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경복궁에서의 첫 모임이 생각납니다.
너무 추운 날이었는데
장갑도 없어서 손이 곱는 느낌에다가
도도님의 강의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거의 없어서
아,한국말이 외국어로 들리는 이 기막힌 상황에
웃어야 좋은가 울어야 좋은가
심란하기도 했던 날이었습니다.
로마 여행을 앞두고 카메라를 장만하긴 했으나
역시 한국어로 된 메뉴얼앞에서도 얼어있기는
마찬가지였으니
12월 첫 강의때는 집에 와서 건질만한 사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오늘까지 한 달에 한 번씩 8번 모임에
개근을 했지요.
한 번 시작한 일에는 가능하면 성심껏 하다보면
뭔가 길이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참석했지만
그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거의 매일 카메라를 들고 나선 길
도서관 오고 가는 길에서 자라는 식물의 한 살이에
눈길을 두고 정말 열심히 찍어보던 이번 학기가
생생하네요.

경빈마마의 차를 얻어타고 급하게 휙 지나치느라
서삼릉과 종마장 가는 길 입구의 멋있는 장면은 그냥
눈으로만 보고 약속장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입구에서 서로 인사만 하고
12시까지 각자 촬영을 하고 만나기로 한 상태라
우선 종마장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만나는
꽃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말은 내겐 너무 버거운 피사체가 아닐까
그런 마음이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동안 조금 익숙해진 접사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에서였을까요?


그렇다고 종마장에 와서 꽃만 찍을수는 없지
발길을 안으로 돌리려고 하는데
오늘 새로 오신 두 명의 남자회원이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물풍선님의 사진은 이미 아네모에서 보았고요
오리님은 콩사랑에서 알게 된 이름이더군요.
물풍선님의 사진 장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쭉 뻗은 길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질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고심을 해봅니다.

그 순간 눈앞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아네모 회원들의 모습이 보여서 뒤에서 찰칵
한 장 눌렀습니다.


오늘 같은 자리에서 다양하게 카메라를 맞추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보니
그동안 막연했던 스팟 측광에 대해서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보충수업이 한참 더 필요한 제겐
안나돌리님,한걸음님,이쁜 여우님
이런 제 2 제 3의 사부님들이
큰 도움을 주시네요.

삼각대의 필요성,삼각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번 이야기를 들었어도
아직 삼각대 세우는 법도 모르는 나
아,한심하도다 절로 한숨이 나오네요.


드디어 종마장 앞
말보다 말을 찍고 있는 회원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우연히 바라본 종마장 맞은 편에서 색깔이 예쁜 꽃이
저를 유혹하네요.
슬슬 더워지는 날씨
이건 주객이 전도된 격이네 싶어서
말앞으로 다가갔지만 아직 자신이 없어서
조심 조심


말도 말이지만 말을 둘러싼 환경이 눈길을 끕니다.
올려다 본 하늘도 좋고요.


오늘은 함께 사진찍으러 간 사람들을 뒤에서
몰래 카메라로 잡듯이 찍어보는 것도 즐겁다는 것을
느낀 날이었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말을 담았습니다.
정면에서요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자에 이미 모여있는 사람들의 소리에 이끌려
그 곳으로 가니 반쪽이님이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음료수 한 캔씩
선물을 주네요.
시원한 레몬쥬스 한 잔을 마시고
서로 소개하는 이야기 나누고 잠깐 아래로 눈을 돌리니
근사한 장면이 들어옵니다.

이 때 이쁜여우님의 지도로 여러 컷 그 장면을 담아보았습니다.

조금만 변화를 주어도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요.


내려오는 길, 음식점에서의 수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음식을 음식점을 담는
부지런한 손길들
그런데 저는 이미 지쳐서 오늘은 이것으로도 족하다싶은
기분이네요.
만날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제가 놀랍고
기특합니다.
일학기 마치는 종강이지만
계속 이어져서 어떤 형태로든
사진을 찍고 발전할 수 있길 바라고
그동안 모임을 이끄느라 수고하신 안나돌리님
그리고 먼 길을 올라오시는 번거로움과
그 이후의 아네모에서의 정성스러운 답변으로
배움의 길잡이가 되신 도도님
한 번도 제대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못 드렸는데
오늘 밤 글을 쓰고 있자니
저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흘러나오네요.
예술에 대한 한없는 관심이 있으나
늘 수용자의 입장에서 살아온 세월
그래서 그것이 나의 한계라고 미리 짐작하고
더 이상은 노력하지 못했던 것에서
한 발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게 된 첫 세상이
바로 사진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제겐 의미있는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남과의 비교로 미리 진이 빠질까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그리고 내일의 나만
비교대상으로 삼자고 미리 마음 단단히 먹고 시작했지만
그래도 가끔 나의 진보가 얼마나 더디고
가끔은 후퇴하는 것인가 하고 괴로울 때도 물론 있지요.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도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순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도 있지요.
그래도 한 호흡 돌리고 나면
그 단계까지 오도록 노력한 그 사람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도
즐거운 일이랍니다.



다음 주 화요일 처음으로 화실에 가는 날입니다.
사실 생각지도 않게 기회가 생겨서
지금까지 한동안 계속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였는데
말끔히 정리되지 않았어도
사진에서 얻은 힘으로
시작해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두 사람
벌걸음소리에 신경쓰지 않고 무슨 이야기엔가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서 찍어보았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그림에서도 제겐
짝이 한 명 생겼는데요
기량의 차이가 너무 돋보여서 처음에는 많이
망서렸지요.
그런데 그 단계의 고민을 넘고 나니
그것도 축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네요.
한 학기의 마무리를 한 날밤이라
사진을 정리하면서 수다가 늘어졌습니다.
그래도 참 행복한 시간이네요.
함께 시작한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면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