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를 공부하던 중 어린 학생들이 물어봅니다. 선생님, 이 책 다 끝나면 하루 놀면 안되요?
무엇을 하고 놀고 싶니? 놀이 동산 가요. 스페인어 요리 먹으러 가요. 노래방 가요, 가요, 가요 가요
이렇게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지요. 책을 끝내가면서 이런 논의는 더 빈번해지고, 언제 끝날지 모르니 그 때 가서 상의하자고 해도
한 번 마음속에 자리잡은 생각은 아이들에게 뿌리뽑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마치 마지막 쫑파티를 위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듯한
묘한 상황이 되기도 했고요.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구나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토요일 오후 서울까지 놀이동산에 가는 일은 너무 번거롭다고 어른들이 말려서 합의한 것이 낮에 모여서 배드민턴 치고
저녁 먹은 다음 우리집에서 모여서 놀기로 한 것이지요. 토요일 저녁 시간에 공부하러 오는 아이들에게 일요일로 시간을 바꾸어서 와달라고
사정을 말하고, 7시에는 도서관을 나설 수 있게 했으니 저는 결국 배드민턴 치는 재미있는 시간에는 참석을 못 했지요.
가족 모임에 가느라 빠진 하민이를 제외한 전원이 참석한 쫑파티, 원 멤버인 노다윤 어머니 arhet님과 달래와 민경이 어머니
어른은 저까지 넷이고 달래와 민경이 동생까지 참여한 대부대가 모여서 저녁을 먹는데 저녁 먹는 장소로 가보니 남자 아이들 셋이
없는 겁니다 . 중국집은 싫다고 셋이서 피자를 먹으러 갔다네요.
집으로 오니 피아노에 앉아서 아이들이 악보도 없이 피아노를 칩니다. 특히 민준이는 학예회 준비로 연습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주해주었는데 악보를 빌려줄 수 있는가 물으니 그 악보 말고도 여러 곡이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새로운 곡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금요일 음악회의 여운이 강하게 남아서 식었던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제가 연습하다가 궁금해하던 부분을 물어보니 여럿이서 달려들어서 알려주는 덕분에 한 곡은 제대로 해결을 하고, 아이들이
자신이 기억하는 재미있는 곡들을 치는 도중에 다른 멤버들이 도착했습니다.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하다가 노다메 칸타빌레 최종악장이 집에 있어서 그것을 일단 볼 것인가 물었더니 여학생들이 대환영이더라고요.
옹기 종기 앉아서 마루의 불을 거의 끈 상태에서 보고 있자니 스토리에 반응하는 아이들, 음악에 반응하는 아이들, 두런 두런 들리는 이야기
소리, 영화관과는 다른 묘미가 있습니다. 집에서 무엇인가를 함께 본다는 것은
중간에 어린 남학생들이 지루해해서 나가서 놀도록 하고, 아이들은 계속 노다메를 보고 어른들은 식탁에 들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 피어났습니다 .스페인어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목요일 밤 다 모여서 아이들과 역사 책을 읽는 멤버이다보니 밤에 수업끝나고
배드민턴도 함께 치고, 이렇게 쌓인 시간이 이런 장소에서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가 가능한 사이가 되었네요.
선생을 오래 한 제게도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라서 앞으로는 가능하면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과 어른이 동시에 참여하는 수업을
늘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만날 때부터 노래방 노래를 부르던 아이들이 있어서 마지막에는 민하가 책임지고 아이들을 노래방으로 데려가고, 어른들은 소파에 앉아서
랑랑의 피아노 연주를 보면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지요. 공적인 공간에서의 만남과 사적인 공간에서의 만남은 역시 무늬가 다르다는 것
그래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한 것이로구나 새삼 느낀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잘 놀고 다음 주 토요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책에는 새로운 멤버도 등장을 할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이 모임이 발전하게
될지 기대가 되네요.관심있는 분들은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용기있게 한 발 내딛어보실래요?
그러고 보니 미국에 가 있는 후배에게서 온 전화, 갑자기 딸이 수화기를 들더니 우노, 도스 하고 숫자를 말하더군요. 아마 엄마랑 대화하는
중에 스페인어 학교에서 배우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갑작스럽게 말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 모양이지요. 그러더니 깨 딸 에스따스하고
묻는 겁니다 .그것도 토요일 낮에, 얼마나 웃었던지요!!
그래, 내년에는 네가 강력한 멤버가 되겠구나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