.
다른 화가들의 그림을 바라보는 일이 화가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겠지요?

처음보는 바지유의 그림인데요
생생한 느낌이라 시선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위 그림은 그가 그린 르노와르ㅡ,아래 그림은 그가 그린
자화상입니다.


물론 전시장에 이렇게 많은 한 화가의 그림이 왔을리는 없고
처음 스튜디오 그림만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잘 정리된 싸이트에서 그의 그림을 보니
이것 저것 더 골라서 소개하게 되네요.
그림을 다 보고 새로 생긴 이층의 커피숍에서
셋이서 오랫만에 길게 이야기나누면서
everymonth 2주년 기념으로 야외수업하기로 한 것
과연 비가 오지 않을 것인가,그렇기도 하고
너무 멀리 가면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돌아오기 어려운
사정등을 고려해서 다시 생각해볼 것
그리고 반 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한 달 에 한 번 읽는 것은
맥이 끊어지니 사람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한 달에
두 번 모이는 것은 어떤가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었지요.
저녁에 음악회 함께 가기로 한 캘리님과 연락이 되어서
처음 만나는 제비꽃님 캘리님의 수인사가 있은 다음
잠깐 이야기나누고
서로 헤어져 우리는 일층의 전시장에 다시 갔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표가 있으면 입장료가 1000원이라고 하는데
전시는 참 입장료가 너무 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발한 착상을 보여주는 그림들이 많았습니다.
모네를 보러 가서도 일층 전시가 참 좋았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도 역시 22명의 막 떠오르는 신진화가들의
상상력앞에서 무서운 힘을 느꼈지요.
지난 번에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서 흥미를 느꼈던
홍인숙의 작품이 이번에도 다른 작품으로 전시가 되었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가서 작품안에 쓴 글을 읽어보기도 했는데요
마치 신라시대의 이두를 읽는 것처럼
예를 들어 고도리야 이렇게 읽을 수 있는 것을 한자로
고도리야라고 적어두는 식인데요 그것을 소리내서 읽는
순간의 즐거움과 의외성에 저절로 웃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작품입니다.
입장권에 인기작품을 추천하는 코너가 있던데
이 작가야말로 하고 생각을 했지만
나오는 일이 바빠서 표시도 못하고 온 것이 아쉽네요.
맛있는 저녁을 먹고
kbs오케스트라의 공연에서 베토벤과 멘델스죤의 곡을
들었습니다.
특히 베토벤의 심포니 7번은 노다메 칸타빌레의 마지막
피날레 곡으로 연주되는 바람에 한 동안 자주
들었던 곡인데 오케스트라 연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들어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몰아치는 연주가 끝나고 손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고 나오는 길에
마침 아직 끝나지 않은 분수쇼가 있어서 그것도 조금
감상할 기회가 있었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이상하게 맑은 몸과 정신덕분에
들고 나간 책도 다 마무리지어서 읽고 돌아오는 길
정말 오늘 하루는 beyond description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르는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