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 어느날 동생이 저한테 말합니다.
"형 내가 책 사줄 테니 10만원 한도 내에서 원하는 책들 알려줘."
"응, 알았어. 언제까지 알려주면 되는데?"
"내년 초까지."
그 동안 바빠서 미루다, 지난 5일(일) 오전에 동생에 e-mail로 book list를 보냈습니다.
총 9권 (원서 1권, 나머진 한글로 된 책들).
7일(화) 동생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형, 알라딘에서 연락이 왔는데, 주문한 책 모두를 다 구하지 못하면 나머니 책들은 따로 보내야 하는 모양인데, 나머지 책들을 모두 한꺼번에 받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한 권씩이라도 구해지는대로 받아 보기를 원하는지 물어 보내. 그리고 구해지는 책들은 모두 수요일(8일) 보내준다 하니 그리 알고 있어."
"니가 알아서 해."
전화를 끊고 어떤 책(들)이 따로 늦게 도착할 지 조금 궁금했지요.
어제 목요일에 책이 도착했는데, 받을 수 없어, 책이 관리실에서 stayed overnight 했어요.
오늘 받아서 개봉해 보니 9권 모두 들어 있네요.
찬찬히 살펴 보니 그 중 한 권은 원래는 한글번역본('총 균 쇠')으로 주문한 것인데 원서(guns, germs, and steel)로 왔어요.
혼자 웃었습니다.
이거 원서를 못 읽는 사람이 받았다면 별 수 없이 반품하고 새로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어떻게 나를 능력자라 보고,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원서를 보냈단 말인가.
"8일까지 다 구하지 못해 물어 본 것이 바로 '총 균 쇠 (guns, germs, steel)'라는 책 때문이었나 보다. 하지만 가급적 한꺼번에 다 보내고 싶어서 (한글 번역본은 일시 품절이라) 원서로 대신 보냈다 보다, 석지영 교수가 쓴 책을 번역본이 아니라 원서로 구입한 걸 보고 원서 독해 능력이 있다 판단하고 보냈다 보다" 생각했습니다.
모든 책을 한꺼번에 받아서 좋기는 한데, 걱정이 앞섭니다.
노안이 와서 깨알같이 작은 글자 읽기가 힘들거든요.
석지영씨가 쓴 책을 원서로 주문한 이유는 네이버 책 소개에서 얼핏 보니 그녀의 영어 글쓰기/표현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서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였습니다.
'총 균 쇠'는 굳이 원서로 읽을 필요 없다 생각했어요. 어떤 근거로 어떤 주장을 펼치는데 얼마나 타당한지만 알고 싶어 빨리 내용 파악만 하고 싶었으니까요. 대체로 원서는, 특히 학술적인 내용이 들어 있는 원서는, 글자가 작은 경향이 있어 빨리 읽기에 지장을 받을 거라 봤거든요.
(석지영씨 책은 드문드문 인쇄돼 있어 어느 정도의 노안도 그냥 읽을 수 있음)
(반면, '총 균 쇠' 원서는 글자가 빡빡함)
받아서 자꾸 쳐다 보니 처음 받았을 때 보단 눈이 조금 적응해 가는지 읽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엔 457 page 짜리 원서 읽는데 시간 얼마 안 걸렸는데, 요즘엔 얼마나 걸릴지..
아 사라져 가는 실력이여~
아 스러져 가는 건강이여~
옛날엔 아무리 두꺼운 원서라도 즐겁게 읽었지만, 요즘엔 계산을 하면서 읽으니 (이런 것 알아서, 교양 넓혀서 어디에 쓰나 하는 생각함) 책읽기, 특히 원서 읽기가 주저되네요.
하지만, 원서가 도착한 건 하늘이 전갈(message)을 보낸 것일 테니 그 뜻에 충실해야겠지요?
올 겨울 아무 생각 안 하고 영어 책 읽기 열심히 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