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에 주로 그림을 보는 것 같은데 화요일의 갤러리 투어에서
이번 주에는 가나 아트센터와 이응로 미술관을 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이었지요.
artmania님이 보낸 쪽지였는데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주에는 조각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간다면 누구인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답을 보냈는데
아뿔싸 미술사 강의를 대학에서 하고 있다는 답변을 듣고 제가 얼마나
황당해 했을지 짐작이 가나요?
언젠가 모나리자님이 본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그림을 올렸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번데기앞에서 주름잡은 꼴이로구나
그래도 그다지 민망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마추어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서이고
그런 저런 시선에 다 신경을 쓰다간 글에서의 자유가 없어질 것이라
제 나름의 취미생활을 그냥 즐기리라 마음먹었기 때문이지요.
오늘 나들이는 그래서 가나 아트센터의 문 신 조각전과
이응로 미술관의 이응로의 시서화전
그리고 잠시 짬을 내어서 점심을 먹으면서 artmania님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게겐 상당히 낯선 일이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분야가 같다는 한가지 공통점으로 참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집에 와서 문 신의 조각을 올려보려고 찾아보니
이상하게 문 신의 조각은 이미지로 뜨는 것이 없네요.
아쉽습니다.
함께 나누면서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없어서요.
전시장에서 만난 문 신은 흑단과 주목,그리고 청동과 석고 작업으로 제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특히 흑단으로 만든 작품들은 나무의 결로 인해 대칭속에서도 비대칭의 느낌을 주어서
인상적이었고 청동의 느낌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니 놀라서
여러 번 보고 또 보고 하였습니다.
그의 드로잉은 조각을 위한 스케치라곤 하지만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장르가 될 것 같은
그런 드로잉이었는데
전시장에서 만난 작품들 이외에도 도록으로 나온 조각과 드로잉에서는
훨씬 많은 작품을 만나서 더 즐거웠습니다.
일단 전시장을 한 번 다 둘러본 다음 도록을 세세히 보고
그 와중에서 가나아트센터에서 펴낸 오늘의 미술가 시리즈를 읽게 되었지요.
하인두라는 화가에게 눈길이 머물러서 마음에 담아 오기도 했습니다.
그 시리즈에서 김종영에 관한 글을 읽고는 오늘 덕수궁에 꼭 들렀다 가야지
마음 먹기도 했고요.
이응로 미술관에서는 그의 서예 작품을 위주로 해서 이응로의 시서화전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 곳은 12시가 되어서야 문을 열더군요.
마침 큐레이터가 설명을 해주어서 아주 도움이 되었습니다.
거의 글자를 알아볼 수 없는 추상화된 형태의 서예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볼 뻔했는데 미리 미리 뜻을 설명해주는 덕분에 눈이 열려서 볼 수 있는 것이 많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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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쓰인 작품입니다.
제작 년도
| 1975
재료/기법
| 한지에 먹과 담채
작품 규격
| 139x60cm
작품 설명
| 우측작품:
栗谷先生詩 (율곡선생시 )
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임정추이만 소객의무궁
원수연천벽 상풍향일홍
산토고륜월 강함만리풍
색홍하처거 성단모운중
숲 속 정자에 가을 이미 늦어
시인의 가슴에는 끝없는 생각
멀리 물과 하늘이 맞닿아 푸른데
단풍은 햇빛 받아 타는 듯 붉다
산은 외로운 달 토해 내는데
강은 긴 바람을 머금었나니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소리는 구름 속으로 끊어졌구나
一九七五年 於 巴里 滯遊 顧菴 李應魯 書
좌측작품:
신사임당시
千里家山萬疊峯 歸心長在夢魂中
寒松亭畔孤輪月 鏡浦臺前一陣風
沙上白鷗恒聚山 海門漁艇任選
何時重踏臨瀛路 更着斑衣膝下縫
천리가산만첩봉 귀심장재몽혼중
한송정반고륜월 경포대전일진풍
사상백구항취산 해문어정임서동
하시중답임영로 갱착반의슬하봉
산 첩첩 내 고향 천리언마는
자나 깨나 꿈속에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락 모이락
고깃배들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가름 길 다시 밟아가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꼬
我國名賢 申師任堂詩OOOO思親 栗谷先生詩 八歲作
고암 이응로는 어려서부터 서예의 세계에 입문했고
평생을 글씨에 관심을 갖고 살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여느 서예가와는 달리 서예가 작품에서 변용되어 나타나
그림의 영역으로 들어와서 일종의 문자추상의 경지로 옮겨간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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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용자라도 얼마나 다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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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년도
| 1971
재료/기법
| 한지에 먹
작품 규격
| 131x50.5cm
작품 설명
| 書者心畵也 柳公權曰 心正則筆正 此一語足以盡之矣
서자심화야 유공권왈 심정즉필정 차일어족이진지의
중국 서예가 유공권이 말하기를 글은 마음의 그림이라, 마음이 바르면 글씨 또한 바르다 하니 이 한마디 말로 부족함이 없다.
一九七一年 O天 顧菴 李應魯 書
마음이 찔리는 글이로군요.
제 글씨가 날라갈 듯 엉망이라서 자꾸 글씨를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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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년도
| 1978
재료/기법
| 한지에 먹
작품 규격
| 134x69cm
작품 설명
| 更進更進又更進 一念二念千萬念
갱진갱진우갱진 일념이념천만념
다시 나아가고 나아가고 또 다시 나아가고
한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고 천만번 생각하고
一九七八年 一月 三日 病席 訓 家族 顧菴 試筆
이 글은 병석에 누운 고암이 가족들에게 가훈으로 남긴 글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오늘 마치 제게 주신 글처럼 느끼고 마음에 새기고 온 작품입니다.
미술관에서 찾을 수 없어서 올리진 못하나
그가 동백림 사건으로 더 이상 조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된 뒤에도
조국을 생각하면서 쓴 글들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응로와 윤이상을 품지 못했던 나라,
그러나 그들은 나라에 대한 애정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죽음의 순간까지 이 곳을 그리워 했다고 하더군요.
과연 사람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마음 숙연한 기분으로 그림을 보기도 했습니다.
이응로 미술관은 대나무 전시,문자추상 전시,군상 시리즈 전시등으로
여러차례 온 곳이지만 올때마다 느낌이 새롭더군요.
전시장을 나와서 artmania님과 점심을 먹으면서
서로 소개도 하고 일상의 이야기도 나눈 다음
제가 제의했습니다.
미술에 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82cook에 상당히 많은 것같은데
갤러리 투어하는 일정을 공개하고
원하는 사람들은 전시장에서 만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요.
제가 그 생각을 한 것은 현직에서 일하는 미술사 강사라는 직책이
갤러리 투어에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구나 싶었고
그래서 덕분에 오늘 이응로전을 유익하게 볼 수 있었고
그런 기회에 그림을 통해 서로 알 수 있는 시간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기다리는 학생들 때문에 이야기도중 아쉽게 헤어지고 나서
저는 택시를 타고 덕수궁으로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을 교보문고를 지척에 두고도 들러볼 시간이 없는 날이었군요.
그래도 좋았습니다.
덕수궁 전시는 입장료 이외에는 무료 전시더군요.
일,이층 가득 김종영의 조각과 뎃생,그리고 영상 자료와 신문자료등이
준비되어 있어서 전시 주최측의 성의가 돋보이는 느낌이었습니다.
문 신전의 느낌과는 또 다른 전시였고요
인간으로서도 상당히 성숙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조각들을 만났습니다.
아주 기분좋은 시간이었고
다음 주에 다시 한 번 오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더군요.
시간이 넉넉지 못하여 덕수궁을 거닐면서 구경도 하고
벤치에 앉아서 들고 간 책을 읽는 고즈녁한 시간을 갖기도 하는 그런 여유있는
나들이가 못 된 것이 아쉬워서 다음 주에는
오전에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보고 싶다고 마음으로 점을 찍고 왔습니다.
더구나 그 곳의 아트 샵에는 다른 곳보다 미술관련 서적이 많이 구비되어 있어서
그 곳에서 새로 만나는 책들과 눈으로 인사하기 바빴습니다.
읽을 시간까지는 모자라서 일단 메모를 해놓고
집에 와서 시간이 날 때마다 검색을 해보고 읽을 책을 골라야지 작정을 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예전에 말했던 첼리니 자서전이 번역되어 나와 있더군요.
아,첼리니 자서전
지금 읽으면 어떤 맛일까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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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은 자화상이라고 하지 않고 자각상이라고 하네요.
김종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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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신 조각전에서는 브론즈의 다양함에 덕수궁에서는 대리석의 다양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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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을 잘하기 이전에 좋은 인간이 먼저라고 생각했다는 우성 김종영
조각을 보러 갔다가 마음속에 사람을 담아가지고 온 기분좋은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