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그러니까 3일전인 3월 18일 오후 여느 때처럼 집 근처에서 등산을 하고 있는데 앞서 가던 남자 두 분이 저에게 묻네요.
"저 이 토끼 집토끼인지 산토끼인지 아시겠어요? 저희들보다 앞서가던 등산객이 개를 끌고 가니까 토끼가 놀라서 산에서 뛰어 나오길래 저희 둘이 몰아서 생포한 것이예요."
제가 받아서 보니 어린 토끼이고, 아주 놀랐는지 덜덜덜 떨면서 달아날 생각을 못하네요.
"예, 털색갈이 누르스름하고 이렇게 산에서 발견된 것이면 산토끼일 가능성이 높겠는데요. 집토끼는 대부분 흰색이 아닌가요? 집토끼든 산토끼든 불쌍하니 그냥 풀어주었으면 좋겠네요."
"예, 알아서 처리하세요. 저희는 바빠서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해서 제가 토끼를 들고 경사가 심한 곳을 골라 산 밑으로 대여섯발 내려가 토끼를 풀어주었는데 낙엽속에 파묻혀 꼼짝을 안하네요. 처음엔 몇 발자국 위로 올라가려 하기에 위로 올라가면 등산객들이 나니는 길이라 위로 못 올라가게 했더니 그자리에 그냥 주저 앉아 있네요.
저도 등산해야 했기에 (혈압을 낮추려고 의도적으로 등산하고 있는 거라) 토끼를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가는데 자꾸 토끼 생각이 나네요. "그 녀석 어디론가 뛰어 달아나야 하는데 왜 가만 있을까?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면 어떻까? 이 산속에 아직은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참 불쌍한 녀석이네." 라고 생각하면서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어 15분쯤 후에 발길을 돌려 다시 그 녀석이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역시나 그 장소에 가만히 있네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는대도 꼼짝을 안 해요. 그래서 그 녀석을 다른 곳으로 옮겨 주려고 그 녀석을 들으니 이번엔 네 발을 움직이면서 저항하네요. 어쨌거나 들고 조금 걸어가는데 밑에서 다른 등산객 한 분이 "여기에 누군가가 채소 같은 것을 놓고 간 것 같으니 이 근방에 풀어주는 게 어때요?" 하시길레 토끼를 내려 놓으니 이 번엔 토끼가 움직이면서 제가 잡으려고 하면 안 잡힐려고 저보다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이네요. 물로 심하게 달리면 다시 토끼를 잡을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잡다가 다치게 하거나, 토끼가 다시 놀라면 전처럼 꼼짝 안 할 것 같아, 모는 척 하면서 토끼가 달아나게 했네요. 나중에 그 채소를 먹으면 이틀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 말고는 산 속에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토끼가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게 한 다음 그 등산객과 올라 가면서 말을 주고 받는데, 그 분은 누군가가 집토끼를 사서 최근에 산에 풀어 놓은 경우가 아닌가 생각한답니다. 경기도 광릉 수목원에서도 그런 적이 있다고 하시면서요. 도시 근처의 비교적 낮은 산으로 제가 벌써 열 번 이상 이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한 번도 토끼 낌새나 야생동물의 흔적 같은 것을 감지한 적이 없어 저도 그 분 말을 들고 집토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하지만 그 동안 제가 본 집토끼들은 모두 흰색이었는데 얘는 목인가 등인가에 길게 한 줄로 흰색 털이 나 있고 배쪽도 흰색인 것을 제외하곤 연한 갈색어서 산토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반반으로 갖고 있답니다.
마침 들고 갔던 휴대 전화의 배터리도 다 떨어졌는지 사진도 세 장밖에 못 찍었는데, 그 중 두 장은 흐릿해서 이 한 장만 올립니다.
잘 살고 있으면서, 제가 주말마다 등산하러 가면 먼 발치에서 뛰어다녔으면 좋겠네요. 짝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