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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부부싸움

| 조회수 : 1,918 | 추천수 : 130
작성일 : 2009-09-22 01:16:38
몇 년 전 한국에서 있을 때 한 동네에 사는 여고 동창에게 부탁을 해서 초등학교 2학년짜리 세째를 이비인후과에 데려가 달라고 했다. 일주일의 반은 광주에서 일을 했던지라 아이들의 병원행처럼 급한 일이 생기면 쩔쩔 매게 되는데, 다행히 한동네에 절친한 여고 동창이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세째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 온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으며 전화를 걸어왔다. 세째를 태우고 병원에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엄마 아빠가 싸웠던 얘기를 했다고 한다. 엄마가 집을 자주 비워서 속상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건 괜찮은데 엄마 아빠가 싸워서 걱정이 된다고 했다 한다. 하도 엉뚱해서 뭐가 걱정이냐, 엄마가 왜 싸웠는데 그러냐, 고 물었더니 우리들한테는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는데 엄마 아빠가 싸워서 빨리 화해를 시켜줘야 한다고 했단다. 엄마 아빠가 너희들 보는 데서 싸우더냐고 했더니 자기가 자다가 화장실에 가다가 들었는데 엄마와 아빠가 다투고 있어서 다 들었다고 한다.

목격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두 사람이 고칠 점까지 얘기를 해서 친구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엄마는 무조건 화만 내지 말고 아빠의 얘기를 끝까지 잘 들은 다음에 얘기를 해야 하고, 아빠는 무조건 잘못을 안했다고 할 게 아니라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해야 했다고 분석을 하더란다. 아마도 아빠가 빨리 사과를 했으면 엄마가 덜 화가 났을 거라는 얘기도 덧붙이더란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 짜리 세째의 얘기가 하도 맞는 이야기라서 친구는 몇 번이나 감탄을 했다고 한다. 자기는 아들만 키워서 그런지 여자 아이들은 정말 다른가 보라며 네 딸이 부부상담 전문가 해도 되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아이에게 하도 미안해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영은아, 엄마가 아빠랑 싸워서 속상했다면서?"
"네 쪼끔요..."
"너도 가끔씩 언니나 동생과 싸울 때가 있잖아. 근데 그러다가도 조금 지나면 다시 잘 놀고 또 싸우기도 하고 그러잖아.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야. 엄마도 아빠랑 금방 다시 화해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마의 어줍잖은 변명에 아이가 안심하며 웃는 모습이 전화기를 통해서도 전해진다.

어느 부부나 결혼 생활을 하면서 다투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겉으로 드러나든 아니든 모든 부부는 수많은 투쟁을 통해 서로 익숙해지고 가까워지기도 하는 듯 하다. 끝없는 다툼과 화해를 통해 나의 모습도 보게 되고 남편의 모습도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가는 것이 부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보는 곳에서는 가급적 다투지 말아야겠다고 조심을 하는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낮말을 듣는 새나 밤말을 듣는다는 쥐가 없어도 아이들의 눈과 귀는 언제나 부모의 일거수 일투족을 향해 열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은 스폰지와 같다고 한다. 모든 물기를 빠른 속도로 다 흡수하고도 겉으로는 보송보송해보이는 스폰지처럼 아이들도 주변의 모든 현상을 급속도로 흡수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부 아동 심리학에서는 출생 이전의 흡수력까지 논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이들은 출생과 동시에 주변의 모든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만 한살 이전에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들이 만 한살 이후에 버려진 아이들보다 면역력도 떨어지고 사망률도 높다고 한다. 물론 고아원에서 부모의 손길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아무리 험한 부모라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사망률이 높은 것도 이 결과에서는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할 때에는 만 한살 이전의 영아가 무슨 인지 능력이 있어서 부모의 손길인지 아닌지를 구별할까 싶지만 그만큼 아무리 어린 아이들도 충분히 현상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어느 아동 심리학자의 발표한 아이들의 감수성 연구에 의하면, 신생아들도 엄마가 아기를 안아주고 얼르는 자세에 따라 엄마의 감정과 기분을 충분히 파악한다고 한다. 엄마가 아기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니면 마지못해 낳아 고민에 빠져있는지를 아기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심리학자는 미혼모와 정상적 결혼 후 아기를 기다리던 엄마를 상대로 연구를 하였는데, 미혼모의 아기가 훨씬 불안정한 감정상태를 보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꼭같이 엄마 품에 안겨 아무 근심없이 젖을 먹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아기들도 엄마의 감정 상태에 따른 심리적 변화를 느끼고 표현은 못해도 가슴 속에 상처를 받는다는 이론에 내 아이를 내려다보며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하늘이라고 한다. 하늘이 흔들리면 그 아래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은 그 하늘보다 더 흔들리게 마련이다. 영문은 몰라도 그 흔들림 하나 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아픈 상처가 되는 것이다.

큰 아이가 한 돌이 갓 지날 무렵 무슨 이유였는지는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사소한 이유로 남편과 다투었던 일이 있었다. 아침에 뾰로퉁한 얼굴로 말도 없이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나니 하도 서러워서 소파에 앉아 울고 있었는데 간신히 걸어다니던 아이가 내 옆에 와서 저도 울면서 "엄마 울지마" 하던 기억이 있다. 욕실에 가서 수건을 가져다가 내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저도 서럽게 우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지금도 그때 일이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게 된다. 태어나서 일년을 기어다니고 앉아서 밀고 다니다가 간신히 걸음마를 띠게 되어 기어다니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게 된 아이가 하늘같은 엄마의 눈물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무서웠을까. 그날 밤에 퇴근한 남편에게 얘기를 해줬더니 마음 아파하면서 일부러 아이가 잘 볼 수 있게 나를 포옹하는 모습을 지어보였다. 그 모습을 본 한살 박이 큰 아이가 깔깔 웃어대며 좋아하며 자기도 와서 안기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때때로 아이들 문제로 고민하는 엄마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게 되면 어김없이 느끼는 것이 결국 아이들 문제는 부부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건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못한 부부 밑에서는 결코 건강한 아이들이 자랄 수 없다. 남편을 깊이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와 아내가 우선순위가 되지 못하는 아빠에게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때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마음이 병들게 마련이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배우자 사랑이라는 말을 구태여 빌리지 않더라도 부부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많은 경우 아동 상담에는 반드시 부부 상담이 선행된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기에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부모의 문제들을 그대로 비춰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부관계가 개선되지 못하는 한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교정되기 어렵고 가정 전체가 문제 가정으로 지속되기 마련이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으니 아이에게 집착해서 아이만 사랑하겠다는 엄마는 결코 아이에게 행복한 인생을 물려줄 수 없다. 아내가 못마땅하니 아이만 감싸고 도는 아빠를 가진 아이는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성공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아무리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에도 우리 부부가 십 육년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수많은 갈등과 문제를 지나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만은 꼭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방편으로 최소한 한달에 한번은 아이들을 맡기고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이들의 엄마 아빠로서가 아니라 처음 만나 연애할 때처럼 남자와 여자로 돌아가 데이트를 하는 것이다. 거청하게 저녁 먹고 영화를 볼 때도 있지만 서로 시간에 쫓겨 가까운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하고 돌아올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만큼은 집안 일 얘기로 신경을 곤두세우지도 말아야 하고 아이들 문제를 의논하는 일도 뒤로 미루고 일 얘기도 하지 말고 오직 두 사람에 관한 얘기만 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만끽하려고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이 이 시간의 원칙이다. 처음에는 두고 나온 아이들도 걱정이 되고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절실히 느낀다.

둘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되찾고 서로의 존재를 감사하게 되는 만큼 그 시간에서 얻어지는 긍정적 에너지는 구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너무나 간단한 진리이지만 아이들은 마음이 행복한 부모를 원한다. 하루종일 근심 가득한 찌푸린 얼굴로 무조건 같이 있어준다고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보다 질이라고 잠시라도 아이들에게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비뚤어질 이유가 없다.

이번 주말에 아빠와 둘이 나가서 영화를 보고 오겠다고 하자 아이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서로 교환한다.
"아~엄마 아빠 데이트 가는구나!"
"엄마, 예쁜 옷으로 골라 입고 가세요."
"아빠, 면도하셔야지요!"
처음에는 자기들을 맡기고 왜 엄마 아빠 둘이서만 나가냐고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이 십여년 세월 속에 이제는 저희들이 나서서 외출준비를 도와준다. 나와 남편의 이런 외출은 우리 부부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 아이들이 훗날 자라서 자신의 배우자들과 엮어 갈 결혼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생각이다.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라도 지난 십 육년을 한결같이 남편과 나는 둘이서만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으며 차도 마시고 산책도 하면서 그 시간만큼은 가정사를 잊고 즐겁게 지내려고 애를 쓴다.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버피
    '09.9.22 3:44 PM

    정말 그래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둘 만의 외출을 꿈꾸기는 힘들지만..
    정말 남편과 둘 만의 시간을 갖고 싶네요..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2. 꿈꾸는자
    '09.9.24 9:30 AM

    저두요.. 육아때문에 항상 고민인데.. 가끔 남기시는 글과 댓글들에 도움 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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