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함께 볼 만한 그림이 많아서요.
아마 보티첼리라는 이름이 낯선 사람들이 있다 해도
그의 비너스의 탄생과 프리마베라를 보면 아 이 그림 하고 탄성이 나올 것 같은데요.
글과 오래 전에 제가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고 썼던 독후감 한 편을 함께 올려 놓습니다.
제목을 이렇게 쓰고 보니
마치 지금 피렌체에서 시간을 보낸 느낌이 드는군요.
지리적으로는 아니지만 정신과 마음은 그런 셈입니다.
지난 번 김재원씨가 예스 24에서 할인행사를 하고 있다고
소개한 박물관 미술시리즈에 마침 루브르와 피티
그리고 우피치 미술관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선 피티와 우피치 1번을 보았는데요
둘 다 피렌체에 있는 미술관인 관계로
그 곳 정경이 먼저 펼쳐져서 한 눈에 피렌체 시내를
볼 수 있었지요.
그리곤 미술관에 있는 소장품 하나 하나를 소개하는 형식이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목요일 서양사 시간에 읽고 있는 분야가 마침 르레상스시대라
다음 주 정도에 이 디브이디를 함께 감상할 만한 성질의
것인가 잠깐 살펴보려다가 붙들려서
결국 피티와 우피치를 보았는데
피티 미술관에는 라파엘로와 티치아노가
그리고 우피치에서는 보티첼리와 프라 안젤리코
그리고 조토의 그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덕분에 인터넷에서 우피치에 들어가서
이 방 저 방 구경도 하고
지금 보티첼리를 다시 한 번 보고 있는 중입니다.
![](http://www.pinakothek.de/images/4421_11703-m.jpg)
![](http://www.liechtensteinmuseum.at/en/pages/showImage.asp?src=/assets/images/24FDA.jpg&width=330&page=1553)
![](http://www.louvre.fr/img/photos/collec/peint/grande/rf0321.jpg)
보티첼리의 그림은 성화를 그릴때와 신화를 소재로 할 때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네요.
이 작품은 플로렌스 근처의 어떤 집 벽화인 모양입니다.
![](http://cartelen.louvre.fr/pub/fr/image/1360_p0003476.001.jpg)
![](http://cartelen.louvre.fr/pub/fr/image/1343_p0003731.001.jpg)
![](http://www.nga.gov/image/a00005/a00005c8.jpg)
메디치 가문의 줄리아노의 초상화로군요.
![](http://www.nga.gov/image/a00007/a000076c.jpg)
![](http://www.nationalgallery.org.uk/WebMedia/Images/91/NG915/eNG915.jpg)
비너스와 마르스입니다.
왼쪽의 비너스 표정이 어딘가 낯이 익지요?
![](http://www.staedelmuseum.de/uploads/pics/bild_993fda2962f3e27dea438_01.jpg)
![](http://www.artchive.com/artchive/b/botticelli/primavera.jpg)
![](http://www.artchive.com/artchive/b/botticelli/venus.jpg)
그림을 보면서 하게 된 생각은 보티첼리가
지금 생존한 화가라면 반드시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현대적인 감각을 보이는군요.
![](http://www.nationalgallery.org.uk/WebMedia/Images/59/NG598/eNG598.jpg)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입니다.
반 룬은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를 소개하면서
메디치 가문과 또 한 사람
바로 프란체스코를 거론하더군요.
믿음의 방향을 바꾼 사람이라고
오늘 마더 데레사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중의 하나가 사랑의 선교회에서
수녀가 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마지막 조건이
명랑할 것이었습니다.
둘 사이의 어떤 연관성이 느껴지네요.
오늘은 디브이디로 시작한 미술관 기행이
결국 보티첼리에서 끝나게 되었는데
개같은 전쟁이란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당시의 피렌체가 응축되어 나오는 소설이어서
주인공 보티첼리이외에도 다양한 한 시대의 파노라마가
전개되는 소설인데
다시 보면 새롭게 읽혀지는 것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오늘 여기에 올려 놓으려고 다시 읽어보는 독후감
언제 이렇게 썼을까
그런데 왜 이렇게 생각이 가물가물하지
동시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래서 기록은 중요한 힘이 되는 모양입니다.
보티첼리, 혹은 개 같은 전쟁
보티첼리가 누구더라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야 하면 아, 하고 떠오르는 인상이 있을 겁니다. 조개타고 올라오는 비너스상이라면 더 실감이 나겠지요?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바로 보티첼리인데 그가 살았던 시기의 피렌체는 참 복잡한 상황의 도시국가였습니다.
르네상스의 최대 후원자라 할 수 있는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가 죽은 연대가 바로 1492년인데 이 연대는 콜럼버스가 스페인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아 떠난 해이기도 하지요.
로렌초의 아들은 아버지만한 역량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 당시 피렌체는 겉 모양은 공화국이지만 나라의 정치는 메디치 가문이 주도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의 아들이 정치를 제대로 못한 탓에 쫓겨난 후 사보나롤라라는 수도사가 신정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시기가 이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문이 어떤 역할을 했나에 관심이 있는 분은 메디치가 이야기(생각의 나무)란 책을 참고로 하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단지 한 가문의 생성에서 몰락까지만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시기 이탈리아의 각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당시 떠오르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의 역할 속에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생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나 하는 것도 잘 알 수 있고 우리가 아는 르네상스의 불멸의 화가들이 어떤 상황에서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한 감도 잡을 수 있는 책이거든요.
이 시기에 산 또 한 사람의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마키아벨리입니다. 어지러운 시기의 피렌체 공화국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인물이고 그가 그런 상황에서 쓴 군주론이란 책이 당시 교황의 아들이었던 체사레 보르자를 주인공으로 한 군주론이란 책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평전과 우아한 냉혹(이란 체사레 보르자 평전을 동시에 읽었는데 그것이 당시의 이탈리아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보나롤라가 신정정치를 펴던 시기에 교황 알렉산드르 6세와 사보나롤라의 사이가 벌어지고 결국 사보나롤라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 바로 직전의 시기에서 사보나롤라가 화형을 당하는 시기까지를 시대배경으로 하여 실존 인물인 보티첼리와 베네데토 세르미니와 에밀리아 스코르푸치라는 가상의 인물이 서로 맞물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소설은 인간이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시기에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마치 이 상황이 문화대혁명시기의 중국을 연상시켜서 혼자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념이 지배하는 시기의 상황은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하는 의혹때문이었지요.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면 수도사들의 공화국 3년째입니다. 피아뇨니(사보나롤라 추종자들)와 아라비아티(메디치가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귀족주의자들) 사이에 내란의 기미가 보이는 시기에 주인공 베네데토 세르미니가 피아뇨니파의 일원인데 빈민가 출신으로 그림에 재능이 있는 인물로 나옵니다.
그는 수도원에 몰래 들어가서 사람들이 서로를 고발한 종이뭉치를 훔쳐 갖고 나오는데 그것을 그들을 지도하는 추악한 인물인 스코폰 신부에게 전달하기 전에 미리 고발뭉치를 읽어 봅니다. 그 중에는 남색의 죄로 보티첼리를 고발한 글이 나오지요.
베네데토는 그가 존경하는 화가의 고발장을 고민하다가 몰래 찢어버리게 됩니다. 그로서는 그 고발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가를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가 속한 염색소구역의 흰 옷을 입은 소년단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이 과연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인물들인가를 의심할 만한 소년들이 등장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혹은 어떤 정의의 이름으로 뭉친 집단의 내면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아주 적절한 대상으로 이 소년들을 들 수 있겠지요. 이런 경우는 비단 신정공화국을 지지하는 한 무리의 소년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증오가 증오를 낳는 상황에서 베네데토는 회의라는 무기를 지닌 인물로 나온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베네데토는 그를 시기하는 자코포 마시니에게 떠밀려 결국 보티첼리를 감시하는 역을 떠맡게 되고 그의 진짜 의도를 숨기고 보티첼리의 공방으로 견습생이 되러 갑니다. 그의 데생을 본 보티첼리가 그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너는 윤곽선의 중요성도 알고 있고 데생에도 소질이 있지만 외양을 그리는 일에만 매달려 있어 보이지않는 것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깊은 본질로 표현할 수있는 깊이가 없다는 점에서 예술가가 되지 못 할 것이라고 직선적으로 말하지요.
베네데토는 깊은 충격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절규하지요. 배우겠습니다. 제가 배워오기를 바라는 염색소 구역의 군단과 도메니코 수도사님을 위해서 선생님한테서 꼭 배우겠습니다라고요. 그러자 보티첼리는 그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보고 일주일 뒤에 아틀리에에 오는 것을 허락합니다.
베네데토의 마음 속에 화가가 되고 싶은 열망과 자신을 비웃은 보티첼리에 대한 증오심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는 신정공화국의 정의를 믿고 있는 상태인데 신정공화국에서 알고 싶어하는 사항은 보티첼리가 과연 남색가인가 하는 점입니다.
실제로 보티첼리는 바초 델라 포르타라는 제자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나 베네데토가 보기에 그것이 연인 사이란 증거를 확보할 수 없는 상태라 함부로 고발을 할 수 없고 증거를 확보하기전에는 안된다고 마음 먹습니다만 그를 보낸 염색소구역의 소년단에서는 보티첼리의 죄를 고발하도록 보챕니다.
그런 상태에서 베네데토는 보티첼리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편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그것은 타락을 부추긴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하기 좋은 그림이었지요.
그러나 그는 스승으로부터 벽화제작에 참여시킨다는 언질을 받은 상태여서 고민하게 됩니다. 지옥편의 그림을 고발하는 일과 자신에게 기회가 오는 것을 맡고 싶은 욕망사이에서의 갈등이지요.
그를 다른 소년들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열망과 갈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소설의 캐릭터를 만드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음에 등장하는 인물이 에밀리아 스코르푸치인데 그녀는 보티첼리의 그림에 모델이 되기 위해 공방에 등장합니다. 이 모델을 통해 우리는 보티첼리가 어떻게 그림을 완성시켜 나가는가 하는 예술창작의 면모를 보게 되지요. 아주 세밀하게.
이 와중에 피렌체에는 전염병이 돕니다. 거리는 순식간에 병이 퍼져나가면서 피렌체가 망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언이 도시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상황에서 보티첼리는 나자로의 소생이란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 그림은 보티첼리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보나놀라의 부탁으로 그려지고 있는 중이지요.
보티첼리는 베다니아의 마리아를 그리기 위해 에밀리아를 고용한 상태이고 이 작업에 신참인 베네데토를 참여시킵니다. 사실 자신의 그림에 자신감이 없는 베네데토는 스승이 왜 그를 지목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를 가르쳐 주는 공방의 선배를 통해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계속되는 채근(보티첼리를 고발할 수있는 근거를 갖고 오라는)과 공방의 모델에게 느끼는 연정, 스승에게 느끼는 존경과 분노 사이에서 갈가리 찢기는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이렇게 갈등하는 상황에서 로렌초의 아들 피에로가 군대를 모아 진격해오고 가까스로 공격을 이겨내긴 했지만 신정공화국은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새로운 질서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고 느낀 자코포 마시니는 제일 먼저 처벌받아야 할 사람은 가짜 동지들이라고 결정내리지요. 그는 피렌체의 강경파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사람들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느끼고 있고 바람만 불어도 부들부들떠는 인간은 공화국에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는 베네데토를 파멸시킬 계획을 짜지만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그를 살인으로 끌어들입니다. 그 구역에서 아라비아티에게 붙어서 살아가는 가난한 소년을 죽이도록 베네데토를 끌어들이자 베네데토는 오히려 아라비아티보다 같은 편의 인간이 자신에게 더 잔인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서리치는 진실로 깨닫게 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이 일을 거절할 경우 그의 진실성이 의심받은 수 있는 상황이 되니까요.
살인 이후 베네데토는 자신이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물컹한 살의 감촉, 죽어가는 인간이 그에게 준 잊을 수없는 충격이 있는 것이지요. 극단적인 상황에서 살인이 상당히 자주 일어난다고는 해도 그것이 예민한 성격의 사색적인 인간에게 가하는 충격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피렌체의 정치판도는 다시 바뀝니다. 피렌체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빵이 모자라고 그것이 신앙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교황의 파문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사람들의 기류가 바뀌게 되지요.,
결국 사보나롤라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언제 그랬느냐 싶게 편을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결국 사보나롤라는 화형당하고 베네데토는 자신의 신념으로 선택한 체제가 몰락하는 것을 지켜보며 갈등을 느낍니다. 어떻게 저렇게 한 순간에 돌변할 수 있나 하는 심정이지요. 그가 선택한 체제가 그를 빈민가에서 좀 더 다른 삶으로의 변화를 열어 주는 출구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갈등하는 영혼을 지닌 그는 번민 속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무게를 지닌 존재가 됩니다.
그런 그의 존재가 결국 그림 속에서 자신을 고양시키려는 힘을 지니게 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아라비아티가 정권을 잡자 상황은 다시 돌변합니다. 보티첼리도 결국 당국에 불려 가게 되지요. 라자로의 소생을 그린 것이 문제가 되고 사보나롤라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렸다는 것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퍼뜨리는 증오, 상대방에 대한 증오가 타오를 때 인간의 이성은 혹은 회의하는 정신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체제를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의 잔혹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상황에서 보티첼리는 자신이 무엇을 그릴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 결국 상황이 복잡해지자 라자로의 소생에서 모델이 된 두 사람을 피신시키게 되지요.
보티첼리는 그들을 보내면서 에밀리아에게 당부합니다. 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찾게 도와줘, 그게 없으면 일생 동안 수습생으로 머물러 있게 될 것이라고...
보티첼리를 걱정하는 두 사람에게 보티첼리는 죽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는 끝내야 할 신곡이 있다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짓도 하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어서가 그리고 축복이 있기를... 하고 소설은 끝나는군요.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가가 무슨 의도로 단테의 신곡을 이렇게 중요한 요소로 다루었나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혔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보티첼리의 예술 세계를 밝히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는데 제가 요약본의 내용 외에는 단테의 신곡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름만 듣던 몇 사람을 꼭 통과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점이 이 소설을 읽은 부수적인 성과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르네상스의 3대 천재라고 하는 사람들에 가려 잘 조명되지 않는 한 화가를 소설을 통해 잘 살려 놓은 것도 작가의 공로로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작품에서는 예술에 관한 보티첼리의 말이 많이 언급되는데 그것은 제 역량이 부족하여 소개하기 어려워서 오히려 소설 속에서 창조한 베네데토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소설을 소개한 감이 있습니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어느 한 시기를 글로 요약한 것으로 만나는 것은 지식은 늘어날지 모르나 실제 생생한 상상력을 갖기는 참 어렵지 않은가요? 그 시기를 배경으로 다룬 소설을 읽으면 한 주인공 혹은 여럿의 삶을 통해서 디테일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역사적으로 맞느냐 아니냐는 별개로 하더라도 생생한 한 세계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지요. 그것을 통해서 실제로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피렌체에서 정치 체제가 변화되는 시기에 살아간 인간들의 이야기를 화가를 중심으로 풀어낸 이 이야기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반의 피렌체로 그리고 그 시기의 이탈리아로 동시에 지금의 우리를 비추는 등불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